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
- 작성자 LEAN
- 작성일 200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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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2,291
사막 도시에서 살아가기
-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그다지 어려운 말이 쓰이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그 말의 본지를 파악할 수 없는 두 인물의 대화를 읽으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걸까?’하는 의문을 삼켜야만 했다.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주인공인 ‘나’와 ‘안’이라는 인물들이 주고받는 일련의 대화는 그 언어들 속에 뚜렷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뼈대 없이, 그저 몇 가지 단어들을 줄줄이 나열해 놓고 뱅글뱅글 겉도는 것만 같은 붕 뜬 느낌이었을 뿐이었다.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무엇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대화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면서 읽어내려 가던 나는 어느 순간 그런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 무엇도 말하지 않는 대화, 그 무엇도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는 사람들. 그럴 듯한 단어들을 배열하고 내뱉는 것이 대화의 전부는 아니다. 그 속에 그들 ‘자신’에 대한 아무런 사실도 담길 것 없이, 그들의 과거도, 현실에서의 중요한 삶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의지가 전혀 담기지 않은, 시간에서도 공간에서도 너무나 멀찍이 떨어져 그저 희뿌연 안개처럼 현실에 발붙이고 있지 않는 자질구레하면서도 무의미한 일들만 서로 주고받는 두 인물의 대화 속에서, 결코 서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들. 난 그들의 그런 모습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일맥상통 한다고 생각되었다.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이 하루를 같이 보내고 또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보낸 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과 같을 것이라는 느낌말이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도, 그들이 보낸 하루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은 찾아 볼 수 없고, 그저 무관심하고 무신경한 반응들만 보이는 ‘나’와 ‘안’의 모습이 마치 서로 맞다 있지만 섞이지 않는 건조한 사막의 모래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줄기 물과 흙이 서로 섞이고 부드러워지는 것이나 물과 물이 모여 큰 줄기를 이루는 것과는 다른 삭막하고 냉담하고 건조한 모습들. 그러한 무관심과 삭막함이 생겨 날 수밖에 없던 당시의 환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된 것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그에 따라 중시되는 돈과 같은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망과 좌절,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앞질러 가는 사회의 변화들. 그러한 변화와 변동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흔들리고, 스스로를 닫아버리게 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회색빛 도시의 모습을 한 건조하고 아픈 사막. 작가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어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사막의 휘몰아치는 모래알들에 쓸려 그저 온몸을 무관심의 천으로 꽁꽁 감싸 매고 갈 수 는 없다는 사실도 작가는 함께 보여주고 있다. 아니, 그렇게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가서는 ‘안 되는’ 것이란 걸 말이다. 인간의 삶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돈’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어느새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지배해 버린 잔인한 삶을 부인을 시체 해부용으로 팔고는 괴로움에 결국 자살을 택해버리는 한 남자를 통해 쓰라리게 보여준 것이다. 그런 사회에 대한 사실과 비판을 적절이 섞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남자의 곁에 있었으면서도 그를 위로하기는커녕, 따뜻한 관심의 한 조각도 보여주지 않은 이들의 모습 속에서 자살을 택한 그를, 과연 살릴 수 있는 길은 없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들게끔 하면서 우리에게 서로에 대한 관심의 중요성과, 무관심해지고 삭막해져만 가는 현실에 대한 경고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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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작품은 고등학교 학생 정도라면 거의 한 번 씩 읽었을만한 작품이지요. 대개 작품해설에 나온 내용을 바꿔쓰는 듯한 느낌이 드는 감상문이 많은데, 이 글은 자신의 감성과 언어를 활용하여 생각을 표현해내는 장점이 있군요. ''한줄기 물과 흙이 서로 섞이고 부드러워지는 것이나 물과 물이 모여 큰 줄기를 이루는 것과는 다른 삭막하고 냉담하고 건조한 모습들.''이란 부분 등이 참 개성적인 인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통해 많은 학생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 1960년대 전후소설 이군요.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