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발톱
- 작성자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 작성일 2021-10-18
- 좋아요 0
- 댓글수 2
- 조회수 209
세상사람들은 말합니다.
융통성 있게. 현실적으로.
손에서 미끄러진 비수를 꽂습니다.
그래, 그들은 말합니다.
저는 그게 두려워 숨었습니다.
자신을 감추고 상냥함을 둘렀습니다.
아아, 저는 그동안 발톱을 둥글게 잘라왔습니다.
둥글게. 그것이 옳다고 들어왔던겁니다.
그렇게, 저는 안으로 굽어왔던겁니다.
파고든 발톱은 살을 후벼파 상처를 만들고,
결국 더이상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굳은 살이 되어버립니다.
아아, 발톱은 일자로 잘라야하는 것이였습니다.
일관성 있게. 이상적으로.
한층더 단단해진 비수를 받습니다.
추천 콘텐츠
내 잘못이라고. 불화를 만들지 않는 말. 상처를 내가 먹어버리면. 그 말버릇이 벌써 3년째. 스스로를 혐오한 커터칼. 내가 소심해진 이유. 하지만 나는 이미 알았던거야. 2년전 그때부터. 너와 헤어질때 끄적였던 하나의 글. 소설 사이에 껴있던. 다시 읽고 이제야 깨달았어. 내 마음도 변했었구나. 나도 더이상 너를. 미안해. 어리석었어. 네 말대로. 이제 나 여기 당당히 서서 침대 속 나에게 외칠게. 아직 너를 좋아한다는건 전부 미련이었어. 내 꿈에 나온 너와 내가 적은 연시들까지도. 그렇게 반성하고 후회했지만 정작 내가 잘못한건 없었어. 그래, 좋아하는걸 쫓은게 뭐가 나빠? 이제와서 보니까, 뭐야. 나 연애 잘했었잖아. 정직하게. 누구보다도 인간답게. 그을린 해질녘 노을을 날아. 그 아래로 보이는건 너와 함께 있던 마을, 함께 걷던 골목들이야. 구두에 불꽃이 피어. 파랗게 작열하는 용서의 업화가. 이제야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게 됐어. 잘가라고 웃으며 외칠 수 있게 됐어. 이 불꽃이 너와 걷던 거리를 모두 태우리. 괜찮아. 눈물까지 타버려서 보이지 않잖아. 드디어 울먹이는 눈동자로 웃어보일 수 있어. (ヨルシカ - 靴の花火(구두의 불꽃)의 가사에서 착안했습니다.)
-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 2022-11-07
파괴하는 본능, 당연한걸까. 이건 시가 아니라 노래의 가사. 한없이라는 말은 얼마나 허황된걸까. 한계는 명확하니까. 칼로 책상에 글귀를 새기고 싶어. 핸드폰을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어. 내 핏줄을 한번 꾹 눌러보고 싶어. 날카로운 무언가가 살갗을 뚫고 들어왔음 싶어. 너 도대체 뭐하는거야 소리를 들을 정도로 미친듯이 초콜릿을 입안에 쑤셔넣고 싶어. 한심한 내 자신을 처절하게 깨부수고 싶다고. 식칼을 씻어냈어. 씻어내면서 생각했어. 새파란건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구나. 그게 칼날이 되었던, 하늘이 되었던. 내가 항상 말하잖아. 하늘은 원래 평평했을거라고. 우리의 소리가 위로 올라가 저 하늘을 부풀린거라고. 하지만 그 하늘은 거짓이라고. 아주 차가운 냉수를 벌컥 들이키고 싶어. 이 꿈에서 깼으면 좋겠어. 아니면 차라리 내 꿈을 깨부숴주던가. 뭐가 됐든지 상관없어. 일단 부수고 보는거야. 우리는 한없는 종족들. 이 집은 너무 작아. 인간이란 말이야. 뭐라도 깨먹어야 해. 이젠 어쩔 수 없어. 그들은 스스로를 멸종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까. 나도 흐름에 편승하고 싶은데. 아, 이 하얀 집은 언제나 커질까. 집이 커지면 말이야. 누가 줬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어쨋든 반짝이는 이 푸른 사파이어도 미천할 뿐인 돌덩이가 되버릴텐데 말이야. 어디 그뿐이야. 집이 커지고, 물건이 많아지면. 사파이어가 됐던, 루비가 됐던. 그래, 너가 됐던 말이야. 널린게 되겠지. 넘쳐버리겠지. 한 두개 쯤 부숴버려도 상관없게, 무가치하게. 그렇게 전부 부숴버리고 싶어. 바닥에 내리쳐서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어. 그래, 분명 그럴거야. 그렇게 모두가 가치없이 사그라져 가루가 되어버리면. 나또한 아무런 가치없이 사라질 수 있겠지. 나 혼자만 남아서 사라진 것들을 그린다는 더러운 결말 따위, 아니겠지. 아무런 죄책없이. 한없는 무한 속으로 모두와 함께, 침몰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야. 그걸로 될텐데 말이야. 이 집에서 몇년을 더 어둠 속에 잠겨있어야 그날이 내려올까. 답답해. 지금은 못부수는거야? 다 하나 뿐인 것들이라? 왜 나는 이딴 집구석에서 태어난건지. 짜증나 뛰쳐나갔어. 현관을 걷어차고.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 초록과 녹색. 떨어지는 노을. 끝없는 복도와 문들. 잿빛의 아파트 단지. 그냥 지나쳐버리면 되는건데. 저 앞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부 내팽개치고 사라져버리면, 이 고통과 반복도 끊어낼 수 있을텐데. 나도 아직 이른가봐. 아직도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 결국 다시 허리를 숙였어. 아저씨, 왜 또 여기
-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 2022-08-17
오랜 친구의 말버릇을 빌리기로 했다. 시는 불유쾌한 단어의 집합체. 약간의 인과관계를 생략한, 난해한 붓터치의 덫칠. 시집을 읽는다. 팔락 팔락 시간이 넘어간다. 결국 글귀만 남고 그 시 제목이 뭐였더라 하고 다른 시집을 집겠지. 시, 이형과 이질의 방법. 나는 스스로 시를 못 씀을 안다. 시인이란 참 아픈 사람들이다. 삶의 많은걸 지운다. 감정을 절제한다. 모호함까지, 안고 살아간다. 나는 인과율을 깨지 못한다. 내가 적는 시는 아무런 걸림없이 읽혀내려간다. 언젠가 진단서를 받을 때 의사가 그랬었나. 핏줄을 찾을 수 없다고. 스스로 시를 쓰지 못함을 안다. 그리 나와있었다. 진단서에는. 아찔한 비가 쏟아지던 그 자정에. 나는 언젠가 이 시판을 뜰테고. 오랜 흑연은 부러질 것이고. 그래서 펜을 든 인간은 되지 못할 것이다. 아쉽게도 한 지각에 오래 발붙일 순 없다. 그저 잠시 찰나, 공중에 떠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시의 제목을 봐줬으면 한다. 남은걸 설명할테고, 기억에 남았으면 해서. 다른 시인들을 바꿨으면 해서.
-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 2022-08-04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젖은 바위 위의 나뭇잎. 학생, 안녕하세요. 저도 최근에 발톱을 둥글게 자르다가 고생을 해서 와닿는 시네요. 타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발톱을 자르는 행위로 치환하여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객관적 상관물을 굉장히 적절히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결말을 '비수를 받'는 것 말고 다른 식으로 바꾸면 깨달은 이후의 태도가 더 잘 드러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D
내성발톱은 발톱이 압력 등의 이유로 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증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둥글게 발톱을 잘라왔습니다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발톱을 둥글게 자르는 것은 내성발톱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둥글게가 아니라 일자로 자르는 것이 옳다는 사실이 인터넷을 타고 퍼지면서 새로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