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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오늘의 혀」

  • 작성일 2016-07-18
  • 조회수 2,878

정호승, 「오늘의 혀」


내 혀에 검은 털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진실을 말하지 않고 살아와
내 혀에 돋아난 푸른 털이 입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돈 몇 푼 버는 일에
인생의 부스러기 시간까지 다 써버려
이제 물을 먹어도 밥을 먹어도
내 혀에 돋은 검푸른 털이 먼저 먹어버린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해도
길게 뻗어 나온 무서운 털이 입술까지 덮어버린다
여보
나는 이제 돈도 없고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그동안 당신을 사랑한다고 한 말은 진실이 아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한 말은 더더욱 진실이 아니다
아직 인간의 사랑을 확신해본 적이 없어
그동안 나의 키스는 다 거짓이다
내 혀를 뽑아 지하철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거나
밭두렁을 태우는 봄의 들녘에 나가 불태우기 전에
우리가 처음 나누었던 따뜻한 키스를 다시 한번 해다오
검푸른 털이 담쟁이처럼 뒤덮인
굳게 닫혀버린 내 혀의 문 앞에 고요히 무릎을 꿇고
내가 오늘의 진실을 말할 수 있고
내일의 진리를 노래 할 수 있을 때까지

▶ 시_ 정호승 -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으며, ‘반시(反時)’ 동인 활동을 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등이 있다.

▶ 낭송_ 노계현 - 성우. 외화 ‘구름 속의 산책’, ‘보통사람들’ 등에 출연.

배달하며

불가(佛家)에서는 입으로 진 죄를 구업(口業)이라 한다. 언어로서 업을 짓는 것이므로 어업(語業)이라 하기도 한다.
꾸며 댄 말, 모르면서 함부로 한 말. 묘한 구절들을 남발한 것을 기어(綺語罪)라 하고 십악(十惡) 가운데 가장 두려운 죄로 나중에 혀를 뽑히는 벌을 받는다고 한다.
정치가들, 장사꾼들이 언뜻 떠오를지 모르지만 실은 작가들이야말로 기어죄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입속에 돋은 검은 털, 그 검은 털이 결국은 자신을 삼켜 버리는 현실을 통렬하게 투시하는 시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것을 아프게 바라보고 괴로워하는 시인이 돋보인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시와 사람』(2016년 봄 여름호)
▶ 음악_ The Film Edge-Reflective slow 중에서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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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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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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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0건

  • 한지훈

    처음에 이시를 읽고 너무 잘 와닿았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것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이죠. 저는 "내 혀에 돋은 검푸른 털이 먼저 먹어버린다" 라는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일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자신에게 전부다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두가지로 나뉩니다. 어쩔수 없이 하는것과 그냥 하는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합니다. 저도 어쩌면 그냥 합니다. 거짓말을 지나치게하면 친구 심지어 가족끼리의 신뢰도 잃을 수 있습니다. 거짓말도 일종의 마약중 하나입니다. 지금 끊지 않으면 나중에 누군과의 관계를 끊어야하죠. 앞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해주는 시를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2018-11-05 15:43:10
    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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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수10603

    이 시는 굉장히 무겁고 묵직한 느낌의 시인것 같다.우선 혀바닥에 털이 난다고 표현한것은 굉장히 창의적이고 실제로 일어날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무척이나 와다왔다. 혀는 우리가 말하고 먹고 사랑하고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많이 쓰인다. 거짓말이 나를 절망으로 빠뜨리고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드는다는것을 혀바닥에 자란 검푸른 털이 방해한다고 표현한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이로 인해 자신의 혀를 뽑아 지하철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거나 밭두렁을 태우는 봄의 들녘에 나가 불태우고 싶다고한 표현은 거짓말을한 내가 두려워질 정도에 직설적이고 확 와닿는 표현이었던것 같다.

    • 2018-10-31 11:20:50
    김민수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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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04김성재

    자신의 거짓을 알리고 고치려하는 화자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의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고백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의 거짓에 대한 잘못을 혀에 나는 털에 비유하여 나타낸 것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화자는 사람을 못믿어, 주위사람을 못믿어, 게다가 자신의 남편까지 못믿는 모습을 보면 자신 또한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어쩌면 거짓말은 남에게 사실을 말하기에 두려워 하는 것인데 남에게 털어놓을 정도면 자신이 얼마나 처절하고 자신의 최후를 본 뒤 잘못을 뉘우치는 것 아닌가. 싶은 메세지가 나에게 왔다. 이 시로인해 나 또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기회가 된 것같다.

    • 2018-10-29 11:56:14
    11004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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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218조하빈

    시를 보고 과거의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한창 게임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할 때 엄마에게 거의 매일 거짓말을 했고 이제 그만 해야지 하면서도 과거의 거짓을 덮으려고 더 큰 거짓말을 했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다. 이 시에서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거짓을 말할 때 검은 털 푸른 털이 난다고 한 게 인상적이다. 또 남을 사랑한다고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시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위로해달라고 말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 2018-06-05 12:46:33
    10218조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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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921최동재

    이 시는 화자가 자신의 혀에 검은 털이 돋아난다고 표현하였다. '길게 뻗어 나온 무서운 털이 입술까지 덮어버린다', '내 혀를 뽑아 지하철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거나' 등의 구절에서 이 ‘검은 털이 난 혀’에 대한 혐오와 거부가 강열하게 드러난다. 진실을 말하고 사랑을 노래해야 할 혀를 가지고 거짓과 변명과 증오를 쏟아내는 모습을 발견하고 시인은 ‘검은 털이 돋아나는 혀’라고 표현했다.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서 얼마나 많은 거짓을 뱉어 내는지 시인은 통열히 반성하고 있다. 오늘의 혀는 검은 털이 담쟁이처럼 덮여있지만 내일의 진리를 노래하고픈 화자의 마음이 간절히 느껴진다. 이 시는 거짓되고 진솔하지 못한 말을 '검은 털이 덮인 혀'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해서 거짓말의 부정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 '~다'의 종결 표현을 사용해서 단정적이고 남성적인 어조에서 화자의 의지가 강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 시를 읽고 현대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대인들은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황금만능주의를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진실을 알리려 하지 않고, 자신에게 득이 된다면 거짓을 서슴지 않고 말한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내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진실을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귀찮아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경험이 있는데 부끄러운 기억이다.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만 계속된다면 서로가 신뢰를 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주위 사람들도 떠날 것이다. 말의 소중함을 알고 거짓이 없는 진실성 있는 말, 사랑과 애정이 담긴 말을 해야겠다.

    • 2018-05-29 15:38:02
    10921최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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