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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공포증

  • 작성자 침묵의소리
  • 작성일 2010-08-09
  • 조회수 880

 

 

나는 물고기가 무섭다. 아니,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나는 물고기의 ‘눈’이 무섭다. 고정된 시선이 꼭 사람 같아서 무섭다. 물고기의 얼굴을 사람의 얼굴처럼 인식하게 되어 공포증이 생겨버린 듯 싶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공포증을 갖게 되었을까? 나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아빠가 낚시 해온 큰 물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공포증은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을 다시 잡아끌어 살며시 되짚어 보면 나의 물고기 공포증은 초등학교에 5,6학년때 생겼다.

 

그 때 당시 제일 큰 사건은 언니들의 대학교와 고등학교 입학이었다. 누구든지 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기에, 흔히 말하는 천재들이 가는 학교에 합격했던 것이 나의 공포증의 시작이었다. 언니들의 합격소식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소문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한 친구 몇 명에게 말했던 것이 아마 학교에 소문이 나돌게 된 원인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정말로 그때 소문이 난줄 몰랐다. 그저 학교에서 복도를 걸을 때 내가 모르는 아이들이 한번씩 나를 쳐다보고 간 것을 종종 느낄때가 있었지만, 그저 우연히 쳐다본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생활안전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학생들을 강당에 모이도록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별 생각없이 강당에 가서 줄을 서고 난 후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앉아있는 나를 계속 힐끔 쳐다보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네 언니 △△대학교랑 □□고등학교 갔지?”

나는 순간 그애를 보고 당황했다. 모르는 애가 나한테 처음 말을 건게 이름이나 몇반인지 등 흔히 처음보면 기본적으로 물어 보는 것이 아닌 나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애한테 물어봤다.

“어떻게 알았어?”

그러자 그애가 웃으면서 말하길

“그거 이미 소문 다 났어. 모르는 애가 없을걸?”

 

그때서야 내가 대화하고 있을 때 다른 애들이 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내가 모르는 애들이, 심지어 언니 친구의 동생까지 왜 다 나를 유심히 보고 지나갔는지, 은근슬쩍 안 들키게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수근댔는지, 이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언니랑 같은 학원에 다녔을 때

“너가 ○○○의 동생이니?”

라고 물으면서 활짝 웃었던 학원 선생님들도, 그리고 원래 시험을 보고 반 배정을 받아야 하는데 나는 항상 무조건 제일 공부잘하는 반에 넣어줬던 일들도 그제서야 나는 알게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바보였던 것 같다. 집으로 수십번씩 전화하는 언니친구들의 엄마들의 시샘들을 나는 그때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더 충격이었던 것은 나의 성적이 어떤지 알고 난 후의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기대에 가득찬 그들의 기준에 충족되지 못하면 선생님들의 눈에는 실망감이 가득찼고 내 또래 아이들의 눈에는 비웃음만 서려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적나라하게 마음속을 나타내고 있어서 나의 마음에 늘 상처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공포증에 시달렸다. 무언가를 보여주기를, 자신의 기준에 충족되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고정된 시선에 내가 보여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런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들의 얼굴이 아닌 물고기의 얼굴을 한 사람의 모습밖에 안 보였다. 그때부터 수족관에 있는 금붕어만 봐도 몸을 움츠리게 되고 무서워했으며, 생선시장에 가면 엄마옆에 떨어지지 않도록 엄마 팔을 잡고 눈을 계속 감으면서 걸어 다녔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면 별로 관심 없다가도 ‘○○○의 동생, 공부 잘하는 ◇◇네 가족’ 이라는 말만 들으면 그들의 눈에는 어느새 나와 고정관념이 가득했다.

‘언니들이 잘하니 동생도 잘하겠지’

 

나는 그들의 기준에 충족하지 못해 늘 괴로웠다. 계속 숨이 막혔다. 처음보는 사람하고 친해지고 싶어도 그들은 이미 색안경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애인지 알려줄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애인지 알면 떠나갈까봐 나는 그게 늘 두려웠다.

   

때때로 부모님께서 나와 언니들의 차이를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 언니들에게 했던 것처럼 매질을 해도 나한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언니들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해져서 별 반항없이 지냈지만 나는 조금은 철이 들었던 때라 반항심만 불러 일으켰다.

 

괴로웠다. 정말로, 지독하게 괴로웠다. 색안경을 끼고 나에게 다가왔다가 떠나가는 사람들이나 뒤늦게서야 나를 매질하다가 그만둔 부모님들이나 싸울 때 마다 “공부도 못하는 년이”라고 내뱉은 언니들이나 모두의 얼굴이 물고기로 보였다. 어렸을 때 받은 상처다 보니 정말로 오래갔다. 상처라는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냄새만 희미해질 뿐 존재 그 자체는 사라지지 않아서 한 동안 나를 괴롭게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날까봐 그저 묵묵히 공부했다. 중학생이었을땐 비교당하기 싫어서 제대로 자지 않은 적이 많았다. 잠을 잘 때 1시간마다 계속 잠에서 깨어났고 시험기간때는 많이 자봤자 3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3시간을 조금이라도 넘게 자면 그날은 하루종일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성적 또한 내 기대에 못미치면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다 집어 던졌다. 아무리 애를써도 ‘패배자’라는 인식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나에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말은 허공에서 희석되어 사라질 뿐 정작 나의 마음에 닿지 않았다. 간혹 밥상위에 올라오는 생선을 볼 때마다 상추나 야채 같은 걸로 늘 물고기의 눈을 가렸다. 수족관 옆을 지나갈땐 절대로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하지만 지나갈 때마다 수족관 안에서 비웃음이 새어나와 나의 발목을 잡아 수족관 안으로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물고기들이 나를 끌어다 물에 빠뜨리고 질식시키게 하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 지금은 나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소중한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났기에, 나는 정말로 희미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상처라는 것이 공유하면 조금은 나아진 다는 것을, 지금은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소중한 친구와 말을 하면서 정해진 틀 밖으로 나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왜 항상 비교 당했는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왜 스스로 다 막았는지, 왜 스스로 자신을 깎아 내렸는지 나는 그저 침묵속에만 묻어버렸던 것이다.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위로받고,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긴 후로 나의 공포증은 차츰 사라지고 있다. 여전히 얼굴이 큰 물고기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작은 물고기는 피하지 않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나아졌다.

언젠가, 입시가 끝나고 해방감을 느낄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처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날 또한 올 것이다. 그때쯤 물고기 공포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순간 나의 눈에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스쳐지나갔다.

 

침묵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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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것에서 공포를 느끼다... 언제쯤 우리나라는 다양한 잣대를 통해 평가받을 수 있을까.

    • 2010-11-27 19:25:0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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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그래서 침묵의 소리였구나.

    • 2010-11-26 21:34:4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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