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도달하는 방법 - [고요한 밤의 눈]을 읽고
- 작성자 탈퇴 회원
- 작성일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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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도서관에 갔을 때, 깔끔한 표지에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광고문구가 적힌 책을 발견했다. 다른 한국소설은 눈에 띄지 않았는데 유독 그 책에는 호감이 갔다. 제목은 <고요한 밤의 눈>이었고 저자는 내가 잘 모르는 박주영이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번 찜해둔 책은 목록에 올려놨다 나중에라도 꼭 읽는 편인데, 그때도 다른 책 읽느라 바빠 잠시 미뤄뒀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일념은 없었다.
그러다 몇 달 뒤, 혼불문학상 수상작 독후감 대회가 열려 나는 주저 없이 <고요한 밤의 눈>을 골랐다. 내가 이 소설을 고른 건 표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요한 밤의 눈'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밤의 눈이라, 고요한 ‘밤의 눈’이라는 건지 '고요한 밤'의 눈이라는 건지, 중의적인 제목이지만 재미있었다. 게다가 스파이 소설이라니. 나는 SF 환상소설이나 첩보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집어든 건 마피아가 등장하고 총을 쏴대는 진부한 첩보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읽지 않던 장르라 익숙하지 않았고, 익숙하지 않아서 신선했다.
책은 금방 읽혔다. 상당히 짧은 소설이라 꾸준히 읽어 두 시간 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긴 시간의 기억을 잃고 갈 곳 없이 방황하는 X, 쌍둥이 언니가 실종되고 혼자 상담실을 운영하는 D, X를 감시하며 승진을 바라는 Y, 부하들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B, 요원들을 총괄하는 헌책방 노인,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는 Z. 주요 등장인물은 이렇게 여섯 명이다. 특이한 것은 이 등장인물들이 일반적인 1, 3인칭 시점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작가는 매번 한 명씩 돌아가면서 화자가 바뀌는 소설 기법을 차용했는데, 이 기법은 오래전 윌리엄 포크너를 비롯한 많은 작가가 써온 실험 기법이다. 대부분의 한국소설은 이 형식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박주영 작가는 1인칭 화자를 번갈아 서술하면서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은 사실상 모두 주인공이다. 크고 작은 비중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행복이다. 매 장에 ‘Happy’가 붙는 것도 인물들의 목표이자 종착지가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아 헤맬까.
소설은 가장 비중이 큰 X와 Y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X는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깨어난 스파이다. 그는 15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려, 첩보요원도 회사원 직책도, 모든 것이 낯설고 답답하기만 하다. 소설 초반의 X는 현실과 꿈을 혼동하는,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이지만 또 다른 스파이 Y를 만나고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Y는 X를 감시하라고 보내진 요원이다. 둘은 요원으로서 맡은 임무를 수행하려 애써 거짓된 행동을 하지만, 서로 사랑에 빠진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고뇌하고, 방황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자신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자신의 진정한 자아는 무엇인지 갈등하다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몇몇 평론가는 이런 점을 짚어 실존의 문제, 실존문학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도달하는 곳은 결국 행복이 있는 세상이다.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이자 기회는 ‘패자의 서’라는 책을 통해 발현된다. 행복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행복을 찾으려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작가는 묵직한 물음을 던지며, 이야기를 열린 상태로 끝낸다. 이야기는 열려있어 행복을 향한 길을 보여주고, 효과적으로 핵심 주제를 전달하며, 가능성과 희망을 폭넓게 제시한다. 첫 장이 에필로그, 마지막 장이 프롤로그인 것도 소설이 끝나지 않고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행복을 구하는 방법은 사랑으로 나타난다. 시간도 기억도 아닌 사랑만이, 행복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소설은 직접적으로 ‘사랑’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장마다 New Memory, New World, New Year는 적혀있어도 love는 없다. 진정한 주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독자가 직접 알아낼 수 있도록 은유하기 때문이다. 이런 서술법으로 작가는 더욱 효율적으로 서사를 구체화한다. D는 상담실을 찾아온 X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이 나라, 이 지구, 그리고 결국은 나의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가벼운 첩보물이 아니다. 현대 사회 체제를 진지하게 비판하고,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행복이 무엇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천명하는 잔잔한 드라마다. 이 책이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은 권력도 계급도 아닌, 사랑과 행복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행복을 갈구하며 살아갈까.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은 돈의 행복, 권력의 행복 등 사람들이 얻고 싶어 하는 행복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진정한 행복은 단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과 자연과 더불어 사랑하며 함께 사는 것이라고. <고요한 밤의 눈>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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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엔 아이돌을 좋아하는 '빠순이'들의 이야기와 그 중 한사람인 만옥을 짝사랑하는 민규의 이야기가 나온다. m은 가장 좋아하는 멤버 M을 본 잠깐의 순간을 세밀한 글로 남긴다. 수많은 연애소설을 읽으며 외로움을 달래려 하지만 팬은 절대 상대를 만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더욱 고독함을 느낀다. 그와 반대로 만옥은 M의 실재를 보려하고 그 사랑을 객관적으로 보는게 아닌 그 사랑안에 몸을 던지고 사랑을 앓는다. 그리고 만옥을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만옥을 이해할 수 없지만 만옥을 사랑해 이해하고 싶어서 m을 찾아가 만옥의 이야기를 듣는다. M을 보고 잘생겼다, 아름답다, 사랑한다 등의 표현은 와닿지 않는다는 게 인상깊었다. 이 세상의 모든 수식어를 붙여도 M을 봤을 때의 기분은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낮고 천한 욕은 그 기분과 상황을 다 설명할 수 있는게 기억에 남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을 붙여도 한마디의 욕을 대신할 순 없다는게 아쉬웠다. 이 책에 나오는 표현 몇몇은 조금 거칠고 세서 살짝 불쾌한? 찝찝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상대는 나를 알지도 못하고 나 혼자 그 사람을 좋아하는게 고생만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몇시간씩 줄을 서 아이돌을 봐도 화면으로 보는게 화질도 좋고 더 크게 보이는데 굳이 사서 고생을 해야 할까 싶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계속 기다리는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더 가까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팬에게는 의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살면서 그정도로 사랑하는 감정을 알 수 있을까? 힘들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니 아이돌을 좋아하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도 전혀 아깝지 않은 기분은 어떤 것일까. 죽어도 좋을만큼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 탈퇴 회원
- 2021-08-24
이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사춘기를 겪는다. 대부분 10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극심한 '성장통'을 앓는데,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가는 길은 일종의 입사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채로운 일을 겪으며 성장한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청년 - 장년 - 중년 - 노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험을 하고 길지 않은 생애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춘기를 거치고 어른의 길을 향해 발을 딛는다. 오시미 슈조 「악의 꽃」은 청소년들의 방황과 역경, 성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카스가'는 보들레르 시집 「악의 꽃」을 좋아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문학소년'이다. 그 나이에 걸맞게 짝사랑 상대도 있다. '사에키'는 카스가에게 '뮤즈이자 운명의 여인'이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사에키의 체육복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자신의 옷 속에 숨긴다. 그 모습을 동급생 '나카무라'가 목격하고 나카무라는 카스가의 약점을 잡아 '변태적인 행동'을 강요한다. 변태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비정상과 일탈을 의미한다. 동시에 탈바꿈(變態)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나만 이상한 것일까, 나만 이 답답한 세상에서 동떨어진 사람인가 고뇌하던 그는 무언가 정상에서 벗어난 일을 하는 카스가를 목격하고 나만 변태가 아니었구나, 동질감을 느낀다. 나카무라는 카스가의 가면을 벗기고 싶어 한다.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면서 깊이 박혀 있는 카스가의 본성을 보고 싶어 한다. 이 세상에 묵묵히 순응 못 하는 내가 변태라면, 너도 변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가운데 카스가는 나카무라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동지이다. 카스가는 처음에 나카무라의 강권에 못 이겨 여학생들의 팬티를 훔치고 교실을 엉망으로 만드는 등 만행을 저지르지만, 자신이 이때까지 믿어온 악의 꽃, 문학, 짝사랑 등 모든 것이 가짜이고 가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인 변태의 길에 들어선다. 문학과 보들레르, 랭보와 사에키는 그가 어떻게든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해 만들어낸 허상이자 거품이다. 진정한 버팀목은 나카무라가 된다. 둘은 그들만의 비밀기지를 세우나 경찰에게 꼬리가 잡히고, 동반 자살을 계획한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세월 속에 잊힌다. 나카무라는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청소년들의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비좁은 마을, 산으로 빽빽이 둘러싸인 숨 막히는 공간에서 카스가와 나카무라의 변태적 행각은 그들에게 유일한 안식처이며 도피처이다. 그들은 마을 밖, '저쪽'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저쪽'은 갑갑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이자 새로운 세상이다. 나카무라는 말한다. "몸속 저 아래 깊은 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뭔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이 세상 전부 내 부글부글 속에서 버러지가 돼버리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나카무라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버러지다. '구역질 나는 이야기를 하며 구역질 나게 웃고, 더러운 똥 덩이처럼 떼
- 탈퇴 회원
-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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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8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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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모로 님 안녕하세요. 1년 만에 모습을 보인 글이라고 하여 더욱 즐겁게 글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내용을 잘 요약했다고 생각했어요. '줄거리'요약에서부터 모로 님의 관점이 적용되기 때문에 줄거리를 어떻게 요약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은 사실 글쓴이가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글쓰기에도 참고점이 되었으면 해요. 몇 가지 의견을 드리려고 해요. 먼저 “진부한 첩보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는 구절-구체적으로 어떻게 알았을지 궁금해졌어요. 두 어 문장을 더하여 상술해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이 '신선한 효과'를 내고 있는가에 대한 모로 님의 의견이 들어가게 되겠지요. 또 하나, '시점'에 관해서입니다. 매번 화자가 바뀐다는 것은 1인칭 화자가 각각 달라진다는 의미일까요? 이러한 기법을 차용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가령 윌리엄 포크너와 비교했을 때 어땠을지 짧게라도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주제 하나만으로도 길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점(point of view)의 효과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특히 '소설' 영역의 기법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기회가 있다면 이에 대해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네요. 또 평론가가 지적하는 ‘실존의 문제’와 모로님이 중점적으로 보고자 한 ‘행복’의 문제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야기의) 열려있음=행복'의 등식이 성립하기 위해 사이에 어떤 설명이 더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것은 후술해주신 ‘사랑’으로 가능할 것 같습니다. 퇴고하게 된다면 이 부분을 고려주시기를요^^
작년에 쓴 글인데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묵혀두었다가 파일 한구석에 버려뒀다는 사실이 미안해져 오랜만에 꺼낸 독후감입니다. 다음에 세 배는 더 향상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