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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괄호처럼」

  • 작성일 2018-11-08
  • 조회수 3,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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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이장욱|「괄호처럼」을 배달하며…


문장을 쓰고 나서 괄호를 치면 안전한 기분이 듭니다. 포옹하는 기호처럼 느껴지거든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인간의 최초의 몸짓은 포옹”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아기들은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손을 허우적댑니다. 노인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팔을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해요. 이 “두 번의 날갯짓 사이에서” 우리의 삶이라는 여행이 지나갑니다.*
시인의 섬세하고 예민한 시선은 두 팔의 포옹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삶 속에 있는 포옹의 여러 양상을 보여줍니다. 눈꺼풀을 열어 네 모습을 부드럽게 안기, 입 속에서 신선한 과일을 씹으며 날카롭게 안기. 누군가에게 숨 막히게 안기거나 구덩이 같은 절망에 안기기도 하면서 응시와 소화와 사랑과 절망의 포옹으로 가득한 생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포옹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이 자세를 오래 유지하려면 기념일이나 기념반지 같은 것이 필요해요. 마지막 숨결 속에서 허공을 향해 우리의 포옹이 풀리기까지.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시간의 목소리』, 후마니타스, 2011.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이장욱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 지성사, 2016.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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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건

  • 후추

    위 해설에서는 따뜻하게 설명해 두었다만, 나에게는 왠지 무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어들이 주는 느낌이 그런가보다. 시인은 '너'를 내 안에 깊이 묻어두고 살고 싶은가보다. 둘의 관계는 끝났지만 자기에게는 이것이 우리의 끝이 아닌 것이다. 시인은 모든 것에서 '너'를 떠올리는 것 같다. 전에 인디언식 생일 읽기 그런 내용을 보고 내 생일을 넣어 읽어보고, 또 지나간 사람의 생일을 넣어 읽어보았다. 열매달이라는 이름이 그 사람이랑 참 어울리기도 하지 싶었다. 뭐하러 그런 짓을 하나 싶다가도 또 생각날 사람 한명 내 안에 살고있다는 건 나쁜 일 아니지 싶다.

    • 2018-11-19 11:28:27
    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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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미아

    어쩌다 열린 것만 같은 괄호 정말 내가 열기는 했던가요? 환시에 허우적대며 빨간 구두를 신은 아이처럼 춤을 추고만 있었는데... 매일매일 당신을 꼭꼭 씹어 먹었지요 마지막 남은 새끼 손가락까지 이제야 얻게 된 어둠 당신의 잠든 입에 매미 모양 함선을 물려 줄게요 다음 생을 살아가주세요

    • 2018-11-19 10:59:58
    우주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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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시가 약간 무섭다.. 헤어졌나? 헤어졌지만 괄호 안에 너를 영원히 묶어버리겠다고 하는 것 같다. 집착이 느껴진다. 영화 미저리도 떠오르고.. 나도 같이 떠오른다. 집착은 사랑인가? 집착은 미련에 가까울 것 같다. 강한 미련이 집착을 낳는 것이다. 좋게 말해서 미련은 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다. 정을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것이다. 단 한 순간에 말이다. 집착이 없는 너희들은 모른다. 우리같은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을. 정이 없는 너희들에게 정이 많은 우리는 죄다. 무정무죄 유정유죄 의 세상에서 살기 참 어렵다.

    • 2018-11-19 07:47:06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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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곡안개

    나는 무엇인가?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되고, 분화하고, 자궁 속에서 영양을 섭취하고, 외부의 소음에 귀 기울이고 태어난다. 안개 낀 듯한 엄마의 눈웃음과 마주치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온갖 소리에서 사람들의 음성을 조금씩 구분하고 그 의미를 알아 간다. 시간이 흐른 만큼 선인들이 남겨 놓은 가치와 이론을 배우고, 자연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섭취하고 자라난다. 그러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아무데도 없다. 몸뚱어리도, 지식도, 생각도 나는 그냥 우주 속에서 자연이 남겨놓은 조합에 불과하여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거기서 우주와 함께 살아온 것 같았다. 나는 텅 빈 눈동자와 비슷하게 열고 닫고 할 뿐 나는 없다. 저 너머로 달아나는 삶 속의 무엇을 뒤쫓는 것은 꿈에 불과하고, 없는 내 안에서 지우고 깊이 묻는 꿈에 불과하다. 그리고 누가 조용히 커튼을 내린다. 그것은 흡, 내가 삼킬 수 있는 모든 것. 오늘의 식사를 위해 입을 벌리고 다 씹은 뒤에 그것을 닫고 그 이후 배 속에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일어나는 일. 몸에 창문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한 일. 삶을 걷다가 조금씩 숨이 막힐 것이다. 발을 헛짚어 푹, 꺼지는 구덩이가 되어 이제 모든 것이 자연을 포함할 것이다. 가만히 제 의식을 열어보는 사람이 되어 결국 내가 없는 무서운 어둠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와 자연의 끝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자연의 모든 것을 품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을 가릴 수 있는 그 무엇이라도 나는 잠든 자연의 입을 꼼꼼히 틀어막는 이 기나긴 시간처럼 허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취만 남을 것이다. 괄호처럼 (나는 자연이 만들어 낸 상(像)이다. 나는 없다.)

    • 2018-11-19 01:36:32
    계곡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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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lm

    괄호처럼 (열고, 닫는 것) 괄호처럼 (뒤쫓고, 커튼을 내리는 것) 괄호처럼 (벌리고, 닫는 것) 괄호처럼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 괄호처럼 (모든 것을 품는 것) 이 모든 것들에 괄호대신 사랑이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다. ‘이것이 우리의 끝은 아니기 때문에/나는 너의 모든 것을 품고 싶은 것이다.’라는 구절과 같이, 다만 지금 이 사랑은 괄호가 닫히지 않은 미완성 문장. 이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어서 우리는 기나긴 시간, 커다란 기념 수건으로 서로의 입을 꼼꼼히 틀어막는 것일지도 모른다.

    • 2018-11-19 00:18:22
    b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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