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수퍼우먼의 사이코 딸
- 작성자 곰삭은수숫대
- 작성일 200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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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수퍼우먼의 사이코 딸
엄마는 수퍼우먼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나를 위해서 엄마는 새벽별이 스러지기도 전에 눈을 떴다. 내가 학교에 가고 난 다음이면 엄마는 내 동생을 학교에 보내고는 출근했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집안일을 혼자 다 해치웠다. 그리고는 대학원 공부를 하시느라 수험생인 나보다도 늦게 잠드셨다. 엄마는 야간 대학원에서 A학점을 받고도 ‘A+를 받아 장학금을 탔어야 했는데…’ 라며 아쉬워했다. 공부에 한이 많았던 엄마는 우리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들먹이며 내게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앞서가야 한다고 누차 말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 엄마를 위해 착한 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엄마가 내 성적 때문에 걱정하시는 일은 없어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공부뿐이었다. 나는 그래서 공부를 잘 해서 엄마에게 효도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순진했다. 나는 내가 열심히만 하면 엄마는 나를 ‘노력하는 착한 딸’로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네 시간 야자를 하는 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다반사요 쉬는 시간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점심시간과 저녁식사 시간을 아껴 죽어라고 공부했다. 남들이 웃고 떠드는 스쿨버스 안에서 나는 핸드폰 조명을 켜고 책을 읽었다. 심지어 아침 청소 시간에 청소를 하면서도 나는 단어 암기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행히 성적은 내가 노력한 만큼 나와 주었다. 상장도 몇 장씩이나 받았다. 그것들은 내게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고, 수고했다고 속삭였다. 좋은 성적을 받을 때마다, 가장자리의 금박이 반짝거리는 상장을 받을 때마다 나는 기뻤다. 그런 것을 가져가면 엄마가 기뻐할 테고, 나는 칭찬받는 착한 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희망은 매번 짓밟혔다. 엄마의 기준은 내 능력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 꼬리표에 백점이 수두룩해도 엄마의 눈에는 내가 틀린 문제만 보였다. 아쉽다, 아깝다, 아이쿠. 이 문제만 맞았으면 ‘올백’인데. ‘올백’이 아닌 이상 엄마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한 번도 ‘올백’을 받지 못했다. 하루는 엄마 앞에 상장을 꺼내 놓았더니 그걸 가정통신문과 함께 한옆으로 치워 버렸다. 물론 엄마 눈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학교 상장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학 내내 밤을 새워 가며 공부해서 외국어 자격증을 땄더니 그거 어차피 안 따는 애들 없다며 조금만 더 공부해서 더 높은 급수를 따지 그랬냐고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억울했다. 그래도 좀 더 잘 하면 칭찬해 주시겠지, 이번엔 내가 좀 부족했나 보네, 아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며 나는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엄마의 기대를 향해 쓰러지기 직전에 신기루를 본 여행자처럼 비척비척 걸었고 이를 악물고 기어가기도 했다.
4년이 그렇게 지나갔다. 허무했다. 받지도 못할 칭찬을 꿈꾸며 나는 헛고생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두 달 학원을 다니며 특정 과목에 ‘올인’하고는 합격한 이후에는 또다른 자격증을 찾아 헤매고, 엄마가 원하는 점수를 받아오기 위해 내신기간이면 선생님이 귀찮아하실 정도로 질문을 해 대며 열을 올리다 정기고사가 끝나면 모의고사 대비한답시고 줄창 문제집과 씨름하고……. 엄마의 전화가 오면 동아리 활동도 마음껏 못 하고 눈치 봐서 슬쩍 빠져나가고, 노는 건 생각조차 못 하고, 공부하고, 잠들고, 공부하고, 잠들고의 연속. 하지만 이런 생활을 지속한다 해도 어차피 나는 엄마가 원하는 만큼 완벽하게 공부를 잘 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희망이 스러지자 내 전신에선 힘이 쭉 빠져버렸다. 이젠 지쳤어…하며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초에 공부를 놓아버렸다. 당연히 성적은 나조차 놀랄 정도로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큰 폭으로 성적이 떨어질 줄은 몰랐기에 나 자신도 충격을 받았고,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보시자마자 성적이 왜 그러냐고 걱정하시는 등 선생님들이 나를 대하시는 태도도 싹 바뀌어 버렸다. 나는 성적의 변화로 인해 초래된 주위 환경의 격변에 정신을 못 차리고 혼란스러워했다.
게다가 엄마의 잔소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공부 못 하면 얼마나 쓰잘데기없는 인간이 되는 줄 아니, 공부 못 하면 나중에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어중간하게 공부할 거면 아예 때려치워라, 공부 안 할 거면 뭐하러 비싼 돈 내고 학교 다니니, 집에서 일이나 하지,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니, 밥을 짓기를 해 제가 입은 것 빨래를 하기를 해, 한두 살짜리 어린애도 아니고, 너는 왜 생각하는 게 그렇게 어리니, 넌 너밖에 생각 못 하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말들이 전부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매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말, 말, 말. 그 말들이 괴물이 되어 나의 가슴을 물어뜯었다. 다른 것은 다 잊을 수 있었지만 그 말만큼은 잊혀지지 않았다. 나는 제발 그런 말만은 듣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보다 훨씬 고생하는 엄마에게 그런 말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나 증오하는 쓸모 없는 인간이 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바라는 만큼 완벽한 딸은 될 수 없었다.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내 팔목에는 커터칼로 그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하나둘씩 늘어갔다. 가차없는 칼질은 쓸모없는 자신에 대한 벌이었다. 그리 아프지도 않았다. 어차피 칼로 가볍게 몇 번 긋는다고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사이코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일종의 환각 상태에서 팔에 자꾸만 상처를 내고 희열을 느꼈다.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지 반성하며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난 뒤엔 아픔조차 느낄 수 없었기에 칼질이 더 격해졌다. 그렇게 문을 잠근 채 혼자서 한바탕 조용히 소동을 피우고 나면 실처럼 피가 맺힌 붉은 선이 팔에 남았다. 상처는 아름다웠다. 상처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 그럴 때에만 상처는 쓸모가 있다. 쓸모가 있는 상처는, 가슴이 벅차도록 아름다웠다. 쓸모없는 나에 비하면.
창 밖을 내다보는 일도 잦아졌다. 10층. 잔디밭은 너무도 가까워 보였다. 여기서 떨어지면 즉사다. 이 순간만 눈 딱 감고 뛰어내리면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방충망을 열고 밤바람을 느꼈다. 쏟아지는 달빛은 손바닥에서 부서져내렸다. 두 발을 밖으로 내밀었다. 아무도 죽지 말라고 잡아 주지 않았다. 내 두 발은 허공에 떠 있었다.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그래, 그대로. 창틀을 붙잡은 그 두 손만 힘껏 밀어 준다면 나는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두 손은 굳게 창틀을 잡고는 놓으려 하지 않았다. 순간의 공포감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을 저주하며 나는 또다시 울고 팔에 상처를 냈다. 그러다 쓰러져 잠들곤 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갔다. 나는 스트레스로 인해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면서도 전과 다름없이 내게 상처주는 말을 그만두지 않았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제발 그렇게 심한 말은 그만둬 달라고 혀끝까지 말이 차올랐지만 그 때마다 나는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를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나날이 누적되어 가는 스트레스에 나는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아침부터 내 머릿속은 떨어진 성적과 캄캄해 보이는 앞날 생각에 복잡했다. 영 기운이 나지 않았고, 얼굴 표정을 밝게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워낙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 나였지만 그 날은 유난히 밥맛이 없었다. 그날따라 엄마는 밥을 잘 먹지 않는 동생을 혼냈고, 그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나는 그 말이 다 나를 향해 오는 것만 같아 움츠러들었고 식욕은 더 떨어졌다. 결국 나는 밥숟갈을 놓고, 조금 여유있게 걸어나가 스쿨버스를 기다릴 요량으로 집을 나서려 했다. 밖에 서 있어서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집에서 엄마와 동생이 싸우는 걸 보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엄마가 나를 불렀다.
“아직 시간도 안 되었는데 어딜 나가려고 그래?”
“…….”
“너는 또 왜 아침부터 인상을 팍팍 쓰고 그러니? 아직 시간 남았잖아. 뭐하러 그렇게 일찍 나가?”
“…….”
조금 일찍 나간다고 엄마가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 이유는 없었다. 한 마디 대꾸도 없이 문을 열려 하자 엄마가 갑자기 어깨를 잡아 나의 몸을 홱 돌려버렸다.
“너 오늘 왜 그러니? 아침부터 인상은 팍팍 쓰고! 힘은 하나도 없이 기운 축 빠져서 늘어져 있고!”
나가고 싶었다. 정말로 나가버리고 싶었다. 이제 그만, 엄마, 제발 그만…….
“아니 시간 안 되었다니까 얘가 어딜 나가려고 그래? 일찍 나가서 뭐하려고 그러는데!”
“……”
“대답 좀 해! 엄마가 물어보잖아!”
“기다릴거야!”
나도 모르게 입에서 큰소리가 튀어나왔다.
“뭐?”
“기다릴거라고! 버스 올 때까지 조금 일찍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나 일찍 나가느냔 말이야!”
엄마도 언성이 높아졌다.
“기다릴 거라고! 기다릴 거라니까?”
“그러니까, 뭐하러 이렇게 일찍 나가냐고!”
“뭐 어쩌라고! 내가 일찍 나가는데 엄마가 왜 뭐라고 해? 내가 일찍 나가겠다는데!”
“너, 엄마 좀 봐봐. 너 이리 와. 어디서 어른에게 고함을 지르고 그래? 응? 너 이리 와. 이리 와!”
엄마는 내 팔을 잡고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화가 났다. 조금 일찍 나가겠다는데 대체 왜 이렇게 난리법석을 피워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잡힌 팔을 빼내려 위아래로 흔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빠가 끼어들었다.
“왜들 그래, 왜들. 싸우지 말고, 왜 그래?”
하지만 아빠의 말에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절간의 신장마냥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보았다.
“너 이리 와. 김소담 너 이리 와. 어디 어른 앞에서 소리를 질러? 여기가 어딘데? 응? 네가 뭘 잘 했길래 그렇게 눈 똑바로 뜨고 어른을 쳐다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엄마를 눈에 있는대로 독기를 품고 노려보았다. 이만하면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게 계속 똑바로 쳐다보네! 시선 안 내려! 어딜 가려고 그래! 들어와!”
“…싫어.”
“…뭐?”
“싫어! 싫다고! 싫어! 싫어어어어어어!!!”
“…?”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다고! 싫단말야! 내가 싫다는데 왜? 내가, 내가 싫다는데 왜 자꾸 그러냐고! 왜? 왜? 왜!!!”
나는 정신병자처럼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저 싫었다. 그뿐이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매일, 그 매일 속의 잔소리와 스트레스, 나쁘게만 보이는 상황. 이 모든 것이 싫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 원인을 제공한 엄마가 누구보다도 증오스러웠다.
“좀 일찍 나가자는데 왜 잡냐고, 왜 그러는데? 대체 왜 그러는데? 싫다는데 왜 자꾸 잡는데? 왜 계속 잡고 난린데! 왜! 왜! 왜!!”
나는 울음과 비명을 섞어 소리쳤다. 있는 힘껏, 저 멀리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어 보이는 엄마를 향해. 아니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가까이 있는, 바로 내 눈 앞에서 눈을 허옇게뒤집고 입에는 거품을 문 채 내게 달려드는 엄마를 향해.
“너 말 다 했어? 김소담, 말 다 했어? 이거 놔, 놔! 이거 놔! 내 저걸 그냥, 놔! 놓으라고!”
“참아, 참아, 왜들 그래, 둘 다! 응? 소담아, 들어와. 말로 해, 말로! 어허, 가만히 있으라니까, 당신은!”
엄마는 아빠에게 잡힌 채 버둥거렸다. 엄마의 눈은 죽은 물고기 배처럼 허옇게 뒤집혀 있었고, 입가에는 거품이 조금 묻어 있었다.
“이거 놔, 이거 놔! 너 지금 그게 엄마한테 할 말버릇이야! 너 어디 엄마 죽는 꼴 볼래?”
‘엄마 죽는 꼴 볼래?’ 라는 한 마디에 나는 그야말로 ‘돌아버렸’다.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대체 몇 번이나 죽으려 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는 그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몇 번씩이나 죽으려 했지만 나약함 때문에 죽지 못한 내가 밤마다 얼마나 ‘시뻘겋게’ 울어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순간 분노가 솟구쳤다. 나는 아빠에게 잡혀 거실에서 몸부림치는 엄마에게 다가가 상처 부위가 벌겋게 부은 손목을 들이밀었다.
“엄마, 나 죽는 거 먼저 봐. 나 죽는 거 먼저 보라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는 줄 알아? 봐, 보라구! 손목 몇 번 긋는다고 안 죽어. 알아? 어젯밤에 난 세 번이나 뛰어내리려고 했어! 세 번씩이나! 근데 못 뛰어내렸어!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
“……?!”
“소담아, 너 왜 그래! 너 엄마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응? 정신차려, 여보! 당신 오늘 출근 할 거야? 정신 차리라구!”
엄마는 여전히 아빠의 팔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며 문을 닫고 집을 나와버렸다. 동생에게 조금 미안했다. 아빠한테도 미안했다. 하지만 엄마한테는 미안하지 않았다.
나는 스쿨버스를 타는 대신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며 나는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하철에 뛰어들 생각 하지 말고 와, 라니. 자살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스쿨버스를 타기 싫었을 뿐이었다. 바보, 내가 얼마나 상처받을지는 생각도 안 하고, 라. 내가 죽으면, 이 녀석은 상처받는 걸까나. 나는 이 아이에게만은,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는걸까. 이렇게나 골칫덩어리인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가. 아빠에게 문자가 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평상심 잃지 말고 학교에서 공부 잘 하고, 제대로 들어와라, 라니. 날 대체 뭘로 보는 걸까. 겨우 이 정도로 내가 학교를 빠지거나 가출이라도 할 것 같은가. 겨우 엄마 때문에 학교를 빠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음같아선 엄마 얼굴이 보기 싫어서 가출하고 싶었지만 내겐 돈이 없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교에 갔다.
“뭘 그런 걸 갖고 그래? 그거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겪었던 일이구만 뭐. 별로 심각한 거 아니네. 너무 그렇게 고민하지 마. 그런 건 생각 안 하는 게 상책이야.”
친구는 나와 엄마 사이에 있었던 일을 가족간에 흔히 있는 말다툼 정도로 생각해버린 듯했다. 그런 건 신경쓰지 말라는 둥, 이 세상 엄마들은 다 그렇다는 둥 하는 말에 나는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내 동생이 엄마한테 너무 대들어서 내가 아주 미쳐버리겠다니까. 동생이 엄마랑 싸우면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가 있나. 얼굴 풀어. 뭘 그리 걱정해. 일주일도 안 되어서 도로 원상복귀된다니까.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태연했다. 친구를 보고 있자니 오늘 아침의 일이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그런 싸움은 다른 집에서는 일상다반사인데 우리 집에서만 아주 늦게 시작되었을 뿐인 흔해빠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친구는 그렇게 싸우고 나서도 돌아서면 엄마와 화해한다고 하지만 나나 엄마의 성격상 그런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고집이 세고 화가 나면 상대와 말 한 마디도 안 하는 데다가 평소에조차 말을 잘 안 하는 과묵한 점은 모녀지간에 꼭 닮아서, 웬만큼 대단한 계기가 없는 한 나와 엄마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사태가 진전될 가능성은 없는 듯했다.
집에 오자 아빠가 나를 불러서는, ‘우리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아빠는 붉은 줄이 죽죽 간 내 팔목을 보고는 경악하면서 물었다.
“뭘로 했니?”
“커터칼.”
“죽을 거면 단번에 깊이 찔렀어야지.”
“누가 모른대요. 이까짓 것 갖고 안 죽는다는 거 나도 알아요. 안 죽는다는 거 아니까 하는 거죠.”
“하나, 둘, 셋, 넷, 일곱 번씩이나 왜 이런 짓을 해, 여자애가.”
사실 상처 자국은 열세 개였다. 멋대로 남의 아픔을 줄이지 말라는 소리가 목까지 차올랐다. 나는 아빠에게서도 도망치고 싶었다. 아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런 짓을 왜 했어. 이런 건 사이코들이나 하는 짓이야.”
‘어이쿠.’
나는 문득 반감이 들었다.
‘사이코여서 죄송합니다. 졸지에 사이코 딸을 두게 되셨군요. 제가 사이코라는 걸 모르셨던 게 참으로 유감입니다. 사실 전 아주 오래 전부터 미쳐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동안 나만은 네 편이랍시고 언제나 믿으라는 둥 말했던 건 대체 뭡니까. 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위선자.’
면도칼같은 말은 입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나는 상처가 난 손목을 손수건으로 가리고 다녔다. 보는 사람들마다 다쳤냐는 둥 한 마디씩 물어보았지만 나는 그들의 물음을 모두 부정했다. 엄마와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게다가 이 상처는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눈앞에 창문을 두고, 뛰어내리지 못하는 자신을 저주하며 낸 상처. 쓸모없는 자신에 대한 벌이라며 기쁘게 냈던 상처. 너같이 ‘쓰잘데기 없는 녀석’은 벌을 받아야지, 하며 그었던 붉은 선. 그 선들은 손수건 밑에서도 겁쟁이인 나를 조롱하며 손목 위를 달리고 있었다. 네가 그렇지 뭐.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넌 고작 그것밖에 안 돼. 죽을 용기도 없는 녀석. 그런 말이 모여서 내 손목에 상처로 맺힌 것이었다. 나는 이따금 손수건을 들추고 상처를 응시했다. 일련의 비현실적인 사건이 실재했다는 것을 그 붉은 선들은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만 손수건을 풀고 손목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 애는 아빠같지 않았다. 질책하는 대신 그는 나의 아픔에 공감해주었다. 내가 전에 얘기했던 그 후배 말야, 내가 걔랑 전화하다가 일이 있어서 잠깐 전화를 끊었었는데, 다시 전화했더니 그 동안 창가에서 계속 손목을 긋고 있었대. 아빠가, 나보고 이런 건 사이코나 하는 짓이라던데, 하고 쓴웃음을 짓자 그는 반문했다. 그렇게 치면 이 세상에 사이코가 넘쳐나게? 맞는 말이었다. 손목을 긋는 아이가 어디 한둘인가. 아빠와 남자친구의 말을 조합해 보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이코였다.
그의 엄마도 나의 엄마처럼 선생님이었다. 그에게 물어보니 그의 엄마는 나의 엄마만큼 슈퍼우먼이었다. 새벽등교하는 아들을 위해 신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아들과 열두 살 터울이 지는 유치원 다니는 꼬맹이를 돌보고, 틈틈이 아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을 개발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청소와 빨래, 밥짓기는 그렇다치고 너네 엄마는 음식까지 네 입맛에 맞추어 만드시냐고. 그는 반문했다. 직장 다니시는 엄마들 다 그 정도로 바쁘게 살지 않냐고. 그렇게 치면 이 세상에 슈퍼우먼은 제 손으로 손목을 긋는 사이코만큼이나 흔했다.
한 주가 지나도록 엄마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서 엄마의 얼굴을 보게 될까봐 알람을 엄마가 깨우는 시간보다 일찍 맞춰 놓았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제발 거실에서 엄마와 마주치지 않기를 빌며 집 문을 열었다. 아침에 나를 깨울 때도 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칠까봐 문을 열고 일어나라고 한 후 도로 문을 닫아버렸다. 물론 나도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침대에 다시 들어가는 일 없이 단번에 일어났다. 며칠간은 아침 밥상에 엄마의 요리가 올라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가게를 꾸려갈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요리를 못 하는 반찬가게 아줌마의 음식 몇 가지가 식탁에 덜렁 놓여 있을 뿐이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엄마의 음식도 맛없기는 마찬가지였고, 나는 맛없는 음식을 묵묵히 먹는 데는 이골이 나 있었다. 엄마와 한 상에서 밥을 먹게 될까봐 나는 야간자율학습이 없는 수요일에는 밖에서 저녁을 아예 먹고 들어왔다. 일요일에는 아침부터 집을 나서 도서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학원에 갔다. 내가 집에 있으면 엄마는 안방에서 절대 나오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로 되도록이면 내 방 밖으로 발을 떼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칠 때도 못본 체했고, 물론 한 쪽이 나갔다가 들어와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집안 분위기는 싸늘해진 채 따뜻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아빠는 나와 엄마 사이에서 곤란해하셨다. 아빠는 짜증이 늘었다. 그는 더 이상 ‘난 항상 네 편이다’며 웃어보이던 그런 아빠가 아니었다.
그렇게 두 달여가 흘러갔다. 엄마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종종 엄마가 해 주는 일이 조금 고맙게 느껴졌다. 물론 그 전에도 엄마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 때마다 엄마가 나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내가 얼마나 정신 못 차리고 공부를 안 하고 있는지 외면하고만 싶은 현실을 끄집어냈기 때문에 항상 고마움보다는 짜증이 앞섰다. 무주상보시. 도와준 후에는 도움을 주었다는 일조차 잊어버리는 그런 자세를 나는 원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억지로 도움받고는 어린애취급당하는 것은 신물날 지경이었다. 도와주고 싶으면 조용히 도와주든지, 도와주는 게 그렇게나 힘들면 아예 하지를 말지. 수백 번은 더 내뱉고 싶었지만 한 번도 입 밖에 내 보지 못한 내 진심이었다. 엄마와 싸우고 며칠 지나, 엄마가 해 준 아침밥을 먹고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하면 고맙잖아. 대체 왜 좋은 일 하면서 욕 얻어먹게 투덜투덜거리냐고. 고마운 마음까지 싹 사라지게 하지 않냐고.
아빠는 너랑 엄마 때문에 아주 죽겠다며, 웃으면서도 은근히 자주 신경질을 냈다. 하지만 나는 한 번 입을 열면 쏟아져나올지도 모를 비수같은 말을 제어하지 못해 엄마에게 또다시 상처를 입힐까봐 차마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 수 없었다. 엄마도 내게 일어나라든지, 밥 먹으라는 등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평행선같은 관계가 지속되었다. 사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주말, 저녁식사가 끝나고 엄마가 내게 말했다. 이젠 엄마가 네게 간섭하지 않으마.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그럼 도와줄게. 그걸로 나와 엄마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어이없다면 어이없는 결말이다. 게다가 엄마는 내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답시고는 계속 잔소리를 해 대고, 직시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눈을 가린 손가락의 틈새로 밀어넣는다. 그래도 엄마는 더 이상 내가 나 자신을 쓸모없다고 느끼게 하는 말은 안 한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진전인가.
그 동안 손목의 상처는 흔적도 없이 다 나았다. 남자친구는 날마다 상처가 얼마나 나았나 확인하면서, 상처가 다 나은 날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나를 소중하게 여겨 주는 사람이 있기에 나는 이제 손목을 긋지 않는다. 아니, 긋지 못한다. 내가 나를 괴롭히면, 그도 괴로워하니까.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이 나는 손목을 긋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롭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엄마와 아빠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헷갈린다. 물론 소중해하겠지. 하지만 이건 영 아니다 싶을 때도 많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기분과 느낌을 존중해주고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데, 엄마와 아빠는 그런 것에는 익숙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와 이십 년 가까이를 살아오면서도,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내 남자친구보다 나를 존중하는 데 서투르다. 어쩌면 너무 가까운 관계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엄마가 집에 홍삼제조기를 들여놓으셨다. 또 사서 고생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는 엄마니까. 그것이 엄마의 존재 방식이라면, 딸로서 조금은 어울려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게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의 매너가 아닐까. 수퍼우먼에게 평범한 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건 사이코에게 똑같은 것을 강요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엄마가 내 생활방식을 존중해 주는 건 아니지만, 힘들어하는 엄마가 잠깐이나마 기대어 쉴 수 있는 기둥이 된다면 나도 그리 ‘쓰잘데기 없는 인간’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아침저녁으로 쓰기만 한 홍삼액을 들이킨다. 밑져야 본전이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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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말 감사합니다.. 읽고나서 행복해졌어요.. 나도 오늘은 글을 써야겠는데요.. 창작욕이 샘솟는 근육처럼 올라오네요..!!! 감사해요.. 정말.. 최고였어요!!!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