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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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바람이 사람을 세운다
바람이 사람을 세운다 이혜숙 며칠 만에 제주도에 내려왔다. 공항버스 종점에 내리자마자 바람이 양팔 벌려 맞이한다. 앞을 막고 포옹하자 하고, 한 걸음도 못 걷게 발목을 휘감는다. 격해도 너무 격한 환영 인사. 휘청대는 걸음으로 주차한 자동차에 도달해서 문을 여니, 이번엔 문짝을 뜯고 들어와 앉을 기세다. 양손으로 힘껏 끌어당겨 겨우 닫자 차창을 두드리며 바람이 큰소리로 외친다. “나 보고 싶었으면서 왜 보자마자 내빼려고 해?” 마음을 들킨 것 같지만 보고 싶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상대. 마주 서려 해도 뒷걸음질 치게 하는 존재. 나보다 기가 센 사람을 만나면 피하기부터 하는데, 제주의 바람이 그렇다. 그러니 숨 막히도록 달려드는 바람을 피해 차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바람을 피하자 비로소 바람이 느껴진다. ‘역시 제주 바람!’ 용인 집에 있는 동안 왠지 자꾸 가라앉는 기분이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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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튤립 축제, 그 후
튤립 축제, 그 후 이혜숙 봄은 해방군처럼 온다. 차갑고 무거운 겨울의 압박 아래 숨죽여 기다린 끝에 머지않아 그들이 당도할 거라는 은밀한 전갈이 바람결에 퍼지기 시작한다. 남쪽부터 입성했다더라, 하루에 몇 킬로미터씩 좁혀 올라온다더라, 여기저기서 승전고가 날아온다. 봄 여왕을 호위하는 꽃 부대의 군화 소리는 얼마나 당당하고 경쾌한가. 무혈입성! 동토에서 해방을 맞은 사람들은 밖으로 뛰어나와 팔 벌려 환영한다.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고 무엇이라도 해낼 것 같은 의욕이 넘친다. 꽃 부대의 행렬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은 먼저 마중 가기도 한다. 꽃구경이 그것이다. 도시의 가로수가 새순을 틔어 봄이 왔음을 알리지만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은 더 강한 꽃 세력에 끌려 길을 나선다. 꽃도 많이 모여 있어야 더 빛나고 눈길을 끌기 때문에 군락을 이룬 꽃들을 ‘꽃 세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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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나무에게 땅 사 준 여자
나무에게 땅 사 준 여자 이혜숙 마당을 제 집 삼아 사는 길고양이가 여덟 마리나 된다. 현관 앞에서 밥 줄 때만 기다리거나, 잔디밭을 축구장 삼아 뛰어노는 것밖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녀석들이다. 가끔 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면 한마디 한다. 신체 건강한 놈들이 놀고먹기만 하냐는 잔소리가 그것이다. 녀석들이 알아듣기라도 한 듯 하루 종일 안 보일 때가 있다. 녀석들이 무위도식하는 걸 보이지 않으려고 공사다망한 척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기껏 멀리 갔다는 것이 주차장 위란다. 그곳은 남편이 목공 작업을 하는 장소인데, 지붕이 있어서 비 맞을 일이 없으니 고양이들이 잔소리와 비아냥을 피해서 몇 걸음 옮긴 것에 불과했다. 남편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바로 튀어나온 말, “얼씨구. 지난봄에 데크 깔더니 고양이 좋은 일 했구려.” 길에서 훤히 보이는 곳이라 작업장밖엔 쓸 일이 없는 공간에 돈을 들인 게 못마땅해서 나온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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