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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 작성자 정 훈
  • 작성일 2018-12-31
  • 조회수 301

 나는 어려서 부터 병원에 자주 있었다. 자주 아팠다는 말은 아니다. 의사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때문에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픈 사람들이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친해진 병자들, 혹은 그들의 간병인이 나의 지인이다. 병원에 자주 있었기 때문에 나를 모르는 환자들은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죽음과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또 하루가 지나면 죽는 사람들은 수 없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충격도 받고 공포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죽음이란 것이 내 인생의 한 부분, 일상적인 상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와 유독 친하게 지냈던 병자와 간병인이 있었다. 그녀는 늙고, 암에 걸려 오늘이나 내일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반면 그는 그녀의 남편으로 나이가 그녀보다 3살이나 많았음에도 건강하고 윤기있는 백발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그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병원 근처에 있는 한 공원이었다.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햇빛을 온 몸에 맞으며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입은 굳게 닫고,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태양을 바라보고, 눈을 감지 않았다. 햇빛을 눈에 맞으면 분명 아프고, 따갑겠지만 그녀는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햇빛을 마주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힘겹게 눈을 뜨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바로 나에게 다가오려다가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떠올랐는지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 그녀를 놓아두고 가까운 벤치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이미 다 보았지만 보고있었다고 말 할 수 없어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보시다시피 일광욕 중이지요.”

 그는 햇빛을 쬐고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나는 슬픈 미소를 보았다. 슬픔을 숨기려는 듯 한 미소, 그 미소를 보았다.

 나는 과거의 그들을 알 수 없다. 현재의 그들조차 완전히 알지 못한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은 서로를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결혼 하였으며, 어떻게 머리가 모두 백발이 될 때 까지 살아왔는지.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저렇게 계속 태양을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프잖아요. 왜 말리지 않는거에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째서 말리지 않는지, 왜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냥 이제는 다 포기하고 싶어요.”

 죽음을 앞둔 그녀를 바라보는 그는 좌절했다. 죽음에 대해서 수도없이 생각해보았을 나이지만, 그런 나이가 무색하게도 실제로 죽음을 마주한 그는 무책임하고 무신경했다.

 그녀가 태양을 바라보며 눈을 뜨고있는 이유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온기를 눈 속 가득 담기 위해서. 그는 차마 그런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나는 그와 그녀를 자주 만났다. 언제는 병실에서, 또 다른 때에는 다시 공원에서, 병실 앞 복도에서 만날때도 있었다.

 만날 때 마다 그녀는 항상 태양을 마주보고 있었고, 그는 그런 그녀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죽었다. 예고된 죽음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아주 가까운 죽음을 마주했다. 그녀의 죽음을 마주한 그는 오열했다. 슬픔을 숨기려 했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현실에 오열하는 추한 모습만 남아있다.

 그는 병원 복도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녀는 영안실로 들어가고 홀로남은 그는 병원 복도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방관했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의 죽음을 그저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백발 할아버지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을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 나는 병원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가 병자로, 간병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어서 죽고싶다고 말 했다. 죽는다는건 삶이 끝난다는 뜻이 아니라고, 죽어서 새로운 삶을 살고싶다.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죽었다. 그들의 죽음은 나에게 회의감을 주었다. 내가 봐온 것이 옳은건지, 내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는건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바닥을 기어간다. 두 눈은 마루바닥의 얕고 긴 틈을 쫓는다. 이 경계는 언제 끝날까, 언제 사라질까. 얕고 긴 틈을 따라 눈을 굴린다. 앞에는 새로운 가로 틈이 있다. 경계는 끝나지 않는다. 눈은 멈추지 않는다. 바닥을 끝까지 기어다녀야만 나는 존재할 수 있다.

 존재를 포기하고 일어나는 순간, 나는 이 경계에 굴복한 패배자가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이 경계의 시작으로, 기어다니기 시작한 무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지.

정 훈
정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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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날아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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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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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훈
  •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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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훈
  •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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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정훈 님. 오랜만에 뵙네요. 조용히 태양을 바라보며 일광욕을 하는 부부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에요. 이 소설의 특징은 사유를 풀어놓는 "나"인 것 같네요. 이렇듯 사유 위주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유의 전개를 단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충분히 구체적이고 물질화된 사건이나 이미지나 이야기로 보여줄 수 있느냐입니다. 또 그 사유를 객관화시킬 수 있는 서술들, 그 서술이 발생시키는 의미망들 또한 중요하지요. 그저 작가의 머릿속에 지나다니는 사변들보다 소설적 상황 속에서 그 사유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 또한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소설보다 사유로 전개되는 소설은 쓰기가 어렵답니다. 이 소설은 "타인을 알 수 없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즉 타인과 나 사이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가 있고, 그 거리 너머에 존재하는 타인의 슬픔과 고통이란 "내가 지금까지 봐온 것"이라는 인식 세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 이 주제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내가 봐온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서사, 그리고 타인의 슬픔이 어떤 식으로 내게 육박하는지에 대한 감각적 서술이 더 필요합니다. 백발 할아버지와 아내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끝까지 사유하려는 "나"가 필요하고, 그 사유가 "내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있었던 건지"의 의심으로 향해야 "회의감"이라는 감정이 보다 효과적이고 강렬한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다소 문장이나 정황이 성기고 평면적이에요. 마지막 부분의 문장, 즉 "바닥을 끝까지 기어다녀야만 나는 존재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좋네요. "내"가 어떻게 "끝나지 않는 경계"를 쫓고, "바닥을 끝까지 기어다니"고 있는지의 구체적인 궤적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소설 잘 읽었어요. 다음 소설 기다리고 있을게요.

    • 2019-01-12 09:42:23
    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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