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희, 「빵집의 이름은 빵집」 중에서


빵집의 이름은 빵집- 윤경희

이 빵집을 찾아가기 전까지 나는 독일의 빵 문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젬멜이나 브뢰첸 같은 식사용 빵은 고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침을 거르니 자주 먹지 않게 되었고, 토르테 종류는 프랑스처럼 온갖 기술로 섬세하고 교태롭게 꾸미는 대신 그저 백설기처럼 넓적하게 구운 뒤 네모지게 뚝뚝 잘라놓은 게 대부분이라 시각적으로 이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이커가 데려간 곳에 진열된 빵 쟁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곳의 빵은 일단 값이 너무나 쌌다. 파리 물가의 절반 정도밖에. 하이커는 베를리너였나 판쿠헨이었던가를 사고, 나는 연노란 치즈가 잔뜩 얹힌 케제슈네케를 골랐다. 할머니에게 동전을 건넨 다음 거리로 나와 종이봉투에서 빵을 꺼내 한입 무는 순간, 

나는 아름다운 폭군의 노예가 되고 싶다. 
쟁반마다 붙여놓은 발음하기 어렵고 기억하기 어려운 빵들의 이름표, 진열창을 둘러보며 하나하나 읽어본다. 몬크란츠, 베를리너, 로지넨슈네케, 판쿠헨, 케제슈네케, 아프리코젠쿠헨, 몬쿠헨, 아펠슈트루델, 크바르크쿠헨, 나폴레온, 키르슈만델쿠헨, 슈바인스오어, 하젤누스쿠헨, 아펠타셰, 마르모어쿠헨, 쇼코회른셴, 치트로넨쿠헨, 키르슈슈트로이젤, 요하네스베어쿠헨, 발누스슈트루델...... 내가 눈으로 혀로 내 안에 녹여 안으려던 것은 그저 빵뿐이었을까. 
그날 이후 베를린을 떠날 때까지 나는 거의 매일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순례자나 중독자처럼, 의지의 유무와 상관없는 자동적이고 수동적인 이끌림. 나는 짝짝이 의자들 중 하나에 앉아 맛있던 적이 없는 독일 커피를 주문하고, 지역 정보지와 교회 음악회 프로그램을 읽고, 무엇보다 듬직한 체구의 나이든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이 빚은 맛 좋은 빵을 먹었다. 몇 년 뒤 홈볼트 대학에서의 게르마니스틱 프로그램을 연수하러 다시 오게 된 베를린. S.슈트라세의 분관에 수업 장소가 배정된 것은 내게는 거의 운명과 같은 행운이었다. 

하루는 Y에게 메일을 보냈다. 빵집 이야기를 해주려. 나는 그곳을 참으로 좋아하는데 그곳은 이름이 없다는 말도 덧붙여. 
참, 그런데 그 빵집은 정말로 이름이 없던가. 편지를 쓰는 도중 무심코 만들어진 문장에, 나는 좋아하는 대상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이 뒤늦게 약간 미안해졌고, 또한 내가 그곳의 이름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아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곳의 이름은 무엇일까. 그곳은 도대체 이름이 있기나 한가. 이런 무심과 회의적인 질문으로 나는 왜 마음속 은밀한 한구석에서 그곳에 이름이 없기를 바라는가. 
나는 빵집의 이름을 알아낸다는 명목으로 베를린을 떠나는 날이 가까워지는 무렵에 다시 한 번 S.슈트라세를 걷기로 했다. 길의 초입, 불현듯 두근거렸다. 마음속으로 어느 편에 걸어야 할지 모르는 내기를 했다. 그곳은 이름이 있을까 없을까. S. 슈트라세는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휜 곡선을 그리니, 오른쪽 보도 끝에 있는 빵집은 왼쪽 보도를 택한 내가 길을 다 걸을 무렵에야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점점 심장이 뛰었다. 그곳은 이름이 있을까 없을까. 이상했다. 그곳의 이름은 무엇일까보다 이름이 있을까 없을까가 더 궁금했다. 길의 끝이 나타나는 순간이 두려웠다. 그곳은 이름이 있을까 없을까. 곡면을 돌아 저 앞에 빵집의 흰 외벽이 비스듬히 보이는 곳까지 왔다. 빵집 앞에는, 다행히도,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결정적 순간의 지연. 몇 걸음 더 걸었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설렘과 떨림을 억누르고, 마침내 마주 본 빵집의 이름은 빵집. 고요하고 온화한 무명의 얼굴.



작가 : 윤경희
출전 : 『분더카머』 (문학과지성사, 2021) p.113-p.115

 

 

윤경희 ┃「빵집의 이름은 빵집」을 배달하며

 

    이 글을 읽자니 제가 무척 좋아하는 빵집이 떠오릅니다. 인구 적은 소도시, 한적한 골목 모퉁이에 자리 잡은 빵집인데, 그 가게의 이름도 ‘빵집’이에요. 저 역시 처음에는 숙소 근처라 우연히 가게에 들렀고, 먹어 보니 빵이 너무 맛있어서 머무는 동안 날마다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곳을 떠나올 즈음에야 무심코 간판을 올려다보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간판 중앙에 크게 “빵집” 이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어쩌면 세상의 작고 적요한 골목길에는 이름이 ‘빵집’인 근사한 빵집이 하나씩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거리의 소음이 잦아든 모퉁이에서 달콤하고 따뜻한 냄새로 사람들을 모으고, 빵의 재료나 생김새로 이름을 지어 붙이고, 인상 좋은 주인이 막 오븐에서 따뜻한 김이 나는 빵을 꺼내놓는, 그런 빵집이요.
여행지에서 대개의 빵집은 산책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갓 구운 빵이 진열된 장식장이 보이거나 어디선가 달콤하고 따뜻한 냄새가 나면 간판을 보지 않아도 빵집인 걸 알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빵’은 굳이 다른 이름을 지어 간판으로 붙일 필요가 없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자족적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빵의 이름을 죽 읊어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윤경희

출전 : 『분더카머』 (문학과지성사, 2021) p.113-p.115

책 소개 링크 : 문학과지성사 https://bit.ly/3bD56xA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