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tero, Homophobia의 phobia 되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0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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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tero, Homophobia의 phobia 되기
- 우리 사회 동성애 인식 문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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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문화권의 대부분의 욕들이 성적인 조롱으로 되어있다. fuck, suck, 좆나, 씨발 등 우리가 아는 욕 중 성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드물 정도다. 그쪽으로 유래가 있는(?) 욕 중에는 '남창'이란 것도 있다. 요즘 말로 호모, 게이 새끼…… 쯤의 뉘앙스를 갖는 말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헤테로Hetero(이 글에서는 이성애자들을 통칭하는 말로 쓰임)에게 호모Homo(이 글에서는 동성애자들을 통칭하는 말로 쓰임)라는 말은 욕이 되는 것일까? 성의 기호 문제가, 여느 성적인 욕설만큼 또는 그 이상의 모멸감, 수치심을 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가치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옳은가? 옳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그 개선방향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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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인구의 약 10%가 동성애자이고, 1% 남짓이 양성애자 또는 무성애자라고 한다. 이성애자Hetero들에 비해 수가 현저한 이들을 통틀어 성적 소수자라 일컫는다. 말그대로 성적 취향이, 드문 기질을 띠는 집단이다.
이성애자들의 맹목적인 Homophobia(성적 소수자를 혐오하는 감정, 또는 그런 사람)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지하는 오류말이다. 자신이 속해있는, 그렇기때문에 올바르다고 믿어'지'는 기준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해 묘한 적개심과 배타적인 감정을 갖는다.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대개의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이 약간 모자라거나 병에 걸렸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들을 거린다. 실제로 수컷 양의 항문만을 찾아 짝짓기를 하는 일명 'Homo' 양들에 대해 행해진 연구에서 그런 양들은 뇌에 이상이 있음이 밝혀지자 Homophobia들은 인간 동성애자들 또한 이상이 있으리라 유추하기도 했다. 한술 더 떠 지난 십수년간 심리의학계에서는 동성애를 일종의 심리 장애로 파악해 치료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도 있었다. 현재는 그런 과정을 거쳐 심리적 기호와 성애적 기호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만을 정신병이라 보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말이다.
Hetero의 Homophobia는 이상으로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다. 이성애자들은 성적으로 소수자(동시에 약자)인 동성애자들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그 '틀림'이란 자신들에 비해 열등한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종교적인 Homophobia가 있다. 성서에 나온 "남색하지 말라"는 말씀을 근거로 동성애에 대해 적대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기독교가 그 대표적 예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성애자들 역시 같은 신이 만드시고 섭리하신 인간들이므로 기독교의 그 배타적인 태도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물론 영국의 성공회와 같이 -성공회에서는 동성애자에게도 사제서품을 내린다- 개방적인 분파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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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제 2007 최다관객동원상을 <디 워D-War>가 차지했다. 정작 영화의 만듦세 자체보다는 그를 두고 전 국민을 '디까'와 '디빠'로 양분시킨 화제성 덕택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논란의 중심에는 독립영화 <굿 로맨스>, <후회하지 않아>등을 연출한 감독 이송희일이 있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심사를 맡을 정도의 관록을 자랑하는 그는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디 워> 비판글때문에 때아닌 악플 된서리를 맞아야 했다. 이유는 첫째 <디 워>를 '감히' 비판했다는 것, 둘째 그가 게이라는 것이었다.
<디 워>와 이송감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사실 사건이라 할 만큼 대단한 서사는 없는 일이었지만)은 한국이 동성애에 얼마나 배타적인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송감독에게 쏟아진 질타는 그가 쓴 비평글에 대한 잘잘못 따지기보다 게이라는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노골적 비하가 더 많았다.
성적 기호와 인격과 지적 수준이 상호 대단한 연관성이 없음을 생각할 때, 한국 네티즌들의 수준에 창피해질 지경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성교할 때 정상위보다 후배위를 더 좋아한다고 해서 그 또는 그녀의 인격이 형편없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인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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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을 통해 나타난 동성애 인식 문제는 그 양상이 (언뜻) 긍정적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Hetero들은 동성애에 대해 '아주 싫다'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별 관심 없다" "자기들끼리 사랑한다는데 뭐 어떠냐" 등의 무난한 선택지를 고른다. 하지만 노골적인 Homophobia보다 더 모서운 것이 바로 이 무관심의 Homophobia이다. 무관심이 전제하고 있는 조건이 '그들의 동성애가 내게 영향을 끼치지만 않는다면'이기 때문이다. 전제된 조건이 무너질 경우 무관심의 Homophobia는 노골적 Homophobia보다 더욱 폭발적으로 반응한다. 3에서 언급한 <디 워>와 이송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평소엔 동성애자들과 이렇다할 접촉기회가 없었고 자연히 별 감정도 갖고있지 않던 사람들(무관심의 Homophobia)이, 자신들이 가치있게 여기는 영화를 게이가 비판하자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닌가.
즉 동성애에 대한 '생각'이 무관심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당신의 자식이나 형제가 어느날 갑자기 커밍아웃을 한다고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이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동성을 좋아한다고 한느 것이 개와 고양이중 어느 하나를, 당신이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택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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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의 수혜 대상자에 동성애자들을 포함시킬것이냐의 문제로 각계각층의 반응이 뜨겁다. 동성애자들 스스로도 논란이 많다. 공식적인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것을 불쾌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라도 자신의 권리를 찾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차별 금지법 자체가, 그런 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 사회가 넌센스라고 생각하지만 그 제정 의의에 대해서는 무척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사회, 정치적 접근은 일단 그동안 음지에 있었던 동성애를 공론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의식변화의 도화선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러다. 3, 4에 걸쳐 쓴대로 한국사회의 동성애 인식 수준은 낮고 배타적이지만 단시간에 변화할 여지도 안고 있다. 각종 문화 코드로 암호화(?)된 동성애 소재들이 젊은이들의 인식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가장 유명한 게이인 홍석천이 소개한 일화는 작금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홍석천을 보러 한국에 놀러온 외국 친구들이 홍대, 이태원 등 번화가를 돌아보고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엔 동성애자가 정말 많은 것 같다." 홍석천이 놀라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단다.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저렇게들 입고 다닐리가 없지 않은가?"
꼭 그래서만은 아니게, 지난 1세기간 격동의 변화를 겪어온 한국 근현대사 역시 그 믿음의 근거가 되어준다. 달리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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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가 사회적 금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플라토닉 러브Platomic Love가 성관계 없는 동성애를 일컫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화랑도와 동성애의 관계 연구는 꾸준히 이루어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는 동성애가 인간이 정신의 동물임을 반증하는 근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동물들과 (기형 양-2에서 언급한-은 제외한다) 달리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굳이 목적을 말하라면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내내 동성애에 대한 나의 태도는 내내 중립적이지 못하고 맹목적일 만큼 옹호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러나 동성애의 향유자(?)들은 약자이자 소수자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나의 태도가 부끄럽지 않다.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에 이데아가 있다면 그것은 Homophobia의 phobia일 것이다. 모든 이데아가 그렇듯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지만, 그것이 인간을 대하는 자세에 얽힌 문제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거기에 닿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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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느라 힘들었습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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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4-09-19
안녕하세요. 문학광장 문장지기입니다. 2024년 5월 월 장원 선정부터는 본 게시판이 아닌, [공지사항] 게시판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쓰면서 뒹글'은 온전히 글틴 여러분들의 글 게재만을 위한 게시판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월 장원 선정, 글틴 운영 규정, 깜짝 이벤트, 기타 안내사항 등은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할 예정이오니 앞으로는 [공지사항] 게시판도 자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공지사항] : 목록 | 공지사항 | 쓰면서 뒹글 : 글틴 (munjang.or.kr)
- 관리자
- 2024-06-05
글틴 친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감상&비평 게시판 멘토인 문학평론을 쓰는 김태선입니다. 요즈음 산책을 하다보면 봄에 피었던 꽃들 지고 그 자리에 작게 열매가 자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한낮에는 반팔만 입고 다녀도 될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나요. 4월에 감상&비평 게시판에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지는 않았어요. 4월에는 늘 열심히 쓰는 송희찬님과 화자님,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Alicja님 세 분의 글을 만날 수 있었어요. 송희찬님은 예전보다 글의 짜임새가 좋아졌고, 화자님은 늘 나름의 관심 분야에서 치열하게 생각하는 글을 써주었어요. Alicja님도 자신의 경험 평소의 생각해온 것들에 빗대어 작품을 읽고자 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글쓰기의 목소리가 독자보다는 글을 쓰는 자신으로만 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아쉬웠던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월장원을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비평&감상 게시판에 많은 글들이 올라와서 다음 달에는 여러 작품을 장원으로 선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달에는 조금은 독특한 책 두 권을 추천 도서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동물과 세계가 서로 능동적으로 관계맺는 방식을 살피는 생물학 책으로,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세계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다르게 감상자가 행위자로 참여하는 장르이자 매체인 ‘게임’을 탐구하는 책으로,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미학적 운동에 관해 생각하게 합니다. 야콥 폰 윅스퀼,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정지은 옮김, 도서출판b, 2012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2 그럼 항상 안전하고 건강한 나날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글을 쓰다가 궁금한 점이 있다면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함께 남겨주세요. 답을해드릴 수 있는 것이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관리자
- 2024-05-09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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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문제에서 정말 자신의 문제로 닥쳤을 때 어찌 그 상대를 대할 것인가? 자신이 동성애자를 인정해주는 문제와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매우 다른 관점에서 많은 가치관의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성애자일 수도 있고, 양성애자일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제자가 대학생(여)이 되었는데, 자신에게 동성애를 고백해 와 매우 당혹스러웠다는 경험을 말하더군요. 그런 상황에서도 신념을 지킬 수 있는지까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아 보이는 문제여서 저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군요.
'또 대개의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이 약간 모자라거나 병에 걸렸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들을 꺼린다.'는 문제점을 말하고 싶었고, 그 대안으로 다름(차이)를 인정하고, 틀림(차별'로 대하지 말자라는 관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고정관념 때문에 주장하기 힘든 논제인데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나간 점도 타당한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냥 제 생각은 그래요. 무성애자가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 번도 두 눈으로 동성연인의 염장질(덜덜덜)을 당해낸 적 없는 사람들이. 대체 그들은 무어가 무서울까? 많은 사람들이 그저 자기가 일반일 줄만 알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키는 알고 혈액형은 알면서 더 중요한 건 깨닫지 못하는(용기도 없는) 이들. (그런데 여기 혹시 무성애자이신 분은 어떻게 좀 뵐 수 없을까요.
사실 내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의견은 개인적으로 반기지 않습니다. 동성애에 얕은 관용을 보이는 것이 유행이라도 된 것 같아서요. 그 가운데 과연 얼마가 공개적으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거나 적극적으로 차별금지법 사태(적절한 표현인지)에 의견을 내보였을지 의문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확신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동성친구에게 고백을 받는 게 어째서 그다지도 황당하고 당혹스럽고 어이없는 일인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뇌에 이상이 있는 양. 그러나 무엇이 이상일까 하는 점입니다. 저도 이런 글 쓰고 싶었는데(그렇담 생활글이어야겠지만) 잘 읽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성소수자의 소수자는 그 수가 현저하다는 걸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비주류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죠. (자기정체화한 사람을 이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중년의 기혼자 상당수가 뒤늦게 자기 정체성을 찾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반은 더 폭넓게 정의될 필요도 있을 것 같구요. 상식적으로 일반이 더 소수여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