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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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은둔자의 영혼
불멸의 영혼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의 영혼은 지옥 불에 타지도 않고 영원한 고통 속에 이승을 헤매지도 않는다. 그런 영혼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여자는 더 이상 남자를 원망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끝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삶은 끝났다. 의미 있는 것은 여자가 살아 있었던 순간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날 밤 남자는 처음으로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남자가 물을 길어다가 사제관의 물통 속에 붓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남자는 돌아보았다. 사제가 낯선 남자와 함께 있었다. 옷차림으로 보아 관원일 것이라고 남자는 짐작했다. 낯선 사람이 물었다. “자네, 혹시 숲 속의 은둔자를 아나?” 남자는 들고 있던 물통을 내려놓았다. 사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제와 관원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번갈아 살피다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관원이 재차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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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식탁의 영혼
식탁의 영혼 이현승 당신의 식사를 완성하고 싶어요 나는 칫솔 가득 치약을 짜서 오른손에 왼팔엔 공손하게 타월을 접어 걸고 당신의 식사를 지켜보지요 당신의 식욕은 언제 보아도 고즈넉하군요 식사로부터 시작되어 식사로 완성되는 저녁이에요 나는 당신의 저녁을 완성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니 언제나 나는 불완전한 칫솔이기도 해요 나는 개켜진 냅킨처럼 다소곳하지만 나는 가지런한 젓가락과 숟가락처럼 정갈하지만 식사가 언제나 예의바르진 않지요 당신을 꼬집어 말한 것은 아닙니다 너무 흔한 것 그것이 식사라고 당신은 말했죠 나의 냅킨과 칫솔이 무거워지는 순간이군요 콧수염에 묻은 우유를 닦아내면서 짐짓 경건하게 예절에 대해 말할 때 당신은 비로소 육식동물처럼 근엄합니다 나는 당신의 식사를 완성할 시간을 알아차리죠 나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하이에나이거나 노래하진 않지만 정겨운 악어새입니다 악어 입 속으로 함부로 날아드는, 나는 당신의 식사를 완성할 수 있고 나는 당신의 트림을 분별하는 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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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여름 영혼」 외 6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시] 여름 영혼 최백규 열린 창으로 여름 영혼이 실려 온다 야근을 마치고 온 너는 작업복을 벗어 땀을 말리고 있다 저린 팔다리를 주무르며 휴대전화를 열어도 스팸 문자 하나 없다 냉면을 먹으며 종영한 드라마를 보다가 겨자를 씹어 울음이 난다 지난해 여름휴가 캠핑에서는 라면을 끓였지 그때도 스프를 많이 넣었다 글러브를 끼고 공을 주고받은 순간들 처음으로 혼자 자전거를 타게 되었을 때의 환호성 함께 웃어 주던 너는 철거 예정 아파트에서 나를 기다리다 잠들어 있다 사실 여름과 영혼 둘 다 잘 모르겠다고 중얼대다가 눈을 뜨면 초여름이고 대낮이고 무궁화호가 영등포역을 지나 한강을 건너는 중이다 어둡고 넓은 물을 배경으로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한다 그 아래 너무 외로운 빛들이 눈앞에 번져서 뒤늦게 걸음을 떼는 파도와 우리는 누구보다 많이 닮았다 네 생각을 할 때마다 햇살에 깊이 베여 왔다 몇 개의 여름이 지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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