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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를 읽고

  • 작성자 stangdar
  • 작성일 2019-02-28
  • 조회수 2,144

나는 최근에 조지 오웰의 걸작, 1984를 읽었다.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에 대해 관심도 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이와 비슷한 주제를 가진 영화, 브이 포 벤데타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을 한 번 읽어보게 되었다. 1984는 조지 오웰이 그가 생각한 희망없고 암울한 미래를 예측하여 쓴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1984년, '오세아니아' 라는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 국가로, 행정부를 4부로 나누어 통치한다. 전쟁을 주도하는 평화부, 식량을 담당하는 풍부부, 사상죄를 맡는 애정부, 그리고 선전을 맡는 진리부가 있다. 그리고 이 행정부를 통괄하여 '당'이라고 부르고, 사람들이 '빅 브라더' 라고 부르는 오세아니아의 최고 통치자가 있다. 그리고 이 당을 구성하는 당원들은 각각 다른 부서에 들어가 그 밑의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 외에 오세아니아 국민의 85%나 되는 서민계층이 있는데, 이들을 무산계급이라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그외에 당의 적인 골드스타인이 주도하는 형제단이라는 단체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하겠다. 이 소설은 윈스턴 스미스라는 진리부의 기록국에서 근무하는 젊은 당원이 주인공인데, 그는 비록 당원이기는 하지만, 조국의 당에 대해, 빅 브라더에 대해 회의감과 증오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당이 금지하는 일기를 남몰래 쓰기도 하고, 당원이 돌아다니면 안 되는 무산계급의 도시도 가끔 배회한다. 그러다가 자신을 감시하는 까만 머리 여자와도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녀는 사실 그와 같은 당에대한 반대파였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줄리아이다. 하지만 당원끼리 연애는 금지이기 때문에 그들은 텔레스크린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몰래 만나면서 지낸다. 그러다가 윈스턴은 자신과 같은 반대파라고 생각해온 오브라이언을 찾아가 형제단에 가입한다. 그리고 당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윈스턴과 줄리아는 채링턴 씨의 가게의 침실에서 잠을 자다 테렐스크린에 발각되어 사상죄로 체포당하고, 그는 애정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오브라이언에게 심문도 당한다. 그렇다. 오브라이언은 사실 정통파 인물이었는데, 형제단 회원인척 속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길고 긴 심문과 세뇌를 당한 후, 윈스턴은 사형을 당하지 않고 다행스레 석방되지만, 옛날에 그가 품었던 당에 대한 회의감, 증오심을 잃고, 당과 빅 브라더에 충성하며 여생을 보내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1984가 이러한 비극적인 이야기라서 생각할 거리가 더욱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소설의 결말에 대해 두 번을 예상해보았다. 먼저,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에게 찾아가 형제단에 가입하고, 당을 무너뜨릴 것을 약속할때, 나는 그와 형제단 회원들이 힘을 합쳐 당을 무너뜨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고, 당은 무너지지 않았다.

두번째로, 윈스턴이 애정부에 잡혀서 고문과 심문을 당할 때, 그는 결국 사형을 당할 줄 알았는데, 석방되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당원에게는 조금 너그러움이 있는가 보다. 그렇지만 석방되었지만, 예전에 그가 품던 당에 대한 증오심이 사라지고, 당에게 충성하게 되었다는 점이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얼마나 모진 고문과 심문이 있었기에 사람의 마음까지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조지 오웰의 소설은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를 풍자하고 비판한 소설을 주로 썼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가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좌익세력에 대한 환멸감을 느낀 때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을 찾아보면, 이러한 정치적인 소설을 읽어볼 수 있어서 참 재미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갔을 때, 나는 당이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을 줄이기 위해서, 신어를 만들어서 쓴다는 사실도 되게 인상깊었다. 신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당의 통치를 영구적으로 하기 위해서 만든 언어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줄이기 위해서 그러한 것들을 표현하는 단어들도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당의 전체주의와 반대되는 단어들도 당연히 완전히 싹 사라진다.  그리고 당은 빅 브라더가 내세운 공약과 예언에 어긋나는 과거의 사실들을 지우고, 그러한 것들과 부합되게 다시 과거를 새로 날조한다는 것도 참 충격적이면서 놀라웠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는 문구도 인상깊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의 기록이 사라졌다고, 자신의 머릿속의 그 과거사실에 대한 기억도 말끔히 지워버리는 오브라이언의 이중사고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새롭게 생각해본 개념이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전체주의 및 공산주의는 어떤 면으로 보았을 때는 국가를 잘 통치하는 체제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방면에서 보면 참으로 무서운 사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책을 몇달전에도 읽으려고 했었는데, 시험준비 때문에 못 읽고 이번 겨울방학으로 미루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읽고 싶어 했던 1984를 이번 방학 때 읽게 되어서 참 기뻤다. 다른 조지 오웰의 소설도 찾아서 좀 읽어봐야 겠다,

stang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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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angdar
  • 20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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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우은실

    stngdar님 안녕하세요? 또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글을 써주셨네요. stangdar님의 매우 극적인 줄거리 요약을 보면서 저도 오랜만에 1984를 다시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글에 대해서는 좀더 형식을 정돈하는 방향으로 코멘트를 드리고 싶어요. 문제제기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다소 글이 정돈된다면 더욱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서론에서 영화 '브이포벤데타' 언급을 해주었으니 그와 관련한 구절이나 장면으로 바로 글을 열면 어떨까요? 1984와 겹치는 부분이라거나, 1984를 연상할 만한 부분으로 시작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줄거리 요약 부분인데요, 줄거리는 단순히 스토리를 정리하는 역할인 듯이 여겨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화소(이야기의 작은 단위들) 중에 어떤 것에 주목하여 글을 전개할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줄거리가 아닐까요? 가령 누군가는 '1984는 인간의 사상과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다'라고 요약할 수도 있겠지요. 아마 stangdar님은 이 소설의 설정이 복잡하다보니 그것을 상세하게 서술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여러 가지 설정이 있는 소설의 경우 설명할 것이 많아지기는 해요. 그럴 때에는 장면 단위로 제시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두 번의 결말이 어긋났던 것에 대한 충격과 추측들, '신어'와 관련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긋난 결말에 대해 뭔가 더 나아갈 지점이 있다면, '만약 그러한 결말이 최선이었다면 어째서였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신어'에 주목한 것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언어는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언어는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가, 인간의 사상과 언어는 어떠한 연관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것은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 따라올 수 있겠지요? 이와 관련하여 글을 길게 늘려 보는 연습을 해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서론을 먼저 쓰는 글쓰기를 하라고 추천하는 편은 아니에요. 서론에 너무 집중하다보면 정말로 이야기하려고 했던 부분에 가서는 힘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이 점 유의하셔서 다음 번에는 stangdar님의 흥미로운 관점이 십분 살아나는 글을 보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2019-03-03 22:16:47
    선우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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