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 카다레,「부서진 사월」중에서
- 작성일 201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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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그조르그는 날짜의 흐름을 생각하곤 했다. 그로서는 시간의 흐름이 괴상하기 이를 데 없는 것 같았다. 나날들은 어느 시간까지는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다가도, 복숭아 꽃잎 위에서 한동안 파르르 떨다가 갑자기 굴러떨어져 부서지고는 마침내 죽고 마는 물방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월이 왔다. 그러나 봄은 정착하기가 매우 힘든 모양이었다. 이따금 알프스 산자락에 드리워진 푸른 띠를 볼 때면 그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 드디어 사월이 왔군요, 주막에서 서로 소개를 하면서 길손들은 그렇게 말했다. 올해의 봄은 너무 늦게 찾아온 감은 있었지만 환영을 받았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휴전 날짜의 종료에 관한 아버지의 충고가 떠올랐다. 충고 전부는 아닌, 그렇다고 충고의 일부도 아닌, 단지 “얘야” 하던 그 말만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그들만의 사월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그의 사월은 두 동강 나 반쪽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 그가 길을 떠난 것은 산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여인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전에는 멀리 마차를 향해 ‘나비 마차야, 왜 이 고장을 헤매고 다니니?’라고 중얼댔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고원 지대를 쉬지 않고 달리던, 유달리 눈에 띄던 그 마차를 찾고 있었다. 실제로 그 마차는 침울한 외관과 구리로 만들어진 차문 손잡이와 지나치게 장식적인 선들 때문에, 그가 최근에 딱 한 차례 쉬코데르에 머무는 동안 교회의 장례 행렬에서 육중한 오르간의 멜로디가 울리는 가운데 보았던 관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밤색 머리의 여인의 눈길이, 그가 이제까지 어떤 사람과 접촉했을 때도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감미로움과 감동으로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나비―관―마차의 내부 때문이었다. 그는 살아오는 동안 많은 여인의 눈을 보았다. 강렬한 눈, 수줍어하는 눈, 뇌쇄적인 눈, 섬세한 눈, 간사한 눈, 오만한 눈 등 많은 눈들이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런 눈길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눈은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고 친근한 것 같기도 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동정 어린 것 같은 눈. 그녀의 눈길에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과 함께 사람을 옭아매 먼 곳으로, 삶 너머로, 저 세상으로,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곳으로 실어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밤(너무도 적은 별들이 검은 가을 하늘을 채우려 애쓰듯 그가 잠으로 그럭저럭 채우려 애쓰곤 하는)이 되어 잠으로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바로 그녀의 눈이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빛이 소모되었던 천지창조 때에 잃어버렸던 다이몬드가 되어 그의 내부에 박혀 있었다.
그랬다. 그가 대고원 지대를 향해 길을 나섰던 것은 그녀의 그 눈을 다시 보기 위함이었다. (……)
주위의 편도나무 위로 둥실 뜬 밝은 달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한동안 반쯤 눈을 감고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몇 년 전 어느 구월의 축축했던 날 도청의 옥수수 창고 앞에 길게 늘어섰던 줄 속에서 들은 한 문장이 떠올랐다. “도시 여인들이 입술에 키스를 해주는 것 같네…….”
● 작가_ 이스마일 카다레 - 1936년 알바니아에서 태어나 엔베르 호자 독재정권이 무너지기 직전인 1990년 프랑스로 망명, 지금까지 파리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한 이래『돌에 새긴 연대기』 『꿈의 궁전』 『부서진 사월』 『H 서류』 『아가멤논의 딸』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등을 발표했다.
● 출전_ 『부서진 사월』(문학동네)
●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 낭독_ 변진완 - 배우. 연극 <블랙박스>, 뮤지컬 <천상시계>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이 소설은 15세기에 만들어진 알바니아 관습법 ‘카눈’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일명 ‘복수와 피의 회수’로 알려진 이 율법에 따르면 살인을 당한 피해자의 가족은 상대 집안사람들에게 피해자가 당한 그대로 되갚을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됩니다. ‘피의 복수’는 집안의 아들들에게 대물림되어서 이에 연관된 가족들은 평생을 숨어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기억할 수 없는 먼 과거에 한 건의 살인이 일어납니다. 그 후 연쇄적인 살인에 수많은 후손들이 율법의 이름으로 희생됩니다. 주인공 그조르그는 피의 복수에 나서고 다시 제 피를 내놓아야 할 운명에 놓인 청년입니다. 이 소설은 율법에 따라 죽임의 유예기간을 갖는 이 청년이 4월 한 달간 고원을 떠도는 여정을 몽환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 비극적 운명 곁으로 한 여인이 스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공명은 참으로 잊히지 않습니다. 분단은 카눈처럼 우리 민족의 무자비한 굴레입니다. 한반도의 4월도 부서질까 두렵습니다.
문학집배원 전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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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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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목화에게 그분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알 필요가 없다. 우주에 마음이 있는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목화는 선하면서 악한 사람을, 의롭고도 불의한 이를,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동안 목화는 줄곧 나무에게 질문했다. 대답은 없었다. 목화는 나무를 느꼈다. 나무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시를 바랐다. 그 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목화는 나무를 찾으려고 했다. 없애고 싶었다. 나무를 없애면 온전한 자기 의지로 자기만의 삶을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무는 정말 나무로서 존재하는가? 목화는 그 나무가 자기 숨통을 쥐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구할 때도, 구토에 시달릴 때도 자기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사람을 구하는 순간에도 나무의 명령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 나무는 대체 무엇인가? 나무에게 집중할수록 나무의 의미는 비대해졌다. 나무에게 호소할수록 나무의 힘은 강해졌다. 목화의 질문과 호소에 개의치 않고, 고통스러워하거나 안도하거나 상관없이, 악하든 선하든 관심 없이 나무는 영원히 거기 있다. 그 나무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존재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물이 나타났다가 멸종했고 진화했으나 도살되었다. 돌로 만든 무기로 동물을 사냥하고 무리 지어 이동하며 빠른 소도로 다른 생물을 몰살시키던 인류는 순식간에 핵폭탄과 우주선을 만들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면 과연 인류라는 종을 돕고 싶을까. 살리고 싶을까. 나무가 주는 생명은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이라는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도.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죽음을 바라보는 일을 거부하고 싶었다. 사람을 구하고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피하고 싶었다. 구한 자가 악인 같을 때는 마치 한통속인 것처럼 괴로웠다. 중개 때문에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목화를 지배하는 것은 나무였다. 나무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구한 사람들처럼 단 한 명인 목화는,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오직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신목화는 임천자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며 마침내 운명을 수긍했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목화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상, 온전히 자기 것으로 거둔 이상 이제 그것은 목화의 것이었다.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 목화는 생각했다. 그건 바로 지금의 삶. 목화는 원하는 삶 속에 있었다. 다시, 목화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죽음. 임천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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