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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채경, 「최고의 우주인」 중에서

  • 작성일 2022-01-20
  • 조회수 1,135


최고의 우주인 중에서 - 심채경

우주 비행 십 년 만에 우주 체류 당시의 일기를 공개한다는 편집자의 소개글을 읽고 그것부터 보려고 책장을 팔락팔락 넘겼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B6보다 작은 아담한 판형의 잡지이기는 해도 서른 쪽이 훌쩍 넘는 상당한 분량의 인터뷰였다. 일기를 스캔해서 실은 게 아니라 본문에 직접 활자로 옮긴 건가 하며 첫 장부터 다시 한번 넘겨보다가 그 일기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잡지에 실린 삽화라고 여기고 무심히 넘겼던 그림이 열흘간의 우주 비행 동안 쓴 일기였다. 
알아보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포켓 사이즈 다이어리의 위클리 페이지 두 장이었으니까.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보였다 왼쪽에는 좋은 글귀와 삽화가 들어 있고, 오른쪽 페이지가 일주일에 해당하는 일곱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다이어리'라고 부르는 제품이 맞지만, 그 안에 적힌 것은 일기라기보다는 메모에 불과했다. 발사 당일의 기록을 제외하면 많아야 서너 가지, 그날의 할 일이나 짤막한 소감이 몇 단어로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 몇 줄짜리 메모가 '우주 일기'의 전부였고, 그 소박한 다이어리는 그의 우주 비행에 '초과로' 허락된 개인 물품이었다. 우주인 이소연에게는 너무 큰 일기장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으로는 위클리 다이어리의 좁은 칸도 다 채울 수 없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이소연은 원래 예비 우주인이었다. 한국 최초로 우주를 비행할 사람으로 결정된 사람은 체격도 좋고 퍽 용맹해 보여서 나중에 우주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도 될 법한 남자, 고산이었다.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과 직장을 다닌 수재에다 아마추어 복싱 선수였을 정도로 체력도 좋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우주인으로 선발되었다. 그 옆에 여성 후보가 함께하는 것은 국민들 보시기에 참 좋았다. 우주인 선발 과정이 남녀차별 없이 공정했고, 그것이 달라진 한국 사회를 반영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비행을 앞두고 갑자기 우주인이 바뀔 때까지는. 
우주인이 사용할 물품은 이미 화물로 보내진 뒤였다고 한다. 그나마도 가져갈 수 있는 개인 물품 허용량은 미처 다 싣지 못한 실험 장비와, 우주인 프로젝트 도중에 명칭이 바뀐 주관 부처의 로고 패치와 스티커 등등으로 꽉꽉 채워졌다. 그 바람에 우주정거장에 머무는 동안 이소연은 고산이 미리 보내두었던, 체격도 성별도 다른 사람의 옷을 입어야 했다 물품 목록을 작성하던 러시아 측 담당자가 이 사실을 알고 안타까웠는지 '이 안에 담으면 무조건 실어주겠다'며 슬쩍 건네주었다는 지퍼백 하나. 그 안에 급히 담은 다이어리를 십여 년 뒤의 내가 보게 된 것이다. 




작가 : 심채경
출전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98-p.100

 

 

심채경 ┃「최고의 우주인」을 배달하며

 

    이소연 씨는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우주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소연 씨의 다이어리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 다이어리가 '초과로' 허락된 개인 물품이라는 사실을 읽자니 어쩐지 먹먹해지더라고요.
이소연 씨는 갑자기 짐을 꾸리면서, 제한된 크기의 작은 지퍼백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얼마나 많이 생각했을까요. 본래 선발된 우주인이 교체되면서 갑자기 투입된 것이다 보니 자기 몫의 짐을 꾸릴 수 없는 형편이라 더욱 고민이 되었을 겁니다. 그래도 아마 다른 무엇보다 다이어리를 먼저 떠올리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우주에 대해 더 많이 기억해 두려면 뭐든 적어두고 싶었을 테니까요.
이 글을 읽고 이소연 씨의 다이어리가 수록되어 있다는 과학 잡지를 저도 직접 찾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이어리 사진이 워낙 작게 삽입되어 있고, 이소연 씨의 글씨도 작아서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이어리 한켠에 ‘나는 할 수 있고, 하면 된다’라고 써둔 문장은 비교적 선명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말대로 이소연 씨는 해냈고, 귀환 시의 위기를 이겨내며 우리에게 귀한 용기를 건네주었습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이런 다짐의 문장을 다이어리에 적어야 했을 이소연 씨의 마음을 자꾸 살펴보게 됩니다.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심채경

출전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98-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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