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21)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여름의 단어
[단편소설] 여름의 단어 박민경 노량진에서 고속터미널역 방향으로 가는 플랫폼 1-1은 비교적 한산했다. 희원은 앞 사람과 간격을 충분히 두고 섰다. 시선을 발끝에 두고 이어폰 볼륨을 높였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밀리고 밀린 사람들이 희원이 서 있는 구간까지 밀치고 들어왔다. 희원은 심호흡을 연달아 한 뒤 열차에 떠밀리듯 올랐다. 주 2회 정도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 소견을 지키기 위해 지하철을 타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두 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희원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열차에서 내렸다. 온몸이 축축한데 입만은 버석하게 말라 있었다. 힘껏 침을 모아 삼켜도 건기는 가시지 않았다. 그럴 때면 길 위에서 바삭하게 말라 죽은 지렁이가 떠올랐다. 천변의 산책로에 비 냄새가 내려앉으면 지렁이들은 일제히 화단에서 기어 나왔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나의 단어, 수호자에게
이모작에 시간과 열정을 헌납했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니 내 단어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아니다. 심장이 바삐 뛰기 시작했다. 인풋은 있는데 아웃풋은 없는 회로에 갇혀 내가 일 년을 망쳤다면 시오는 더 오랜 시간을 낭비했다. 심장이 뛰는 건 불안 때문이 아니라 안도감이 데려온 아드레날린 탓이었다. 어느새 잠들었는지 시오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몸을 일으켜 세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시오의 코끼리들을 만질 수는 없었다. 시오가 짐을 꾸려 내 방을 떠나고, 다시 한국을 떠난 후 많은 밤들에 내가 잠들지 못했던 것은 눈앞에 아른거리던 그 코끼리들 때문이었다. ⟨당신의 단어⟩ 속 시오는 카메라를 들고 홍콩으로 갔고, 텐진 역시 목소리로 여정에 동행했다. 시오와 텐진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소호의 쌀국수 가게였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시오는 주말여행을 온 또래의 한국인들을 만났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도슨트는 문학이 될 수 있을까
〈연결된 세계〉에서는 수많은 단어 카드 중 3장을 랜덤으로 골라 그 감정을 활용하여 나만의 일기를 쓰는 것이 목적인데, 하필이면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기란 나만의 감정과 일상을 오롯이 나의 감상만으로 쓸 수 있는 글이다. 어떠한 가공도 필요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꾸밀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한 감정을 쓸 때 머뭇거리기도 한다. 정제되지 않은 나만의 것. 그것은 스스로에게조차 보여 주기 싫은 감정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단어 카드를 활용해 문장을 만들게 했다는 점이 해당 코너의 주안점이라고 보았다. 단어 카드에 빗댄 나의 감정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것도 아닌 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든 작가는 더 솔직해질 수 있으며, 직접적으로 탐구해 보지 않은 감정까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일기로 시작한 감정이 세계를 이루는 감각과 비스듬히 연결되어 만나는 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발견.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