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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닮았다

  • 작성자 s__crack
  • 작성일 2008-05-03
  • 조회수 736

 

 또 시작이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컴컴한 동굴 같은 준서의 입 속에서 하얀 것이 또 종유석처럼 비죽, 살갗을 뚫고 자라나온 것이다. 시키는 대로 아ㅡ 하고 있는 준서의 입에서 젖 냄새가 나는 듯했다. 유치를 두 개나 갈기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종유석과 석순은 몇 달째 번갈아가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뿌리가 성한 치아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데도 그 새를 못 참은 새 이가 금세 툭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덕분에 준서는 뿌리가 삭지 않은 2센티 길이의 생니를 두 번씩이나 뽑아버려야 했다.

 아무래도 치과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았다. 잇몸을 마취하고, 펜치 같이 험악한 집게로 유치를 쑥 빼버려야만 새로 자라나는 종유석이 들어앉을 자리가 생길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입천장을 더듬던 준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누나, 나 또 치과 가?

 그 표정이 귀여워 볼을 살짝 꼬집어주었다. 열한 살 터울의 막내 동생 준서. 남자애답지 않게 애교도 많고 얼굴도 하얗다. 까만 콩 같은 나와 둘째 민이는 준서의 뽀얀 피부를 언제나 부러워했다. 엄마가 가장 걱정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까만 콩두 알 갖다 놓은 것 같은 누나들과는 너무 다른 얼굴색. 얘가 나중에 커서 자기가 입양안 걸 알면. 엄마는 잠든 준서의 흰 얼굴을 쓰다듬으며 포옥 한숨을 쉬곤 했다. 입양아. 몇 년 전부터 막내를 갖고 싶다며 아빠를 졸라대던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우리에겐 말 한 마디도 없이 처음 보는 아기를 데려왔다. 그 때는 그 두 살배기가 마냥 신기하고 귀여웠다. 언년생인 둘째와 나는 막내 동생이 장난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붙들고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아빠의 심란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집은 딱히 여유 있다고 할 수 없는 서민 가정이었고, 준서는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게 생겼으므로. 곱슬머리, 흰 얼굴, 날씬한 팔다리. 조금 더 철이 들었을 때, 나는 하필이면 가족들과 닮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아기를 입양한 엄마를 원망했다. 지금도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나는 막내 동생을 사랑했다. 준서를 데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일을 나갔다. 학원 선생님이란 그렇게 규칙적인 직업이 아니라서 어느새 준서는 엄마보다 나를 더 잘 따르게 되었다. 엄마는 막내의 재롱을 보기 위해 매일매일 칼 퇴근을 감행했지만 나에 대한 준서의 애정을 돌이킬 순 없었다. 네 살짜리에게 자음모음 카드로 한글을 가르친 것도, 자기 전에 토끼와 호랑이 동화책을 읽어준 것도 나였다. 엄마의 일이 많아지면서부터 나는 준서의 이런저런 사소한 뒤치다꺼리들을 좀 더 도맡게 되었다. 물론 친구들과의 약속을 동생 때문에 취소한다던가, 못하면 혼나고 잘해야 본전인 이 일에 대하여 짜증스러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준서를 그 누구보다 좋아했다. 햇살처럼 웃는 준서를 보면 행복했다. 벌써 엄마가 된 느낌이랄까. 나는 병아리처럼 쑥쑥 자라는 막내를 볼 때면 종종 묘한 흐뭇함을 느끼곤 했다.

 “민아, 의료보험 카드 좀 갖고 와. 준서 또 이빨 난다. 치과 가야 돼.”

 “아 뭐야, 또?”

 둘째가 신경질을 내며 카드를 던졌다. 아직 사춘기가 덜 끝났는지, 동생의 신경질은 시험 기간만 되면 온도계처럼 급상승했다. 둘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바깥 날씨는 꽤 포근해졌는데도 꼭 잡은 준서의 손이 차가웠다. 그러고 보니 요새 부쩍 살이 빠졌다. 요즘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잘 챙겨주지 못해서 그런 건지. 안쓰러운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도 투정 부리지 않고 잘 따라오는 게 기특했다.

 과자를 하나 사 주고 치과에 도착했다. 치과를 싫어하는 준서는 아직도 시무룩했다. 이빨 뽑는 건 괜찮은데 마취는 싫어, 준서가 아까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준서는 전부터 마취 주사를 무서워했다.

 “그래도 마취 안 하면 이 뽑을 때 엄청 아퍼. 그리고 지금 안 뽑으면 나중에 덧니 된다? 막내 이모처럼 못생긴 이빨 돼. 그럼 안 되겠지?”

 준서의 큰 눈동자가 끄덕끄덕했다. 진료실로 들어가는 준서의 손이 아직도 차가워서 걱정이 되었다. 마취를 하고 젖니를 뽑는 데는 십오 분이 걸렸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준서에게 두 시간 동안은 과자를 먹지 말라고 당부했다.

 “근데 누나랑 동생이랑 하나도 안 닮았네? 친누나 동생 맞아요?”

  의사 선생님이 농담조로 덧붙였다. 얼굴이 확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수습을 했다.

 “에이, 선생님도 농담은요. 우리 발가락은 똑같이 생겼어요.”

 “하하, 그래요? 알았어, 알았어. 잘 가고, 동생 양치 잘 시켜요. 어금니 금방 충치 되겠더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놀란 눈치를 알아차리기에 준서는 너무 어렸다. 남은 과자를 나에게 먹으라고 준다. 이 아이가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걸 알면 대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준서가 조금 더 크면, 아마 가족들과 하나도 닮지 않은 자신에 대하여 분명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요즘 TV나 소설은 입양 가족의 이야기를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고 있었다. 준서 같은 아이가 있다는 건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마음 같아서는 준서가 ‘입양’이라는 단어도 몰랐으면 했다. 하지만 준서는 분명히 그 단어를 접할 것이고, 여기저기서 멋대로 떠들어대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십 수 년 간 자신이 친자식이라 믿어 의심치 않다가 예민한 시기에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때 준서가 겪을 충격과 배신감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차라리 일찍 알려 주는 게 나을 지도 몰랐다. 덧니를 막기 위해 멀쩡한 유치를 뽑아주는 것처럼.

 “누나, 그러고 보니까 누나랑 나랑 발가락 진짜 비슷하게 생겼다, 응? 나는 누나는 까매서 나랑 하나도 안 똑같은 줄 알았지.”

 준서가 슬리퍼를 신은 발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얗고 조그만 얼굴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아, 정말. 그냥 넘어가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정말 발가락이 닮았다. 검지 발가락보다 중지가 길고 전체적으로 살이 없는 마른 발가락. 정말, 정말 닮았네!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마구 웃었다. 멋모르는 준서도 옆에서 까르르 따라 웃었다. 그래, 발가락이 닮았다. 아마 찾아보면 닮은 부분이 더 있을 지도 몰랐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더 닮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준서가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우리가 준 사랑과 함께한 시간만큼 상처가 덜해질 지도 모른다.

 준서의 손을 잡고 집으로 달려갔다. 까르륵,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준서가 웃었다. 조그마한 손은 어느새 따뜻해져 있었다.

s__c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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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__c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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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 연장원 예감^^

    • 2008-09-21 17:41:57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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