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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광장- 최인훈의 '광장' 을

  • 작성자 소회
  • 작성일 2006-10-30
  • 조회수 1,153

 

사람들은 누구나 푸른 광장을 꿈꾼다. 시대가 바뀌고 장소가 달라도 그 이름은 유토피아로 이상사회로 겉껍질을 바꾸고 계속해서 우리를 유혹해 왔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는 없을까라는 물음에 철벽 같았던 자본주의도 수정자본주의라는 이름하에 변신을 멈추지 않는다. 비단 사회 체제 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푸른 광장, 혹은 안정된 밀실을 추구하는 건 누구에게나 똑같은 일이다.

  이 책 ‘광장’ 에서의 모티프인 ‘광장’과 ‘밀실’은 작품 전체를 꿰뚫고 있다. 주인공 이 명준은 변 선생에게 씹어뱉듯 남조선 사회에 대한 비판을 쏟아놓을 때도, 월북해 이상과는 다른 껍데기 같은 현실을 보고서도 광장은 등장한다. 모든 인간관계는 ‘광장’으로 귀결된다. 그가 설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전쟁 중에 은혜를 만났을 때에는 마침내 조그만 굴 속이 그의 ‘광장’의 끝이 된다. 결국 남한과 북한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던 주인공은 중립국을 택하고, 인도로 가는 길 도중에 ‘푸른 광장’ 이 눈 앞에 바로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명준에게 있어 최후의 선택은 죽음이었던 셈이다.

 과연 죽음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도 바다에 빠져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 이명준은 회색 광장으로, 똥오줌에 쓰레기만 뒤덮였다는 광장으로, 개미처럼 물어다 가꾼 밀실로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더니 나중에는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은 채로 물 속에 잠겨 버렸다. 삶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몸짓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그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 하고 헤매는 그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푸른 광장’ 은 이루어지기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제껏 수많은 사람들이 참된 사회, 이상적인 사회를 계획했지만 그 모두 단점이 있고 결함이 있었다. 자본주의를 열렬히 비판하던 사회주의도 여러 개의 나라들의 예를 통해 이상과 이론은 현실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완벽한 것 같이 보이던 자본주의도 빈익빈부익부나 삭막해지는 사회가 그 단점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서 이명준과 같은 예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얻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좌절하고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 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그에 근접한 결과는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나는 이념에 대해 잘 모른다. 88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태어난 나는 시위대열에 낀 적도 없고 월북한 친인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사회주의에 대해 설명하라면 다 같이 생산해서 같은 양으로 나누는 분배방식이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침을 튀기면서 남한이 점점 빨갱이 화되고 있다고 노여워하시는 어른들을 볼 때마다 대체 무엇이 우리 사이에 이렇게 깊은 금을 그어 놓았나, 하고 궁금해 질 때가 많았다.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을 때 전쟁이 일어난다. 다른 종교를 포용하지 못할 때 종교 전쟁이 일어나고 자신의 이념만이 옳다고 말할 때 이념전쟁이 일어난다. 열린 마음으로 다른 정책을 포용하고 내 정책을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했을 때 발전이 있다. 초기의 자본주의는 국가의 간섭이 배제된, 철저히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해 운영되는 시장이었다. 그 방법만이 소비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대공황이라는 크나큰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수정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국가가 개입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선을 어디로 정하는 것이 이상적일지 조율하고 있는 중이다.

 명준이 빠졌던 함정은 여기 있는 게 아니었을까, 모 아니면 도. 남한 아니면 북한이라는 선택 속에서 명준은 이도저도 아닌 현실에서의 도피를 택했다. 정 선생이 “ 그 텅 빈 광장으로 시민을 모으는 나팔수는 될 수 없을까?” 라는 물음에 그는 “자신이 없어요, 폭군들이 너무 강하니깐.” 이라는 대답을 한다. 누군가 나팔수가 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네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 라는 식의 논리는 진부하지만,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명준이 바다에 빠지는 대신, 중립국을 택하는 대신 자신이 바꿔보겠다는 강인한 의지로 삶을 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사람들에 의해 지금도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책 중에서 명준이 이렇게 독백하는 대목이 있다.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문 中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광장과 밀실을 갖고 있다.  이념의 문제뿐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 속에서도 광장과 밀실을 찾을 수 있다. 어느 누구나 광장과의 단절을 두려워하고 또 밀실의 존재를 그리워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둘만의 광장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이의 벽을 얼마나 뚫을 수 있는지에 따라 삶이 조금 더 나아지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광장과 밀실의 경계선을 어디로 맞추는지 알아내는 데 인생의 목표가 있는 것 같다.

 태식은 잡혀 왔을 때에 명준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값이 있어서만 사람이 행동하는 건 아닐세.”

 “그럼?”

 “값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도 행동할 수 있어.” -본문 中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사람과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있다. 길을 개척하는 사람은 그 인생 자체가 고달플지 모르나, 훗날 그 사람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길을 갈 수 있다. 광장과 밀실을 가로막고 있는 두꺼운 벽 때문에 좌절하기 보다는 두렵고 힘들더라도 그 벽을 뚫어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정독했다. 몇 십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나에게 있어 푸른 광장은 어디일까. 그리고 그 광장을 이루어 내기 위해 나는 또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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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회
  • 200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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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최인훈은 명준이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을 만큼 폐쇄적이고 경직된 6.25전쟁 직후의 조국의 사회현실에 대한 항의이자 경고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명준을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창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죽음만이 당시 시대상황으로서는 가장 확실하게 남북의 영구분단의 결과는 우리 민족에게 재앙수준의 죽음이 찾아올 뿐이라고 경고하는 방법이었을 수 있다는 측면을 높이 평가하면 봐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아무튼 진지한 질문 주셔서 저도 많이 생각할 기회를 가져 좋습니다.

    • 2006-11-05 23: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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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독자가 느끼는 그런 아픔과 아쉬움이 잘 드러난 글이어서 참으로 저도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열심히 읽고 주인공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고 고민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해 기록으로 남기는 정신을 우선 무엇보다 칭찬하고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독자의 입장을 잘 지키면서 자신이 논지와 논거가 뚜렷한 것이 이 글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명준'이 제3국을 택하는 결정이나, 자살로 끝날 수 밖에 없도록 작품을 끝맺음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독자효용론적 관점의 접근만으로는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 2006-11-05 23:11:41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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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광장]이라는 소설은 매우 유명한 명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을 다 읽은 고등학생은 거의 없는 것 같고, 읽었다고 해도 해도 그 작품을 재미있다거나,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더욱 드뭅니다. 그런데 '소회 (ID: bonouj)'님은 작품을 읽으며 등장인물과 교감을 나누듯, 대화하듯, 온몸으로 느끼며 책을 읽었겠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옵니다. 시대상황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명준의 선택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 이 글의 기본관점입니다. 주인공이 현실과 대결해 패배로 끝나는 작품은 누가 봐도 참으로 가슴아픕니다.

    • 2006-11-05 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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