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상치꽃 아욱꽃」


 
상치꽃은 상치 대궁만큼 웃네. 아욱꽃은 아욱 대궁만큼 잔 한잔 비우고 잔 비우고 배꼽 내놓고 웃네. 이끼 낀 돌담 아 이즈러진 달이 싵날 같다는 시인의 이름 잊었네. 박용래, 〈상치꽃 아욱꽃〉 (창비, 1984)

 

 

박용래, 「상치꽃 아욱꽃」을 배달하며

 

    얼마 전 처음으로 오이꽃을 보았습니다. 아, 오이도 꽃이 피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가 스스로의 무지와 무심에 웃음이 났습니다. 오이꽃은 늘 오이꽃처럼 피어왔던 것이니까요. 상치꽃이 ‘상치 대궁만큼’ 웃고 아욱꽃이 ‘아욱 대궁만큼’ 웃듯이 우리도 우리가 웃을 수 있을 만큼 웃고 사는 듯합니다.
 
    다만 이 시를 쓴 박용래 시인은 사람으로 태어나 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울었던 이였습니다. 생전 시인과 가까웠던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울지 않던 그를 본 것이 두 번밖에 되지 않았다고 회고할 만큼. 그는 갸륵한 것과 소박한 것과 조촐한 것과 조용한 것과 알뜰한 것 앞에서 울었고 한 떨기의 풀꽃, 고목의 까치 둥지, 내리는 눈송이, 시래기 삶는 냄새에도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가난과 애달픔으로 울지 않았고 외로움에도 울지 않았다 하고요.
 
    큰 웃음소리가 마치 큰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시배달을 통해 제가 전해드리고 싶은 것도 바로 이 웃음이거나 울음일 것입니다.

 

시인 박준

 

작가 : 박용래

출전 : 박용래, 「상치꽃 아욱꽃」 (창비,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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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sia12

감사합니다. 오래 배달이 안 되어 많이 기다렸는데, 귀한 꽃 한다발 받은 느낌에 행복했습니다. 박용래시인님은 이미 가셨지만 이렇게 후배시인께서 기억해 주시니…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