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문장(2)
-
Ch.문장 > 문학집배원 > 시배달 박찬일, 「함박눈」
시집으로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인류』 『'북극점' 수정본』 등이 있다. ▶낭송 - 정인겸 - 배우. 연극 '2009 유리동물원', '맹목' 등에 출연. 배달하며 봄이다! 이 감탄사만으로도 무거운 겨울옷을 한 겹 벗어버리고 싶다. 푸른 함박눈, 기다란 은총을 맞으며 나도 혼신을 다해 한번 함박눈을 하늘에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시에 등장하는 하늘과 하느님을 굳이 종교적 상징이거나 절대정신의 이름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그의 시에는 나비이든 돌이든 날개이든 고릴라, 삼손 데릴라, 나타샤이든 자주 하느님이 있다. 색채 이미지도 그의 시의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봄, 푸른 함박눈, 하느님의 은총 사이에 서있는 한 존재! 역설 같지만 즐거운 비명의 현재! 그것이 시가 된다는 것이 상큼하다.
-
Ch.문장 > 문학집배원 > 시배달 박찬일, 「함박눈」
시집으로 『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나타샤와 함께』 『인류』 『'북극점' 수정본』 등이 있다. ▶낭송 - 정인겸 - 배우. 연극 '2009 유리동물원', '맹목' 등에 출연. 배달하며 봄이다! 이 감탄사만으로도 무거운 겨울옷을 한 겹 벗어버리고 싶다. 푸른 함박눈, 기다란 은총을 맞으며 나도 혼신을 다해 한번 함박눈을 하늘에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시에 등장하는 하늘과 하느님을 굳이 종교적 상징이거나 절대정신의 이름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그의 시에는 나비이든 돌이든 날개이든 고릴라, 삼손 데릴라, 나타샤이든 자주 하느님이 있다. 색채 이미지도 그의 시의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봄, 푸른 함박눈, 하느님의 은총 사이에 서있는 한 존재! 역설 같지만 즐거운 비명의 현재! 그것이 시가 된다는 것이 상큼하다.
글틴(54)
-
글틴 > 시 [결과발표] 수정본
걷다가 걷다가 죽을 만큼 숨이 가빠와멈춘다. 시리다 못해 얼어버린 몸과작아지다 못해 사라져 버린 마음 '포기'를 외치며 기도하는 것은'희망'을 찾으며 포효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사람의 온기를 원했을 뿐이다.안녕하세요! 글 처음 올려봐요!!
-
글틴 > 시 가라앉음 (수정본)
제목 : 가라앉음 (부제 : 세월호) 사랑이 서로 맞춰가는 것이라면왜 맞춰갈 시간도 주지 않고그대는 그렇게 떠나갔나요 사랑이 서로를 위하는 것이라면그대에게 주기만 해도 행복한 데왜 지금 그대는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나요 사랑이 계속 보고 싶은 것이라면그대는 날 사랑할 텐데왜 나도 그대도 서로를 볼 수가 없나요 사랑이 그런 것이라면..... 하지만 사랑이 그렇듯사람이 그렇듯 그대는 가라앉은 세월속에서우리는 흘러가는 세월속에서사랑은 망각의 저주를 받았고이별은 망각의 축복을 받았네요 이제는 저 낮은 파도에 잠겨가는자라나던 새싹들을 위해꺼져가는 노란 불꽃들을 위해어떤 노래를 불러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
글틴 > 소설 류봄 (수정본)
침묵과 방관. 그것은 류봄이 예과 2년, 본과 4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정신의학과 전문의 6년의 긴 시간동안 터득한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손길을 뿌리치는 것에 그녀는 어느덧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 양심의 가책이 들기도 했지만, 방관하지 않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녀는 이제는 경영 부실로 인해 폐교된 지방 사립대학의 의대를 졸업했다. 그 대학에 부속 병원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으므로 졸업이 다가올 무렵 그녀는 타 대학병원에 인턴 지원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병원인 U 대학교 부속 병원에서, 동기들 중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해 30대 후반의 나이에 정신의학과 과장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원칙대로 올바르게 살았더라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성과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오는 날이면 류봄은 종종 새벽에 악몽을 꾸다 깨어나곤 했다. 늘 같은 꿈이었다. 꿈에서 그녀는 정신과 레지던트 3년차였을 때로 돌아가 있었다. 장맛비가 무섭게 퍼붓던 날이었다. 30살의 그녀는 의국의 열린 문틈으로 레지던트 4년차 선배인 C가 당시 정신의학과 과장이었던 P에게 폭력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P는 바닥에 쓰러진 C를 발로 걷어차고 밟으며 환자들 앞에서는 결코 입에 담지 않는 욕지거리를 해대고 있었다. 저 정도로 맞았으면 분명 온 몸에 멍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류봄은 어느 순간 신음을 참고 있던 C와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P도 그녀를 발견했다. P는 점잖게 헛기침을 한 후 류봄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다가와 방문을 닫았다. C가 대한전공의협의회에 P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해왔다는 민원을 넣은 것은 그 일이 있고 일주일 후였다. 마침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터라, 한국 최고의 대학병원에서 폭행민원이 접수되었다는 소식은 전국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지목된 그녀는 경찰 조사에 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반차를 내고 병원 현관을 나서던 류봄은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P와 마주쳤다. P는 그녀의 어깨에 잠시 손을 얹더니 어깨를 툭툭 치고 병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날 조사에서 류봄은 P가 C를 폭행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P는 레지던트들에게 늘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C의 주장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고, P에게 레지던트 폭행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U대학교 부속 병원은 정직하고 훌륭한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지킬 수 있었다. 그 일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대중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 갔다. 병원 내에서 C의 평판은 바닥을 찍었다. 그 일이 있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C는 치사량의 포타슘을 자신의 정맥에 주사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2년 후에 류봄은 U대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고, 그녀의 커리어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시피 했다. 몇 년 뒤 P가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하였을 때, 그는 류봄에게 정신의학과 과장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병원 직원 중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삶이었지만, 류봄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식 의사가 되고 만 1년이 지났을 때 결혼을 했다. 상대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소개받은 선배 의사였다. 누구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던 류봄이었기에, 결혼생활 또한 순조로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나도 아기가 들어서지 않자 시부모는 류봄에게 검사를 받아볼 것을 종용했다. 그녀는 불임 판정을 받았고, 그러자 남편 측은 이혼을 요구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일지도, 라고 류봄은 한산해진 진료실에 홀로 앉아 생각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류봄은 구내식당을 잘 이용하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혼자 밥 먹는 것에는 익숙해진 그녀였지만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는 하얀 가운들 사이에서 묵묵히 홀로 밥을 먹는 것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럴 때면 어쩐지 무리에서 외따로 떨어진 철새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류봄은 병원 근처의 제육볶음이 맛있는 백반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류봄과 연배가 비슷한 여자가 혼자 꾸려나가는 식당이었는데, 아이가 백혈병으로 U대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녀와는 어느새 서로 반말로 농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어쩐지 느끼하고 몸에 안 좋아 보이는 걸 먹고 싶어, 라는 마음의 속삭임에 류봄은 병원 1층의 햄버거 프랜차이즈로 향했다. 류봄은 치킨 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점원은 이번 달 프로모션입니다, 라고 말하며 버거와 캐릭터 열쇠고리를 함께 건넸다. 하얀 바탕에 까만 눈, 역삼각형 모양의 까만 코를 가진 토끼 캐릭터였고, 몸통에는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무심히 테이블에 열쇠고리를 내려놓고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던 류봄은 자기 쪽을 바라보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소아병동 환자인 것 같았다. 류봄은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다시 햄버거를 집어 들었다. 자신은 평생 낳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었을까, 3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류봄은 아이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게임중독 청소년이나 자폐를 가진 어린이들이 진료실을 찾아오면 괜히 서랍에 넣어두었던 초코바를 꺼내 쥐어주곤 했다. “아줌마, 이 토끼 뭔지 알아요?”햄버거를 먹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던 류봄은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소아병동 아이는 류봄 맞은편에 양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아니, 모르는데, 라고 류봄은 대답했다.“그러면요, 여기 이거는 얘 입이게요, 코게요?”아이는 류봄이 코라고 생각했던 토끼 얼굴의 역삼각형 모양을 가리키며 물었다.“코 아니야?”“땡! 이건 얘 입이에요!”아이는 즐겁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아... 난 이게 얘 코인 줄 알았어. 입이라기엔 너무..... 부자연스러운데”“그거는 얘가요, 슬퍼도 안 슬픈 척 웃고 화나도 안 화난 척 웃고 있어서 그래요. 얘는 맨날 이렇게 웃으면서 방방 뛰어다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얘가 맨날 행복한 줄 알고 좋아해요. 저도 약간 그렇거든요. 그래서 얘가 저 같아서 좋아요.”류봄은 아이를 자세히 살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초등학생 이상으로는 안 보이는 아이인데, 그런 어린 아이 입에서 어째서 저런 말이 나올까. 저 애의 삶도 순탄치 않았나보다, 하고 류봄은 생각했다.“이름이 뭐야?”“얘 이름은 오버액션토끼에요.”“말고, 네 이름말이야.”“저는 이세민이에요! 저 병원에 엄청 오래 있었는데요, 아줌마 지나다니는 것도 몇 번 봤어요. 아줌마 의사죠?”“어떻게 알았어?”“지금 가운 입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우리 엄마 식당 올 때도 맨날 가운 입고 왔잖아요. 와서 맨날 제육볶음만 먹고 가잖아요. 히힛”세민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그럼 혹시.... 네가 백반집 아이니?”“네! 전 아줌마 몇 번 봤는데, 아줌마는 기억이 안 나나 봐요. 쪼금 섭섭하다.”류봄은 미소를 짓고는 이 열쇠고리 너 가질래, 라고 세민에게 물었다. 아이의 눈이 반짝거렸다.“그래도 돼요? 저도 하나 받았긴 한데요, 병원에서 만난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도 하나 주고 싶었는데, 치즈버거 세트를 한 개 더 사먹을 돈이 없었어요.”“그럼 이거 가져가서 친구 줘.”“감사합니다! 제 친구 이름은 안수하에요! 나중에 수하도 소개시켜 드릴게요.”류봄은 명랑하면서도 어딘가 슬퍼 보이는 이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아이는 의자에서 일어나 배꼽인사를 하고 가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류봄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그 후로 몇 번 류봄은 병원에서 세민을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괜히 반가워 몇 마디씩 말을 건네곤 했다. 처음엔 세민도 제법 붙임성 있게 대답을 해 주었다. 어른스럽지만 역시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여서, 은연중에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고 귀여운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의 표정이 시나브로 어두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류봄은 병원 로비를 유령처럼 배회하던 아이를 불러 세워 햄버거 가게에 앉혔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우울해 보이냐는 류봄의 물음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햄버거 세트에 따라 나온 오버액션토끼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렸다.“...... 수하가 사라졌어요. 우리 아지트에도 안 찾아오고, 병원을 다 뒤졌는데도 안 보여요.”“저번에 말한, 네 친구 말이야?”“네....”“글쎄.... 퇴원한 거 아닐까? 건강해져서.”“아니에요! 수하는 말도 없이 사라질 그런 애가 아니란 말예요!”세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선언하듯이 말했다.“수하는.... 납치된 거예요. 얼마 전에 수하가 그랬어요, 하루 종일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루는 이상한 아저씨들이 수하를 끌고 가서 머리에 이상한 모자를 씌우고 이상한 통에 집어넣었데요. 수하가 막 아프다고 하고 그만하라고 해도 아저씨들은 들어주지도 않았데요. 거기 하루 종일 있다가 풀려났다고, 너무 무서웠다고 그랬어요.”“그냥 MRI 찍고 마취 수술 한 거 아닐까? 그건 이상한 짓이 아니라 치료의 한 부분이야.”“아니에요! 저도 수하도 MRI도 찍어 봤고 마취도 해 봤는데, 그거랑 진짜 다른 거예요! 자기를 실험용 쥐처럼 다뤘다고 수하가 그랬어요.”류봄은 세민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빛은 진실 되고 절박해보였다. 마치 7년 전의 C처럼. 이 아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거짓을 말하는 것일까. 혹시 수하라는 아이는 이 아이의 환상 속에서 탄생한 가상의 친구가 아닐까. 이 아이를 믿어줘야 할까. 만약 세민의 말이 사실이라면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 터였다.“....아줌마, 그 아저씨들 좀 막아 주시면 안돼요? 이러다가 수하한테 큰일이 날지도 모른단 말예요.”류봄은 도움을 요청하는 세민의 간절한 눈빛을 애써 피했다.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은 류봄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글쎄, 네가 말하는 아저씨들이 누군지 모르겠다. 너무 막연하고 불분명한 정보라서, 그거로는 수하를 찾을 수 없을 거야. 아무래도 나는 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구나.”아무래도 세민은 의사를 잘못 찾아온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류봄은 말했다. 세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 것이 보였다. 세민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빈 햄버거 포장지를 버리고 일어서 휘적휘적 가게를 빠져나갔다. 늦은 끼니를 때우러 찾아간 백반집에서도 세민은 줄곧 상처 입은 표정으로 류봄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 저 아이를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류봄은 불현 듯 생각했다. 어쩐지 가슴 한편이 싸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류봄은 스스로에게 잘했어. 잘했어, 류봄, 이라고 되뇌었다. 애초에 저 아이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도 불분명하잖아. 그러나 세민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음을, 류봄은 곧 알게 되었다.“소아병동에 안수하라는 애, 소문 들었어?”의국 앞을 지나가던 류봄은 안쪽에서 들려오는 안수하라는 이름에 걸음을 멈추었다. 류봄은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의국에는 레지던트 몇 명이 모여 앉아 있었다. 류봄은 커피를 타 마시는 척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지만, 그녀를 의식한 레지던트들이 거의 속닥거리다시피 대화를 이어갔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약물, 의료사고, 인격 장애, 실험, 연구 같은 단어들만이 드문드문 들려왔으나, 그 단어들만으로도 사건의 경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류봄은 원두를 내리며 슬금슬금 레지던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홍세연 연구원이랑 박민철 쌤?”한 레지던트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류봄의 눈치를 살피더니 제 입을 틀어막았다. 류봄은 그만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돌렸다. 흥분한 레지던트들은 어느새 류봄의 존재를 망각한 듯 했다.“미쳤다.... 박민철 그 인간은 인간쓰레기를 넘어서 핵폐기물 아니냐?”“글니까, 나 인턴 때 말야, 그 인간이....”홍세연과 박민철은 류봄도 아는 작자들이었다. 전자는 U대 의대 부설 연구소의 연구원, 후자는 같은 병원 소속 의사였다. 홍세연과는 병원과 연구소가 함께 하는 망년회나 단합회 때 몇 번 마주쳤는데, 류봄은 그의 모습이 마치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와 같다고 생각했다. 박민철은 여러모로 P 교수를 닮은 인간이었다. 게다가 무능력하기까지 해서 근래에도 의료사고를 일으켰다고 들었다. 듣자 하니 그 콤비가 안수하를 모르모트로 삼아 수상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일에 엮이면 괜히 귀찮아지기만 할 것이라고 류봄의 이성이 속삭였다. 류봄은 의국 밖으로 슬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위험한 인간들한테 붙잡혀 있다면, 안수하라는 그 아이는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울린 휴대전화 벨소리에 류봄은 흠칫 놀랐다. 백반집 여자였다. 류봄은 진료실 책상에 눕듯이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백반집 여자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들에 머리가 아파왔다.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거기엔 안수하의 근황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선뜻 안수하를 구하는 계획에 동참하겠다고 말한 10분 전의 자신의 모습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녀의 이성이 소리쳤다. 도대체 뭐 하고 싶은 거야, 너 이런 사람 아니잖아. 류봄은 멍하니 책상 위를 내려다보았다. 몇 주 전 세민에게 받은 쪽지가 책상에 붙어 있었다.‘아줌마, 엄마가 아이스 홍시 사 놨대요. 오늘 꼭 식당에 놀러오세요! 수하도 나중에 꼭 소개해 드릴게요! -이세민-’쪽지에는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은 조약한 약도가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류봄과 두 아이, 그리고 예의 토끼 캐릭터로 추정되는 난해한 그림이 있었다. 그림에서 안수하와 이세민은 풍선을 손에 들고 밝게 웃고 있었고, 류봄의 등에는 하늘색 날개가 그려져 있었다. 류봄은 한 손으로는 오버액션토끼의 손을, 다른 손으로는 세민의 손을 잡고 있는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자기 들려오는 빗소리에 류봄은 반사적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7년 전 그날만큼이나 세찬 비였다. 이튿날 오후에 류봄은 반차를 내고 백반집을 찾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삐걱거리는 문을 여니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세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였다. 이제 어쩔 셈이냐, 류봄의 이성이 조소하듯이 물었다. 한눈에도 연륜 있는 학자처럼 보이는 남자가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U대 의대 연구소 소속 류혁진입니다. 이쪽은 제 밑에서 일하고 있는 신임 연구원 한도윤 양입니다.”“아.... U대 병원 정신의학과 과장 류봄입니다.”“세민이 어머니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수하.... 도와주신다고 하셨다고.....”“네.... 일종의 의료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하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특수하고 비범한,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요. 그러자 U대 의대 연구소에서 수하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다소 비윤리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고 .... 전해 들었습니다.”“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해당 연구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연구과정에서 연구 대상인 안수하 양을 대상으로 비윤리적인 행위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규명하려고 합니다. 저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문제를 공론화시켜 연구의 진행을 중단시키고, 안수하 양에게 적절한 치료와 교육을 제공하는 데에 있습니다.”“네, 저도 할 수 있는 한 돕겠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하면 되지요?”“선생님은 병원 내에서 입지가 확고하시지요. 그리고 기자나 의료계 인사들과도 면식이 있으시고요.”“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수하를 대상으로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그 연구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외부에 알려주십시오. 연구소는 폐쇄적인 곳입니다. 외부인들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있어요. 가능하시겠습니까?”“그 정도라면.....”“이곳은 홍세연 연구원처럼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절망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판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정상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어요. 수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외부의 힘이 필요합니다.”“........”“메일 주소를 알려주십시오. 지금까지 저희가 캐낸 해당 연구 관련 자료와 수하 양의 능력에 관한 보고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험난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 보내드린 자료를 읽어보신 후에 다시 모여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네, 알겠습니다. 메일주소는.... 여기 있습니다.”류봄은 주머니를 뒤져 한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명함을 꺼내 류혁진에게 건넸다.“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정말 감사드려요, 류봄 선생님.”한도윤이 말했다. 류봄은 그녀의 눈빛이 어딘가 세민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꼭 진실을 밝혀낼 겁니다, 라고 말하며 류혁진이 악수를 청했다. 류봄은 그의 손을 힘껏 잡고 흔들었다. 장맛비에 사람들의 발이 묶인 것인지, 오후의 진료실은 한산했다. 류봄은 한참 동안 류혁진의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니, 그녀의 이성이 중얼거렸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하고 류봄은 이성의 물음에 답했다. 그녀는 류혁진이 보낸 메일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파일에는 연구에 대한 상세 정보와 연구의 진행 상황에 대한 자료와 함께 틈틈이 몰래 찍은 것 같은 스냅 사진들도 들어 있었다. 류봄은 그 사진들을 통해 안수하를 처음으로 대면했다. 앙상하고 괴로워 보이는, 만신창이가 된 것 같은 앳된 아이였다. 아이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표정은 무표정했다. 류봄은 휴대폰 연락처를 뒤져 도움에 될 만한 번호들을 찾아냈다. U대 병원의 최연소 정신의학과 과장이라는 타이틀이 PD와 기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렸던 모양인지, 그녀는 의학 다큐멘터리나 육아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였고, 몇몇 신문에 칼람을 연재한 적도 있었다. 성공의 척도로만 생각했던 그 경력들이 뜻밖에 이런 일에 도움이 될 줄이야, 인생은 정말 모를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류봄은 기자들에게 류혁진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넘겨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U대 병원은 비윤리적인 생체 실험을 중지하라’‘아이를 풀어주고, 연구책임자는 사임하라’바람에 날려 온 대자보 조각이 발에 채였다. 언제나 말끔했던 병원은 며칠 사이에 꽤나 을씨년스러워졌다. 소식이 알려진 후 병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병원 앞에서는 연일 시위가 벌어졌다. 퇴원수속을 밟고 다른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말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그 일을 언론에 알린 것이 류봄이라는 사실은 곧 병원과 연구실 전체에 퍼졌다. 몇몇 간호사와 의사들은 류봄이 지나갈 때마다 역병을 보듯이 피했다. 류봄은 허리를 펴고 꼿꼿이 걸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환자가 많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진료실은 하루 종일 한산했다. 궁지에 몰린 홍세연과 박민철은 사건이 공론화되고 사흘이 흐른 후 안수하를 풀어줬다. 안수하의 모친은 외국에서 유학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반집 여자가 임시로 안수하를 맡기로 결정되었다. 안수하의 치료와 교육은 류혁진이 전담하게 되었다. 안수하는 이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주로 제일 친한 친구인 세민과 시간을 보냈다. 세민은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끔 병원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세민은 씩씩하게 말을 붙여왔다. 그럴 때 마다 류봄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류봄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부스를 철거하고 짐을 정리해 떠나고 있었다. 장맛비가 내리는데, 라고 류봄은 중얼거렸다. 류봄은 다시 책상에 앉았다. 아직 할 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안수하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류봄은 경찰서로 향할 것이다. P의 레지던트 폭행 사건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기 위해서였다. P가 C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어째서 그때 자신이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지 다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그게 불러일으킬 파장에 대해서는 류봄도 알고 있었다. U대 병원의 최연소 정신의학과 과장의 자리는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많은 비난을 받을 것이고, 아마 다시는 의료계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세민과 백반집 여자마저 그녀를 꺼려하게 될지도 모른다. 병원의 이미지는 추락할 것이고, 그녀 자신과 은퇴 후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고 책을 출판해 일약 유명세를 얻고 있는 P 두 사람 다 처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문득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C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류봄은 지난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그의 묘소에 찾아가지 않았다. 그건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이번에야말로 그를 찾아가야겠다, 술과 꽃을 사서, 그의 묘 앞에 무릎을 꿇어야겠다, 류봄은 두서없이 생각했다. 그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지,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류봄은 문득 알고 싶어졌다. 어리고 미성숙했던 자신은, 그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줌마! 엄마가 저녁 드시러 오래요!”세민이 진료실 문을 힘차게 열고 뛰어 들어왔다. 그럼 갈까, 하고 류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비는 어느덧 그치고 있었다.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