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속으로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07-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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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 의하면 천사가 타락하여 악마가 되었다고 한다.
햇살이 커튼처럼 옅게 펼쳐져 하늘에서 아른거렸다. 바람도 쾌청한 것이, 어디론가 떠나기엔 좋은 날이었다. 소년은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섰다. 거기서 집을 둘러본다. 어제와 바뀐 것은 없었다. 기억 안에서 집 안의 풍경이 바뀐 적은 거의 없었다.
거실 벽에 매달린 십자가에서 예수의 조각상이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엇다. 소년은 그의 눈을 응시했다. 색바랜 느낌이났다. 소년은 베란다로 나가 햇빛을 올려다보았다. 얼핏 저 멀리 교회도 보였다. 십자가 위에서 무엇인가가 앉아서 킬킬대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천사는 세상을 둘러보다가 추락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타락했다고 했다.
고열이 났다. 눈이 뜨거워졌고 머리는 속에서 종이라도 울리는것처럼 아파왔다. 심장은 빨리 뛰었고, 그 때문에 산소를 다 써버린 탓인지 숨 쉬기가 곤란했다. 반에 있던 아이들은 소년 근처로 몰려들었다. 5분 전까지만 해도 괜찮던 아이가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중환자처럼 아파하니, 그들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몰려들었다.
반장은 소년을 보다가 교무실로 달려갔다.
"왜 왜이래?"
"많이 아픈 것 같은데, 괜찮은 건가?"
아이들은 웅성거렸다.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주변의 소리는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뇌가 뜨거운 물에 넣어진 채 마구잡이로 휘저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식은땀이 흥건히 나 소년의 옷을 적셨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져갔다.
"모두 비켜!!"
그리고 동시에 웅성거림이 멎기 시작했다. 소년의 담임이 반장과 함께 교실로 들어섰다.
"얘 왜이래?"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이래서‥‥."
담임은 소년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뜨거웠다. 족히 40도는 될 듯 했다. 그는 인상을 쓰면서 소년을 들쳐 업었다.
"애들 조용히 시키고, 다음 선생님 들어오시면 병원 갔다고 말해놓고."
담임은 곧장 차를 타고 인근의 종합병원으로 갔다.
소년은 일단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리고 해열제와 수면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담임은 소년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사실을 알렸고, 소년의 어머니는 한 시간 가량 후에 병원에 도착했다.
그 사이 의사가 몇 번 와서 소년의 상태를 체크하고 갔다. 소년의은 열이 많이 내린 상태였다. 어머니가 도착하자 담임은 소년의 상태를 체크하던 의사에게로 갔다.
"보호자 되십니까?"
의사는 보고 있던 차트를 덮으면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네. 저희 아들이 어디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분히 감정적이었다.
"정밀한 검사를 해 보아야 알겠지만 크게 이상 있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 같습니다만, 학생이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문제가 있었습니까?"
담임과 어머니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시간의 시선이 교환된 후, 담임이 입을 열었다.
"딱히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는 녀석이었습니다. 학교생활도 무난하게 잘했구요. 집에서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어요. 가정에 부호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 합니다. 학생이 혼자 앓고 있는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어찌되었든 당분간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큰 문제는 없는 건가요?"
어머니는 걱정을 담아 물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자세한 건 정밀 검사를 받아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상도 없고 감기 같은 것에 걸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저런 증상을 보이는 것은 대부분이 스트레스성입니다."
의사는 차트를 톡톡 두드렸다.
"그래도 아까 전에 상당히 고열에 시달렸으니, 혹시 모르니까 정밀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미리 예약을‥‥."
"그러시겠다면 제가 알아서 해놓겠습니다. 나중에 수납하실 때에 예약증도 같이 받아 가시면 될 겁니다. 그럼 조금 있다가 아들 깨워서 가보십시오."
"감사합니다."
어머니와 담임은 인사를 하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머니는 담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별 일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네, 그럼 바쁘실텐데 먼저 가보세요. 아이는 제가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담임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출구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어머니는 소년이 있는 응급실로 걸음을 옮겼다.
소년은 저녁쯤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어머니가 일찍이 깨웠어도 상관 없었지만, 그녀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어‥‥? 엄마."
소년은 깨어나자마자 어머니가 곁에 있는 것에 꽤나 놀란 기색이었다.
"일어났니?"
"어떻게?"
어머니는 대답대신 한숨을 쉬었다. 소년은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정리해보았다.
'난 그때 쓰러졌고, 그래서 병원에 와 있고, 어머니도 오신 건가.'
"죄송해요."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무사하니 다행이다. 그럼 나가자."
어머니는 수납을 한 뒤, 소년을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
"배고프지? 뭐 좀 먹고 갈까?"
"그러죠."
어머니와 소년은 근처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갈비탕 두 그릇을 시켰다.
"요새 무슨 일 있니? 의사 선생님 말로는 스트레스성이라던데."
"글쎄요. 그다지‥‥."
소년은 말을 흐렸다.
"봐라. 교회 잘 안나오니까 이렇게 벌 받잖아. 교회 부지런히 좀 다녀."
"네."
소년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에 어지러움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갈비탕이 나오자 소년은 묵묵히 먹기만 했다. 간간히 어머니가 학교 생활에 대해서 물어왔지만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갈비탕을 다 먹고 소년과 어머니는 교회로 갔다. 어머니는 단 앞쪽으로 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소년은 뒤에 서서 어머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밤이 가라앉은 창문 너머로 네온 빛이 흐릿하게 교회 안을 비추고 있었다.
깊게 가라앉은 난파선 같다, 고 소년은 생각했다. 녹슬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듯 말듯 했다. 소년은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는, 분명 리모델링한지 6개월도 채 안된 신축 교회다.
"가자."
어머니가 기도를 끝내고 소년에게로 왔다. 둘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약 보름 후, 소년은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고 스트레스성 질환을 앓고 있다고 판명받았다. 그리고 의사의 권고와 자신의 바람에 따라, 소년은 당분간 학교를 쉬기로 했다.
그 후, 악마는 세상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청소 시간이었다. 소년은 걸레를 들고 묵묵히 교무실의 책상을 닦았다.
"K말인데 ‥‥."
문득 그런 소리가 소년의 귀에 들렸다. 소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담임이 다른 선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년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척하며 그 근처로 다가갔다.
"철이 없는건지 자꾸 문제만 일으키고 말썽이네요."
"그러게요. 그런 문제인 학생도 정말 드문데."
대략 이런 얘기가 오갔다. 소년은 걸레를 빨고 보관함에 넣은 뒤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은 한창 시끄러웠다. K가 자기네 무리들과 어울려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무언가를 계획한듯 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소년은 그쪽을 힐끔 바라보면서 자기자리로 갔다.
"거기 xx김밥집이죠?"
K의 웃음이 짙어졌다. 소년에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거기 김밥 있어요? 그럼 그거 어떻게 만들어요? 혹시 당신의 xx?"
음란한 말이 K의 입에서 나왔다. K의 패거리들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전화는 상대방쪽에서 끊은 듯 K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같이 웃었다. 몇몇만이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소년은 교실을 둘러보았다. 조각 하나를 잘못 끼워넣은 퍼즐같은 느낌이었다. 어딘가가 이상하다. 그래도 완성된 퍼즐은 그 하나로 온전하다. 소년음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자신도 퍼즐의 한 조각이었다.
그래서 세상에 다른 천사가 내려와 악마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크고 굳건한 성전을 만들었다.
일요일이었다. 소년은 마리오네트처럼 교회로 걸음을 옮겼다. 교회에 도착하니 그저께 본 K가 자신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회의 집사들은 그런 K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 곁으로 다가왔다. 소년은 시계를 바라봤다. 아직 예배 시작 5분전이었다.
"늦은 건 아니잖아요."
"저 애들처럼 일찍 오면 좋잖아."
어머니는 K들을 가리켰다. 소년은 인상을 썼다. 나도 철이 없는 건가. 소년은 잠시 생각했다.
잠시 후 예배가 시작되었다. 모두 찬송을 부르다가 성가대에서 특가를 부르고, 그 다음에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만이 이 세상에서 저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아멘."
소년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목사의 설교도 아멘도 소년의 귓속엔 들려오지 않았다. 소년은 천장을 돌려다보았다. 왠지 교회 십자가 위에 천사가 앉아 낄낄대고 있을 것 같았다.
"예수님은 그의 고결한 피로써 저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저희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세상에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아멘."
모두가 아멘이라고 했다. 어머니도 아멘이라고 했고 K도 아멘이라고 했다. 설교가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찬송을 불렀다.
나를 구하러 오신 주를 찬양하나이다‥‥‥‥주의 이름 높이리─.
이에 악마는 감옥을 만들었다고 한다.
예배가 끝나고 구역별로 모임이 있었다. 소년 네 구역은 지난번에 탄 상금으로 횟집을 가기로 했다. 회집은 멀리 있는지라 차를 타고 가는데, 사고가 발생했다. 급커브 길에서 마찰 사고가 생긴 것이었다.
다행이 큰 사고는 아니어서 훼손된 것은 없었다. 그래도 모두는 깜짝 놀랐다. 상대 운전자가 다가오자 운전을 하던 하집사는 창을 내리고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운전 똑바로 못합니까!!"
일순 상대 운전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아니, 뭘 잘했다고 큰 소립니까?"
"이사람 보소?"
분위기가 급속도로 험악해졌다.
"초면에 왜들 이러세요? 자자, 서로한테 잘못이 있으니 사과하고 넘어갑시다."
결국 조수석에 있던 다른 집사가 중개를 시도했고, 둘은 잠깐 동안 씩씩거리더니 형식적으로 사과하고 자리를 떴다.
"그 사람 참‥‥."
아직도 화가 덜 풀렸는지 하집사는 운전중에 계속 투덜거렸다.
"자기가 잘못한 것 아닙니까? 급커브길에서."
"아이고마, 그냥 우리가 이해하고 넘어갑시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집사를 도닥였다.
횟집에 도착해 회를 시키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메추리알을 까먹으며 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집사에게 전화가 왔다.
"누구세요?"
─ 하xx씨죠? 경찰입니다.
하집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 가게 앞에 주인 동의 없이 주차하셨다고 해서요.
하집사는 잠깐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 제가 자리에 없어서 그런데 주인 할머니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 네. 수고하십시오.
전화는 끝이 났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 아까 주차해놓은 거 때문에 가게 주인이 뭐라 그랬다네요."
하집사는 가볍게 웃었다. 어른들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회가 나올때까지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소년의 귀에 이런 소리가 들렸다.
"그 할머니도 참‥‥."
돌아보니 자신의 어머니였다.
"맞아요. 우리들 같았으면 그냥 넘어 갔을텐데."
소년의 어머니와 여집사들은 무엇이 좋은지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소년은 밖으로 나갔다. 안에 계속 있자니 가슴 한 켠이 답답했다. 소년은 주차장과 양식장 사이를 오가면서 바람을 쐬었다. 차가운 바람은 그 갑갑함을 날려주는 듯 했다. 양식장에서는 물고기의 비린내와 물내음이 밀려왔다.
소년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물고기가 파닥거리는 소리가 입김처럼 하늘로 올라갔다.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가 모래알을 뿌려놓은 듯이 많은 별들이 밤하늘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하아─ 하고 입김을 불었다. 심장이 천천히 뛰는 소리가 귀 옆에서 들리는 듯 했다.
파닥거리는 생동감이, 흔들거리는 시원함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소년은 한참이나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천사는 신의 가르침을 전했다. 악마는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머리에 미열이 돌았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은 썩은 사과처럼 흐물거렸다. 짓눌러져 검붉은 그의 피처럼 석양빛은 하늘에 끈적하게 달라 붙었다. 꼭 심장같았다. 소년은 자신의 심장을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마지못해 박동하고 있었다.
소년은 석양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두 박동이 동조하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소년의 피가 몸 밖으로 나와 석양빛으로 흘러들어 하늘에서 산란했다. 그 피는 끈적하다. 거기에 순결성은 없어 보였다.
타락천사의 그것 같았다. 언덕 위의 폐교회에 석양이 걸려 반쯤 남은 십자가를 빨갛게 물들였다. 십자가는 예수가 못박혀 죽은 곳이라 했다. 그의 피가 흘러내린 곳이라 했다. 지금 그의 순결한 피는 어디 간 것일까.
세월에 풍화된 십자가처럼 사라진 것일까. 그럼 그의 피는 세상에 묻혀버릴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인가. 소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서자 어머니가 서류를 들고 인상을 찌푸리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몸은 좀 괜찮니?"
어머니는 소년이 들어오자 말을 건넸다.
"조금요. 뭐에요 그건?"
"알 것 없다. 밥이나 먹자."
어머니는 서류를 봉투에 담고 부엌으로 갔다. 소년은 봉투를 슬쩍 열어 보았다. 봉투에는 소송서류가 담겨 있었다. 일주일 전 즈음에 이웃 강모씨와 어머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
'그때는 큰 일이 아니시라더니."
소년은 한숨을 쉬었다. 마찰이 있었던 뒤로 화해의 기색이 없더니, 어머니는 가볍게 넘어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TV를 틀고는, 진작 친구는 가려서 사귀었어야지, 하고 말한다. TV에서는 사건 사고들이 보도되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또래 여학생을 성폭행 했다고, 어디 사는 누구가 강도짓을 하다가 검거되었다고 했다. 또 한 대학생이 애인 때문에 살인을 저릴렀다고 했다.
쯧쯧, 하고 어머니는 혀끝을 찼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살아가기도 참 무섭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미로 무서워지긴 엄청 무서워졌다고 생각했다.
"들어가서 쉴게요."
소년은 밥을 다 먹고는 자신의 방으로 갔다.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갈등했다.
어린아이가 눈믈을 흘리고 있었다. 밤이 깊어 교회는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어린아이는 단 앞에 쓰러진 듯이 앉아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무로 조각된 예수상이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그 모습이다. 어린아이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이유없이 눈물이 났다. 가슴 속에서 따뜻한 것이 피어오르며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아이는 그 날밤을 교회에서 샜다.
소년은 눈을 떴다. 오른쪽 다리가 쓰라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하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다. 소년이 학교를 쉰 지도 근 한달이 다 되어갔다. 그동안 소년은 하루종일 방 안에만 있어도 보았고 집을 나가 타 지역에서 며칠동안 지내기도 하였다. 시내를 하루종일 걸어 보기도 했고, 교회에 하루종일 있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을 고열로 이끈 스트레스는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포근함은 어디로 갔을까.
신실한 종교인이 무신론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같진 않았다. 무신론자도 신실한 종교인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소년은 바지를 걷어 올렸다. 다리에 아직 지워지지 않은 상처가 있었다. 5년 전, 어머니가 낸 상처였다. 소년이 교회를 자꾸 배먹어서 결국 회초리를 들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소년에게 왜 그렇게 교회를 빠지냐고 다그쳤다. 지금 누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아냐고 했다. 어머니는 진정으로 화가 나 있었다. 그 모습에 소년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교회가 뭐냐고 따질 수 없었다. 열심히 종교를 추종하던 그들이, 왜 타락했다고 말하는 세상에서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생활하는 건지 물을 수 없었다. 남들과 같이 욕을 하고 신경질을 내는 것의 어디가 주님의 사랑인지 물을 수 없었다. 소년은 묵묵히 맞기만 했다. 그날부터 소년은 기계적으로 교회를 나갔다.
어린시절 심장 맡에서 맴돌던 두근거림은 서서히 죽어갔다. 자신의 스트레스가 교회의 괴리성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절대 납득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교회와 세상은 평행선이 아니라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소년은, 결국 악마도 원래는 천사가 아니었냐고, 천사도 잠정적인 악마가 아니냐고 따졌다.
소년은 그리웠다. 심장 맡에서 맴돌던, 그 따스함이. 소년은 손차양을 하고 하늘을 둘러보았다. 아직 세상 어딘가에는 악마도, 천사도 손 대지 못할 곳이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는 햇빛이 부셔져서 빛나게 반짝거리고 있을 거라고, 소년은 막연히 생각했다.
소년은 눈이 부시는 햇빛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햇빛이 눈을 가려 길을 분간할 수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소년은 그렇게 햇빛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end.
대산 내려고 썼던 작품이나 별로라서 글틴에 내고 새로운 걸 구상 중. 막연히 소년이라고 지칭한 것을 직접적인 명사로 바꿀 까 고민 중. 리플들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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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4-09-19
안녕하세요. 문학광장 문장지기입니다. 2024년 5월 월 장원 선정부터는 본 게시판이 아닌, [공지사항] 게시판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쓰면서 뒹글'은 온전히 글틴 여러분들의 글 게재만을 위한 게시판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월 장원 선정, 글틴 운영 규정, 깜짝 이벤트, 기타 안내사항 등은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할 예정이오니 앞으로는 [공지사항] 게시판도 자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공지사항] : 목록 | 공지사항 | 쓰면서 뒹글 : 글틴 (munjang.or.kr)
- 관리자
- 2024-06-05
안녕하세요, 김병운입니다. 소설 게시판 4월의 월 장원 발표하겠습니다. 발표가 많이 늦어졌는데 기다려주신 글티너분들에게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봅니다. 이달의 월 장원 후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게재 순) 말하는 풍선(이운) 더운 마을에 사는 추운 소년(위다윗) 변신(작은토마토) 그리고 장원은 없습니다. 후보작들은 모두 치열한 고민의 시간이 새겨진 글이었는데요. 다만 작법의 측면에서 각기 다른 아쉬움을 안고 있었고, 이를 상쇄할 만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어서 결국 지난 달에 이어 또 한 번 아쉬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운님의 은 감춰지지 않는 빈곤을 향한 차별적 시선을 폭로하는 글이었는데요. 누군가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그 누군가가 되어보는 환상적 전개가 흥미롭게 다가왔으나, 감정적 비약을 통해 손쉽게 화해와 결론에 이르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위다윗 님의 은 남들과는 다른 성질을 비밀처럼 안고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였습니다. 매력적인 세계관 구축과 선명한 메시지 운용이 돋보였으나, 캐릭터와 에피소드 간의 연결이 다소 성긴 점, 그리고 교훈을 위해 죽음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점 등이 쉬웠습니다. 작은토마토님의 은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밟는 캐릭터를 벌레로 형상화하는 시도가 야심차게 다가온 글이었습니다. 다음을 궁금하게 하는 장면 연출과 밀도 높은 문장이 특히 좋았으나, 카프카의 에 대한 의존이 높고 유사한 에피소드가 반복적으로 나열되며, 결말에 이르러 극단성이 개연성을 압도해 여러 의문을 안기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승우 선생님의 (마음산책, 2019)를 추천도서로 덧붙여봅니다. 분량이 길지 않은 소설 작법서이니 시간이 되실 때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도 너무 놀라지 마시길.(저는 그랬답니다…) 감사합니다.
- 관리자
- 2024-05-24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http://blog.munjang.or.kr/document/44236 글평 완성되었습니다. 참고하시길.
직접명사 DJ? ㅋㅋㅋㅋㅋ 일단 코설리
소설이 아니라서 잘모르겟어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