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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거미」

  • 작성일 2010-10-18
  • 조회수 4,685



이면우, 「거미」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욕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시_ 이면우 - 1951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시집 『저 석양』『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등이 있음. 노작문학상을 수상함.

낭송_ 이준식 - 배우. 연극 <햄릿기계>, 안개여관> 등 출연.
출전_『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작과비평사)
음악_ 박세준
애니메이션_ 정정화
프로듀서_ 김태형

거미가 잠자리 잡아먹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거미는 잔인하게 보이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잠자리는 불쌍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넓은 시야로 보면 약육강식도 하나의 생태계이고, 이 질서가 자연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우리 몸은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른 몸을 죽이고 먹어서 힘이 생겨야 남을 살리는 좋은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잠자리의 발버둥과 꿈틀거림과 두려움을 먹는 한 마리 거미를 보며 이 기막힌 모순을 헤아립니다. 그리고 이 불가해한 운명을 필사적으로 따르는 거미의 삶에서 한 생명체의 ‘외로움’을 봅니다. 지독한 외로움이죠.

문학집배원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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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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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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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 11007박세진

    처음 부분에선 거미줄에 걸려 잔인하게 죽어갈 잠자리가 불쌍하다고 느껴졌었다. 마치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당장 잠자리를 구해줬을것 같다. 그러나 점점 시를 읽어 가다 보니 나는 잠자리를 구할수가 없었다. 약육강식이 존재하는 생태계에서 내가 잠자리를 구해준다면 거미는 생명을 유지할수 없기 때문이다. 거미 역시 살아남기 위해 혼자 거미줄을 짜지 않았을까? 거미는 그저 자신의 운명을 따를 뿐이다. 그 운명이 외롭고 힘들 뿐이지만.. 나 역시 정해진 운명에 따라서 살아가야하는것일까? 다시한번 고민하게 해주는 시인것 같다.

    • 2018-10-29 12:05:44
    11007박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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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윤회의 진리 속에 자신을 더욱 하느님께 순종하는 살리는 마음을 갖고 이슬 먹으며 도를 닦는 뱀처럼 뜻을 세운다면 안심,도통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허나 인간세상 속에서 상생으로 조화되어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 2010-10-23 15: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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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이군요.

    • 2010-10-20 21:46:1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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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우같은북극곰공주

    서른둘... 지금도 저 외로웠을 거미의 마음을 압니다. 이제는 자연의 모든 것에 순종하게 됩니다.

    • 2010-10-19 19:12:39
    여우같은북극곰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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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김도언의 에세이집 [불안의 황홀]을 통해 <아무도 울지 않은 밤은 없다>의 시인 이면우를 알게 되었는데 문장 시배달로 만나게 되니 남다른 친근감을 느낍니다. 시가 역시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군요. 특히 마흔 아홉이 되니 고독하게 거미줄을 짜던 거미의 심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대목에선 한참이나 멈칫거렸답니다. 나 같으면 성급하게 거미줄을 걷어버리고 잠자리를 놓아줬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시간을 들여 한번 더 음미하며 들어보고 싶은 아릿한 시입니다.

    • 2010-10-18 17: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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