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 작성자 김한세
- 작성일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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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전국 고등학교 순위를 검색해보면 매년 20등 안에는 들어있는 그런 학교였다. 순위는 서울대를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에 따라 매겨졌다. 우리 고등학교는 서울대를 14명쯤 보내는 학교였다. 서울대를 10명 넘게 보내는 학교들은 대부분 입학시험을 따로 쳤다. 나는 동네 고등학교에 죽어도 가기 싫었다. 중학교 때의 생활과 성적을 종합한 서류를 제출했고, 면접을 봤다.
내가 겪었던 과정을 함께 거치고서 커트라인 위에 남은 아이들은 3월 2일에 같은 교복을 입고 모였다. 시계는 8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담임이 들어와 조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학생들은 가나다 순으로 배정된 번호를 받고 다시 번호에 따라 배정된 자리에 앉았다. 누구는 책을 읽었고, 누구는 문제집을 풀었다. 그렇다고 해서 반 안의 모든 학생이 공부만 마냥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근처 자리에 앉은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고 담화가 시작되었다. 어디서 왔니, 전날 기숙사 침대는 편했니, 첫 조식은 어땠니. 그 기저에는 기묘한 침묵이 존재했다. 말과 말이 엉기지 못하고 수면 위에 둥둥 떠다녔다. 힘든 시험을 뚫고 들어온 ‘우리’라는 공동체 전부에게서 느끼고 마는 흡족함. 나주는 독서를 하던 학생 중 하나였다. 나주는 나보다 먼저 교실에 도착해서 책을 읽었다. 사무엘 베케트였다. 나는 중학교 때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민음사의 세계 문학 컬렉션의 황색 띠. 나주의 손에 들린 책에 도서관의 바코트 스티커는 없었다. 은연중에 나는 그 애가 베케트의 책을 그 자리에서 처음 읽고 있는 것이길 바랐다. 베케트의 말장난에 우왕좌왕 휘둘리길 바랐다.
신입생들은 점심을 먹고 자발적으로 학교를 돌아보았다. 3층에는 강당이 있었다. 입학식을 진행했던 곳이기도 했다. 배드민턴 네트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고학년들은 배드민턴을 쳤다. 입학식을 진행하던 때 교장이 작년의 대학 입시 실적을 주렁주렁 읊어 내리던 연단을 지나친 곳에는 덩그러니 피아노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무대 위 구석에서 눈송이 같은 먼지를 맞았지만 꽤 괜찮은 피아노였다. 신입생 중 가장 먼저 그 건반에 손을 올린 건 나주였다. 그 애가 쳤던 두 개의 곡을 아직도 기억한다.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와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유튜브에서 무작위로 음악을 넘기다가 들었던 곡이라서 이름을 알았다. 나는 배드민턴 라켓을 쥐고 그 애의 연주를 들었다. 셔틀콕이 스트링에 맞고 규칙적으로 튕겼다. 메트로놈 같았다. 그 애는 셔틀콕이 스트링을 때리는 소리와 소리의 간격에 셋잇단음표와 16분 음표를 구획했다. 음의 세기가 할당된 자리를 정교하게 채웠다. 마치 인쇄소의 기계가 잉크를 규칙적으로 찍어내는 것처럼. 어쩌면 리스트와 바흐가 잘게 갈려 악보 위의 검은 음표가 되었고, 그것들이 나주의 손아래서 그대로 찍혀 나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실없는 상상을 하는데 나주가 연주를 마치고 자리에서 피아노 의자를 정돈했다. 여자애들이 어느새 네트를 정리하고 피아노 곁으로 모였다. 진짜 잘 친다. 피아노 몇 년 배웠어? 나주가 배시시 웃었다. 7살 때부터 쳤어. 강당의 저 끝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남자애들은 과장스럽게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가 시작하는 그 순간까지 귀에 머물렀다. 그날 밤 기숙사로 들어온 나는 가장 먼저 바흐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을 찾아 들었다. 바흐의 협주곡 1번은 마지막에 들었다.
우리보다 먼저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던 선배들은 첫 룸메이트가 제일 오래가는 친구라고 그랬다. 논리적으로는 얼추 맞는 말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은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맺던 인연들을 놓고 와야 했다. 그런 그들이 이 학교에서 최초로 안면을 트는 사람은 룸메이트였다. 같은 방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공동체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입생 대부분이 조식을 룸메이트와 함께 먹었다. 나도 그랬다. 룸메이트는 빵을 좋아했다. 크루아상과 식빵의 부스러기를 잔뜩 흘려가며 먹어치웠다. 식판이 테이블 위를 뜨면, 한때 빵을 이루던 잔해들이 쌓여 있었다. 바로 옆방을 쓰는 나주는 혼자서 조식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조급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하루 일과를 앞당기고 싶다는 이유를 들며 더 이상 룸메이트와 조식을 먹지 않았다. 반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세탁기를 일찍 돌리려 여섯 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주와 제대로 안면을 튼 건 세탁실에서였다. 그 애는 아직 해도 안 뜬 6시에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서 세탁실로 들어왔다. 내 추레한 모습이 창피해졌다. 물론 내색할 수는 없었다. 내 창피함은 어쩌면 나주 앞에서만 발현되는 뒤틀린 감상일지도 몰랐다. 애초에 기숙사라는 환경은 누구나 편한 잠옷을 입고 생활하는 공간이니 거기서 굳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힘들었을 텐데. 조식을 같이 먹자는 약속은 정말 어쩌다가 기적적으로 성사되었다.
입학하고 나서 첫 주에 학생들의 단골 대화주제는 입시였다. 우리는 이 학교에 들어오는 데 총 세 번의 시험을 봤다. 서류 제출, 면접, 필기 고사. 마지막 필기 고사는 합격생들끼리 반을 나누기 위해 본 시험이었다. 공통 질문과 개별 질문이 병존하는 면접은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소재였다. 면접일은 주말이었고, 나는 부모님의 차를 타고 학교까지 왔다. 면접이 끝난 시간은 저녁 7시가 넘어서였다. 우리 가족은 인근 대학병원 주변의 한정식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엄마는 경쟁률을 재며 내 합격을 가늠했고, 아빠는 유감없이 카드를 긁었다. 외고생 우리 딸. 나주는 혼자 면접을 보러 왔다고 했다. 근처에 살아? 나주는 내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나주의 본가는 부산이라고 했다. 우리 집은 의정부에 있다. 버스를 타도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의정부. 그리고 나주는 면접 전날 밤에 경기도로 올라와 학교 근처 모텔에서 잤다고. 그 순간 나주가 아득해보였다. 나주의 앞에서 나는 언제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아직 중학교 때의 젖내를 떨치지 못한 유년기의 아이였다. 나주는 놀랍도록 성숙했다. 그 애는 우리 또래 사이에서 성숙함의 표상으로 군림했다. 나주의 웃음소리는 절대로 고막을 괴롭히는 높이만큼 올라가는 법이 없었고, 신입생들이 기숙사 매점에서 간식으로 용돈을 탕진하고 있을 때면 홀로 과일 몇 조각을 아삭거렸다. 가장 피로할 시험기간에도 나주의 학습실 책상과 침대가 흐트러지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입학하던 때에 엄마가 그립다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통화를 하던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 뒤편에는 산책하는 길이 있었다. 산책로라고 표현하자니 굉장히 지적이고 우수에 찬 무언가 같이 느껴지지만, 실상은 멋없는 솜씨로 화초와 나무 몇 개를 심은 길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길을 애용했다. 둘의 책 취향은 꽤나 비슷했다. 우리는 회양목 덤불을 지나며 서로가 생각하는 베케트의 고도가 품은 의미를 공유했고, 하얗게 핀 철쭉을 손가락 끝으로 훑으며 파스칼 키냐르의 떠도는 그림자를 이야기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철쭉을 훑던 쪽은 내가 아니라 나주였다. 단정하게 깎은 손톱 아래의 살이 부드러운 잎맥을 쓸어내리던 순간, 말 못하기 이전의 존재 모두에게는 언어가 없다던 키냐르의 말에 어렴풋하게 동의할 수 있엇다. 나는 눈꺼풀 없는 귀의 열매로 회귀했다.
여름 방학 때 나주의 집을 방문했다. 나주의 초대였다. 시간 부담 안 되면 한 번 올래? 나는 폰을 켤 때마다 카톡을 열고 나주의 문자를 읽었다. 마침내 문자가 너덜너덜 닳아 의미와 유리되는 때까지, 그 이후에도 계속. 의정부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다섯 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탔고, 다시 남포동에서 지하철을 한 시간 동안 탔다. 나주는 1번 출구에 서 있었다. 하염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는지,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뻗기도 전에 눈이 마주쳤다. 미끈한 슬리퍼를 신고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를 입은 나주는 집까지의 길을 안내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갗에 눅진히 엉겨 붙었다. 창문이 활짝 열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잠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파도가 반짝거리면서 빛났다. 좋겠다, 집에서 바다가 다 보이네. 나주는 내 감탄에 고개를 저었다. 사계절 내내 습하기만 할 뿐이라며. 거실 벽에는 큼지막한 액자 두 개가 붙어있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찍었던 가족사진과, 얼마 전에 찍은 것 같은 가족사진이었다. 후자를 최근의 것이라 판단할 수 있었던 건 나주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네 명의 사람이 있었다. 나주와 부모님과 남자형제 하나. 나주의 어머니는 길쭉했다. 땅딸막한 나주의 아버지는 눈이 툭 불거져 있었다. 그 어느 쪽도 나주와 닮지 않았다. 입술을 불퉁하게 비죽 내민 소년 하나가 나주의 옆에 위치했다. 솔직히 그는 소년이라고 부르기에는 키가 너무 컸다. 내가 물었다. 설마 동생이야? 으응. 나주는 어물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더웠겠다. 뭐라도 마실래? 나는 아무거나 달라고 했다. 사진 속의 나주는 웃고 있었다. 어린 나주와 지금의 나주 모두. 한낮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주의 어머니는 매일 아침 교회에 성실히 나갔고,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본사에 다니느라 주말에만 본가에 발을 들였다. 남동생은 12시가 되면 친구들과 나가 밤 10시쯤에 돌아왔다.
반질반질한 갈색 피아노가 활짝 열린 거실 창문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미세한 흠집이 많았다. 나주가 8살이 되었을 때 할머니 집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16분 음표를 완벽하게 분배해내는 나주의 재능은 어쩌면 핏줄을 타고 대대로 흐르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얻는 세 세대. 나는 두꺼운 뼈와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힌 손가락이 건반을 부드럽게 훑는 상상을 했다. 그 위에 그 애 어머니의 손이 포개어지고, 가장 위에 그 애의 단정한 손가락이 춤을 추는 그런 상상을.
잔잔한 거 쳐줘. 내가 주문했고, 나주가 F 건반을 눌렀다. 텅. 해머가 현을 때리는 소리가 덜그럭거렸다. 저런 소리를 내는 피아노를 딱 한 번 쳐본 적 있다. 어렸을 때 살았던 아파트 앞 지하상가의 피아노 학원에서. 악보대와 피아노 뚜껑의 이음새 사이에는 하얀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었다. 그 피아노가 떠올랐다. 나주는 조율하기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피아노가 굉장히 노쇠했고, 또 집 앞이 바다기 때문에 소리를 원상태로 복구하긴 힘들 거라고. 피아노가 이 집에 들어온 이후로 조율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나주는 앞으로도 영원히 조율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작게 덧붙였다. 곰팡이가 해머를 하얗게 뒤덮고, 스트링을 살라먹고, 건반이 무너질 때까지. 그 애는 곡을 연주했다. 연주는 언제나처럼 완벽했다. 악기 소리가 거슬렸다. 음의 파장을 그리는 그래프가 쭉쭉 뻗다가 포자의 가지 사이에 제멋대로 엉키고 갇혀 버린 것 같았다. 나는 건반을 분리해 구석구석에 낀 곰팡이를 닦아내고픈 충동을 느꼈다.
나는 바닥에 앉아 서재 칸의 악보집을 뒤적거렸다. 오른손 하나로 음 세 개를 뚱땅거리는 바이엘부터 양손의 아르페지오가 춤추는 베토벤 소나타가 유년부터 지금까지의 그 애를 드러냈다. 최근에는 카를 타우지히가 편곡한 슈만의 밀수꾼을 친다고 했다. 물론 나는 처음 듣는 곡명이었다. 클래식은 뭐가 너무 많았다. 한동안 이야깃거리를 미리 준비 해보겠답시고 리스트와 바흐를 틈틈이 들었다. 무슨 작품이 이리도 많은지. 유튜브에서 연관 동영상으로 뜨던 곡들을 하나씩 듣다가, 어느 날에는 현재 공개된 클래식 작품을 모두 모아 둔 사이트를 방문해봤다. 그나마 아는 이름의 작곡가 항목에 들어갔다가, 끊이지 않는 스크롤을 본 나는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접근은 성급했다. 굳이 리스트나 바흐를 고집하지 않고, 차라리 다른 쪽을 파고드는 게 나았을 텐데. 나는 언제나 대화를 주도하는 쪽이 되지 못했다.
네 개의 손가락이 D 건반을 빠르게 연타했다. 뎅뎅뎅뎅. 같은 음이 반복되는 소리가 주술의 일종처럼 들려왔다. 찬송가에서 찬양하라-Laudate-는 단어를 라틴어로 연신 되뇌는 합창단이 떠올랐다. 그 단어의 음절이, 반복되는 트레몰로의 단위가, 그것들이 모두 네 개라는 데에 무언가 신비스러우면서 과학적인 원리가 끼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나주가 독일어 가사가 붙은 원곡을 불렀다. Weiß wohl! 그렇게 외치는 가사는 노랫가락이 아니라 일종의 고함처럼 들렸다. 그 애는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법이 없었기에, 조금 의외였다. 내가 과장스럽게 투덜거렸다. 야, 나 독일어 8등급 나왔어. 나주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웃었다.
나주의 어머니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우며 잘 쉬다 가라고 말했다.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식탁에 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아버지를 위시한 상석은 비워둔 채. 식탁 뒤 하늘색 벽에는 십자가와 예수의 얼굴과 교회 전경을 프린팅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벽을 가득 메우는 신앙의 상징물들이 어느 유명한 디자이너의 사진 컬렉션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과 액자로 이루어진 벽지, 신앙의 바로크, 신앙의 로코코. 나주의 어머니는 여백을 증오하는 사람일까? 그들은 식기를 짤깍거리기 전에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하느님 아버지로 시작되는 그 긴 기도문을 줄줄 소리 내어 읊었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의외라고 생각했다. 급식실에서 식판을 앞에 두던 나주는 한 번도 자기 신앙을 표현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나주가 학교에서 신앙을 특별히 드러내 보인 적은 없었다. 나주의 어머니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서 절대 등받이를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 은정이는 어디서 왔어? 외고잖니, 애들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 첫 학기 정말 수고 많았구나. 식사 시간의 대화를 주도하는 건 그분이었다. 나주는 입을 다물고 젓가락 끝이 향하는 나물에 시선을 집중했다. 가끔씩 희멀건 웃음을 짓다가도 이내 시선을 돌리고선 염소처럼 밥을 씹었다. 나는 그분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어설픈 미소를 띠우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한번 교회에 나와 보는 건 어떠니? 힘든 입시 생활에 든든할 테지. 나주 어머니의 말은 교회로 끝났다. 신앙을 품은 말은 물 위의 기름처럼 공기 중에 둥둥 떴다.
나주의 집에서 머물던 중에 프로그램 하나를 발견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국의 현대미술관을 돌며 전문 도슨트와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이었다. 나주는 당연히 관심을 표했고, 나는 그런 반응을 유도해낸 게 뿌듯했다. 문제는 신청서를 보내며 인터넷으로 참가비 만 원을 입금하는 일이었다. 기한은 그날 밤 12시까지. 지금 성주가 없는데, 남자 방엘? 나주의 어머니가 이마를 찡그렸다. 손가락 끝이 다른 손가락과 엉기며 탁탁거렸다. 나주는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네, 컴퓨터를 쓸려고요. 하지만 그건 네 동생 컴퓨터잖아. 어디에 쓰려고 하는데? 나주의 어머니는 마뜩찮은 눈치였다. 나주는 내가 알려준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충분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더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설명의 내용이 빈약하지도 않았다. 만약 이 상황이 발표 수행평가 중이었다면, 나는 나주에게 만점을 줄 것이다. 나주의 어머니는 딸의 점수를 박하게 채점하는 분이었다. 성주가 집에 오거든 그때 하면 되잖아. 그분은 그렇게 일축하셨다. 그리고 그날, 나주의 동생은 친구 집에서 외박을 하겠다고 늦은 밤에 통보했다. 나주는 자잘한 글씨로 신청 동기를 써둔 종이를 버렸다.
나주의 집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개학이 찾아왔다. 2학기를 맞은 학교에 나온 나주는 학교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았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거든 나와 팔짱을 끼고서 강당으로 내려갔다. 나는 피아노 의자 구석에 앉아 연주를 들었다. 어쩌면 나주는 손가락에 무형의 악보를 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반 위에 올리는 때 매끄럽게 돌돌 풀리는 그런 무형의 악보가. 그 애의 부드러운 손가락은 윗세대에 의해 떠받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축으로 기능했다. 나중에 나주에게 내 우스운 상상을 고백한 적이 있다. 삼대에 얽힌 피아노의 환상. 그 이야기를 들은 나주는 미간을 찌푸리다 흐리게 웃고 말았다. 나는 나주를 따라 머쓱하게 웃었다. 그때는 내 상상이 망상에 불과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때니까. 강당 피아노의 트레몰로 소리는 나주의 본가에 있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2학년이 되자 시간은 더 정신없이 흘러갔다. 선생님들은 생활기록부를 채울 만한 활동들을 2학년 때 끝내길 원했다. 엄마는 내가 1학년 여름 방학 때 나주네 집에 다녀온 걸 계속 탐탁지 않아 하셨다. 그때 제대로 수2 과정을 선행했다면 수학이 지금만큼 바닥을 치지는 않았을 거라는 논지였다. 그 외에도 내가 책 읽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느니, 생기부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을 활동만 잔뜩 쌓아둔다느니, 성적도 형편없는데 생기부 활동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느니. 그즈음부터 나는 엄마의 불만을 못 들은 척 넘겼다. 3학년이 되어서는 아예 누군가와 말을 나눌 시간도 짧아졌다. 쉬는 시간에는 책상 위에 엎어져서 쪽잠을 잤고, 눈을 붙이지 않을 때는 주위 애들과 서로의 입시 고초를 토해내기에 바빴다. 9월쯤 되어서는 원서 접수를 했고, 마침내 나는 수시 티켓 6장 중 한 장이 걸렸다. 나주는 원하던 대학에 붙었다. 합격통지를 확인한 날, 우리는 기숙사에서 택시를 불러 시내로 갔다. 시내로 나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향유하지 못했던 걸 누리고 싶었다. 나는 타르트를, 나주는 마들렌을 먹었다. 이제 뭐 할 거야? 내 물음에 나주는 잠시 동안 포크 끝으로 마들렌을 해체했다. 조금 후에 그 애가 대답했다. 자취방을 알아 볼 거야. 그 애에게 부산의 본가는 무슨 의미였을까?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집. 형체 없는 구속. 이제 나는 왜 그 애의 웃음소리가, 간식이, 책상이 그토록 야트막한지 잘 안다.
나주의 부모님은 뿌듯한 기색으로 고등학교 졸업식에 오셨다. 나주의 어머니는 나를 발견하고 아는 체 했다. 나는 꽃다발을 조금 높게 든 채 입 꼬리를 당겼다. 아직 객석 앞이 서투른 배우처럼. 나주의 어머니는 남동생의 양 어깨에 두 손을 의탁하고 있었다. 우리 성주도 내년에 좋은 대학 가야지. 나주의 남동생은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부산에서 이곳까지 온 게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내 부모님과 나주의 부모님은 강당의 끝에서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주의 아버지는 고개를 젖혀 가며 큰 소리로 웃었다. 툭 불거진 눈이 더 튀어나올 것 같아서 나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곁에 있던 나주가 내게 속삭였다. 자취방 구하면 연락할게. 놀러와. 학생들은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 교장과 악수를 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장을 받고 나서는 3학년을 맡았던 담임과 포옹하고 하나둘씩 학교를 떠났다. 모두가 새로운 희망을 그렸다. 나주도 떠났다. 졸업생 부모님들이 끌고 온 차의 행렬 속으로 사라졌다.
나주와 소식이 끊겼다. 원래 나주가 폰을 잘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틀 정도가 지나면 답장을 주곤 했다. 그마저도 3월이 되고나서부터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노란색 숫자 1 표시가 뜬 카톡이 계속 쌓여만 갔다. 0과 1로 된 벽 앞에서 독백하는 기분이었다. 완전히 초조해진 건 대학에서의 첫 학기를 마치고서였다. 나는 충동적으로 부산행 버스를 예매했다. 3년 전 여름의 기억을 더듬어 지하철을 타고 수영역에 내렸다. 정오의 태양은 화사했고, 구름은 르네 마그리트의 캔버스에서 솟아나온 것 같은 입체감으로 하늘을 수놓았다. 하늘이 푸르게 맑았다. 흠집 없는 구슬 두 개를 가볍게 퉁기면 나는 소리를 색으로 빚어낸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서서 하늘을 찍었다. 사진을 보여주며 나주에게 말하고 싶었다. 네 이름의 한자는 아들을 끌어오기 위한 한낱 그런 이름이 아니라고. 나주의 할머니가 붙였다던 그 한자를 푸르게 덮는다면. 집으로 향하는 골목은 바뀐 게 없었다.
나는 나주의 집이 서 있던 자리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골목에 위치한 모든 게 3년 전과 다른 게 없는데, 오직 나주가 살던 집만이 바뀌었다. 심장이 귓가에서 불안스레 쿵쿵거렸다. 쇠로 된 직사각형 모양 패널이 마당이 있던 자리를 두르고 있었다. 초록색 안전망을 두른 이층집의 형태는 낯설었다. 이전 집의 외벽은 붉은 벽돌로 쌓아 올렸는데, 지금 것은 하얀색 합판을 썼다. 안전모를 쓴 인부들이 패널 둥지 안을 바쁘게 배회했다.
그 집 딸이 불을 질렀대요. 옆 집 사람이 전말을 들려주었다. 가족들이 다 자고 있던 새벽에 일을 저질렀대나 봐요. 한때 나주 가족의 이웃이던 그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는 내게 차를 권했다. 나주는 집을 물리적으로 규정하는 테두리를 따라 천천히 휘발유를 둘렀다. 나는 불을 그리는 나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애가 손끝에서 빚어내었을 화염. 외곽의 담장, 합판과 창문으로 이루어진 집. 조율이 안 된 피아노도, 가족사진도, 십자가도, 액자도, 사람도 함께 타오르길 바라면서. 그 모든 것이 무너졌다. 옆 집 사람은 불이 난 자리를 향해 눈을 흘깃거렸다. 아주 몹쓸 자식이죠. 부모가 등골 빠지게 자식 키워봐야 뭐하나. 나주의 가족은 불타는 집을 무사히 뛰쳐나왔다. 남동생이 가장 먼저 깨서 집안사람을 깨웠다고 했다. 거기에 나주는 없었다. 차는 형편없었다. 나는 찻잔을 다 비우고 이웃집을 나섰다. 패널의 울타리를 두른 땅에는 여전히 망치 소리가 울렸다. 메트로놈이 똑딱이는 소리와 닮았다. 나주는 가장 마지막으로 자기 몸에 기름을 들이붓고선 화염 속으로 들어갔다. 불꽃은 나주의 얼굴을 장밋빛으로 밝혔을까? 불에 몸을 던지던 순간의 그 애는 울지 않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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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애한테서는 독특한 향이 났다. 나는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언제 한 번 향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애는 향의 이름부터 출처까지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지금 시점에서 그 애의 음성을 떠올리려 하자, 자음과 모음이 뒤섞이다가 뭉그러지고 말았다. 기억 한 줄기를 겨우 건져냈다. 스리랑카에 산다던 그 애의 할머니가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거라고 말했던 것 같다. 어쩌면 떠올리지 못하는 게 자연스러운 순리일지도 모른다. 다른 곳에서 그 애의 향을 맡은 적이 없다. 그러니까 향은 그 애의 오롯한 색깔인 셈이다. 그 애의 이름 세 글자면 향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충분했다. 향은 낯선 거리감을 상쇄하려는 듯 그 애의 흔적이 깃든 거의 모든 곳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그 애의 옷가지, 그 애의 머리카락, 그 애의 책, 그 애의 침대에서. 그 애의 육체를 이루는 분자에도 향이 스며있을 것처럼. 언제 한 번 그 애가 긴팔을 걷어 올린 채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을 때, 손등을 붙잡고 체취를 맡고 싶다고 생각해봤다. 그 애의 향기는 여름에는 서늘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다가왔다. 사람에게는 집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대부분의 애들이 그랬다. 다들 집이 품고 있던 향기를 몰고 왔다. 어렸을 때 친구들의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온갖 냄새를 섭렵했다. 옷장 속의, 이불 속의, 화장실 속의 냄새. 그렇게 다른 애들이 갖던 냄새의 출처를 금방 알아챘다. 그 애는 내가 알던 것과 반대였다. 마치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것 같았다. 우리의 집은 기숙사였다. 우리는 기숙사에서 공부했고, 잤고, 먹고, 울었고, 놀았다. 그러니까 기숙사는 우리 집이었다. 기숙사에서는 기숙사의 냄새가 났다. 지하실 창고에서는 누군가 햇볕 아래 땅콩을 말리는 것처럼 고소한 향이 났는데, 어떤 애는 그 향을 두고 지네의 발자취 냄새라고 했다. 어떤 때는 녹슨 냄새가 나기도 했다. 수돗물이 잘 정비되지 않은 쇠파이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그러면 우리는 청소 대행업체가 기숙사비를 떼어먹었다면서 수군거렸다. 북쪽을 바라보는 벽에 위치한 방들에서는 단단한 나무의 냄새가 났다. 밤에 방에서 자다가 아침에 교실로 막 나온 북쪽 방의 학생들에게서는 숲의 어둠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 애와 내가 쓰는 방은 이도저도 아닌 곳에 있었다. 지하와 옥상의 딱 중간에 걸친 층, 사감실 쪽 화장실과 연결된 덕에 녹슬 일 없는 수도관 파이프, 학교 본동과 기숙사를 연결하는 통로 근처에 위치한 방. 우리 방 앞에 서면, 문이 닫혀있는데도 그 애의 향이 흘러나왔다. 나는 호실 숫자를 따로 읽지 않더라도 냄새만 맡고서 우리 방을 찾을 수 있었다. 가끔 복도에 아무도 없을 때면, 방에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 서서 새어 나오는 냄새를 맡았다. 만약 사생 중에 몽유병 환자가 있었다면, 우리 방을 이정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향은 문에 코를 갖다 대지 않아도 될 만큼 풍요로웠고, 그만큼 품위 있었다. 두개골 속의 뇌가 향기로 완전히 잠길 때쯤이면 황급히 문고리를 돌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 김한세
- 2020-02-10
지난 8월 31일에 연극 R&J(이하 “알앤제이”)를 관람했다. 알앤제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작으로 하여 조 칼라코가 각색한 작품으로, 가톨릭 학교에서 생활하는 네 명의 소년이 금서로 지정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탐독하는 내용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학교의 엄격한 규율에 지친 소년들은 밤에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온다. 이어 그들은 붉은 천에 싸인 책을 발견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등장하는 인물을 하나씩 맡아 읽으면서 작품 전반에 흐르는 감정에 서서히 이입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무대 위에는 두 가지 세계가 존재하게 되는데, 하나는 소년들이 엄격한 체벌과 규율에 시달리는 학교에서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어 가며 주도적으로 구축하는 감성적인 밤의 세계이다. 학교에서 기계적인 일과를 반복하며 비인간화를 겪던 소년들이 일과가 종료된 밤에 낭만과 감성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찍은 파룬 하로키의 작품,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 생각나기도 하는 구성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극이 소년들의 입을 빌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재현하므로 서사 면에서 작품을 보았을 때는 구조의 단조로움을 지적할 수 있다. 처음에 극을 관람하던 때에는 알앤제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동성애자의 시각으로 해석한 작품이라고 여기며 가볍게 접근했다. 물론 학생들이 극에 몰입하여 책 속의 장면을 그대로 연기하는 것이 이야기의 주된 흐름임은 맞다. 그러나 특정한 부분에서 연기하는 인물의 모습이 아닌, 학생의 인격이 튀어나와 몰입이 깨지는 경우가 존재했다. 그렇게 극 중에서 규정된 두 세계의 구분이 흩트려지는 지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단순한 재현이 파괴되는 상황에서 나는 괴리를 느꼈고, 이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다. 괴리는 두 개의 장면에서 발생했다. 첫 번째는 로미오 역과 줄리엣 역에 충실한 두 학생이 결혼 서약을 하는 장면에서이고, 두 번째는 집안에서 정한 약혼자를 거부하는 줄리엣이 아버지의 노호를 마주하는 장면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공언하는 때에 조연의 역할을 맡은 남은 두 명의 학생은 노골적인 감정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며 훼방을 놓으려 든다. 불우한 연인이 대사를 마저 읽지 못하도록 책을 뺏고 던지지만, 주연들은 방해에 굴하지 않고 극을 진지하게 마무리한다. 여태껏 인물의 입을 빌려 장난스레, 어쩌면 경박하게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재현하던 학생들은 이 장면을 계기로 해석의 문제에 진중하게 맞부딪히며 텍스트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즉 두 세계가 충돌하며 융합하는 지점은 소년들이 감성과 낭만을 회복하는 일종의 과도기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의 장면을 언급하기 이전에 이 극의 연출 특성을 잠시 언급하고 싶다. 알앤제이는 간단한 소재들을 다층적으로 사용하는 특성을 갖는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년들이 책과 함께 발굴한 붉은 색의 긴 천이 있는데, 이 천은 줄리엣의 평상시 의복이 되기도 하고, 수의가 되기도 하며, 두 연인이 첫 아침을 맞는 때에 온기를 지키는 이불이 되며, 길게 감아쥐어 검처럼 사용되기도 한
- 김한세
- 2019-09-30
그는 왕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늙은 왕이 본 첫 자식이었다. 먼 옛날, 신의 숨결이 쌓아 냈다고 전해지는 성은 새로운 생명을 환영했다. 그는 탄생과 동시에 후계자의 자리를 가졌다. 고여 가는 땅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 그렇게 그는 퀴퀴한 먼지가 낀 혈통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왕국은 천천히 고꾸라지고 있었다. 조정의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내분이나 외침의 문제가 아니었다. 왕국은 조용히 죽음을 맞고 있었다. 큰 얼음 덩어리가 따뜻한 물속에서 고요하게 풀리는 것처럼 죽어갔다. 모든 욕망과 열락이 죽어버린 것 마냥. 홀의 높은 천정이 빚는 침묵은 무거웠고, 클리어스토리로 투과되는 빛은 붉은 카펫 위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을 짓눌렀다. 사람들은 성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표현했다. 어쩌면 맞는 말이었다. 왕가의 사람들이 대대로 생활해왔던 성은 미로 같은 곳이었다. 방과 방이, 벽과 벽이 엉클어졌다. 색유리를 끼워 넣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섬뜩했다. 빛에 닿는 누군가를 수몰시키는 것처럼. 그러는 가운데, 왕족들은 어느 때부터인가 광증을 앓기 시작했다. 신의 후예로 추앙받던 때의 영광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광기는 핏줄을 타고 흘렀다. 저마다 앓는 증상은 달랐다. 어떤 이는 활자를 읽어 내리지 못했고, 또 어떤 이는 손에 잡힌 것을 모조리 부수고 집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든 다음에야 양피지를 보았다고 했다. 무엇이 이들을 미치게 만든 건지는 아무도 몰랐다. 왕족은 근친 간의 결합을 엄격하게 배제했으므로, 수많은 왕국을 고꾸라뜨리던 혈족 간의 결혼은 왕가의 병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서히 질식했다. 칼을 들고 난동을 피우던 선대에 비하면, 그래도 이번 왕께서는 얌전한 축 아니겠어? 그는 시종들이 그리 소곤거리던 이야기를 통해 왕가의 광증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란 본래 작은 것에 쉽게 웃고 우는 존재들이었기에. 푹신한 이불과 따뜻한 식사가 세계의 모든 것이던 때였다. 그의 곁에 모인 이들은 왕국에 깃든 역사와 전설을 성심껏 이야기했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 하늘을 향해 뻗는 초록 가지, 희게 웃는 신, 정한한 기사들과 노래하는 신관들. 아주 어렸을 때, 제 머리조차 가누지 못하고, 요람에 누워 다른 사람의 손길을 받고만 있어야 했을 때라면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을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 특유의 말간 눈동자를 굴리며. 그러면 시종들은 어린 아기의 깨끗한 얼굴을 들여 보며 저마다의 기대를 품었을 것이다. 온후한 성정으로 자란 후계자가 옥좌 위에 앉게 되거든 자애로운 눈길로 저희를 굽어보리라는. 이 땅에 다시 영광을 가져오리라는. 유모는 아스라하게 웃었다. 그는 그 미소를 항상 봐 왔다. 가장 오래된 유년의 기억은 맨질맨질한 이불을 덮어주는 유모의 모습이었다. 그때도 유모는 조용히 입 꼬리를 휘었다. 부서질 것 같은 미소의 끝에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하, 성군이 되십시오. 그러면 그는 아직 가누기에는 무거웠던 머리를 끄덕였다. 유모는 그의 부모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어렸던 그가 의아하게 여길 만큼
- 김한세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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