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죽었다
- 작성자 아크★
- 작성일 200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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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355
굴뚝 위로 새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중간세계에서의 백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생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떠나가려는 맑은 영혼의 모습이 과연 저런 것일까? 푸른 잔디 사이로 비취는 회색건물에서는 연신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구슬픈 곡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나도 그 속에 섞여 눈물을 훔치며 관을 따라 회색 건물로 향했다.
언니가 죽었다, 그것도 나랑 꼭 빼닮은 쌍둥이 언니가. 아무도 생각지 못한 교통사고였다.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하게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틀 전, 새벽녘. 통금시간을 훌쩍 넘긴 언니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게 전화했다. 아빠 화 많이 나셨어. 언니의 물음에 아니, 아빠 오늘 회사에서 일이 늦으셔서 좀 늦는데 지금 오신다니까 빨리 뛰어 들어와. 하고 보챘다. 그리고 단말기를 내려놓으려는 찰나에 뭔가 좋지 못한 기분이 들어 다시 단말기를 들었다.
“언니!”
그것이 마지막으로 언니를 불러본 것이었다. 집에서 겨우 몇 미터 남겨놓고 횡단보도의 빨간불을 무시한 채 무작정 뛰던 언니는 결국 뺑소니차에 치여 숨지고 말았다. 죄책감에 숨이 막혀왔다. 마치 내가 언니를 죽인 것처럼. 그때 내가 빨리 뛰라며 보채지만 않았어도 언니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검게 그을린 사각의 유리창 너머로 뜨거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 안에는 지금 언니가 육신을 불태우고 있다. 불길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의사의 불찰로 언니가 죽지 않았었다면, 이틀간 잠시 기절한 것뿐이었다면…….
산 채로 불속에 몸을 태우고 있는 것이라면 언니는 과연 제일 먼저 누구를 원망하고 있을까, 혹시나 내가 아닐까. 처음 엄마의 자궁 안에서 언니와 함께 보내었던 10개월을 상상해본다. 우리는 쌍둥이라는 기막힌 인연으로 처음 만나 어찌 보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함께 자라났다. 그동안 언니와 나는 무슨 대화를 했을까.
엄마의 양수는 너무나도 따뜻하고 포근해, 넌 어때. 너도 기분 좋지?
그렇게 물으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난 언제나 언니의 의견에 오케이 였으니까. 불구덩이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언니가 너랑 나랑은 쌍둥이이지만, 나는 너보다 똑똑하고 엄마아빠 말도 잘 들으니까 나대신 네가 여기 들어오는 게 좋겠다. 라고 물으면 난 그 때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몇 시간동안 언니를 괴롭히던 불길이 드디어 사그라졌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그와 동시에 뜨거운 화기가 점령군처럼 건물 안을 꽉 채웠다. 발끝부터 머리 위까지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이 언니가 내가 복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불씨는 너무나도 약해 내게 언니만큼의 고통은 주지 못하였다.
마스크를 한 두 명의 노인이 아궁이에서 언니가 누워있던 철판의 침대를 꺼내었다. 언니의 시신이 누워있던 자리에는 더 이상 사람의 형체가 없었고 대신 뿌연 색의 뼛가루 그 자리를 대신해주고 있었다. 두 노인은 쥐고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흩어져있던 언니의 뼛가루를 한 곳으로 모아다가 작은 나무상자에 그 것을 조심히 담아 곡을 울리던 스님에게 건넸다. 엄마아빠, 그리고 언니의 죽음에 애통해하던 이들이 다시 한 번 눈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영정을 조심스럽게 쥐고 있던 남동생이 느린 걸음으로 회색건물을 빠져나오고 그 뒤를 스님이, 그리고 그 뒤로 부모님과 나, 친척 분들과 지인들 순으로 차례대로 빠져나왔다.
주위에서는 계속해서 슬피 우는 곡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몰래 지갑에서 옛날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꺼내보았다. 영미, 미혜, 지은, 그리고 언니가 이가 보이도록 활짝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다. 하지만 그 사진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나는 언니랑 쌍둥이니까 언니만 찍혀있어도 상관없잖아. 라며 단체사진을 찍을 때면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카메라를 쥐어 주었다. 그랬다, 이 사진에는 내가 없다. 이 사진뿐만 아니라 다른 사진에서도 내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쌍둥이 동생이라는 이유로 나는 지금껏 차별받고 있었던 것이다. 쌍둥이라고 해서 완전히 빼다 닮은 것도 아닌데 그들은 나를 쏙 빼놓고 자기네들끼리만 사진을 찍어 됐다. 이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이제 언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괜히 한쪽 입 꼬리가 씩하고 올라간다. 나는 그 것을 감추기 위해 얼른 오른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리고 슬픈 척 엉엉거리며 사진을 다시 지갑 속에 쑤셔 넣었다.
언니, 혹여나 나 때문에 죽었다 생각하면 미안해. 하지만 난 산 사람이고, 이제 언니는 죽은 사람이야. 언니가 지금껏 내 쌍둥이 언니라는 이유만으로 누렸던 행복, 이제 내가 가져가겠어. 사진 속의 언니는 더 이상 언니가 아니야. 사진 속에는 오직 민주가 아닌 민지만이 있을 뿐이야.
또다시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숨기며, 나는 곡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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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니 못된 소설이군요-_-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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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아? 와! 잘읽었습니다.
일부러 섬뜩하라고 쓴 문장입니다^^;;
...이런말 해도 될런지... 요즘 본 몇몇 영화의 영향인지 입꼬리가 씩하고 올라가는 부분이 왠지 섬뜩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