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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발소

  • 작성자 상산
  • 작성일 2009-11-21
  • 조회수 210

'음... 어디보자. 304호라고 했나?'

어제 밤, 내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칠득아. 아버지 입원했다. 한번 오거라."

엄마의 전화였다. 아버지가 시내에 나갔다 오시면서 술에 취해 논두렁에서 굴렸다고 한다. 마침 직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느껴 편히 쉬고 싶었는데 고향집이나 갔다와야 겠다는 마음으로 오래만에 고향에 내려왔다. 우선 아버지를 보기위해 역에서 20정도 가량 버스를 타고 그 지역에선 크다고 할수있는  병원에 갔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버지가 입원하신 방에 들어가 보니 흰 침대위에서 아버지가 야구를 보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왔는지도 모른체 계속 tv를 보고 계신다.

"아버지! ,저 왔다고요."

내가 꽤나 큰 목소리로 말하자 아버지는 그때 서야 나를 쳐다 보았다.

"시끄러워 이놈아, 아직 귀 안 떨어졌어. 어라, 이거 칠득이 아냐? 근데 니가 어쩐일로 왔다냐?  불러도 안오던 놈이."

오래만에 보는 아들에게 왜 왔냐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아버지 다쳤다면서, 걱정돼서 왔지."

"걱정은 깨뿔, 추석때도 안오던 놈이. 마침 잘왔다. 니 엄마 잠시 나갔는데  사과 좀 깍아봐라."

라며 허허허 웃고 계신다.

아버지는 옛날 그대로 였다. 옛날부터 털털하신 성격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계셨다. 아버지는 동네 이발사로 시골 마을의 유일한 이발소 주인이 였다. 워낙 성격이 너그러워 누가봐도 시골 인심좋은 아저씨로 보게될것이다.

잠시후 엄마가 오자 나를 부른 이유를 물었다.

"나 왜 불렀대요?  맛있는거 생기면 누나와 나를 버리고 드시던 분들이."

엄마가 내 등짝을 후려 친다.

"이 놈이, 환자 앞에서 못할말이 없어."

"아따, 애 잡겠네. 칠득아, 니 서울에서 가위질하지? "

맞다, 나는 서울에서 고용직 미용사 였다. 어릴 적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는지, 아님 천성인지 모르겠지만 3대째 내려오는 이발사 가문에 홀로 미용사의 길을 걷던 나였다.

"아시면서."

무슨 말을 할려는거지?

" 니 전에 있던 미용실에서 짤렸다며? "

"짜,짤리기는 개뿔, 내가 그만 둔거야!"

아버지가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인가, 누나인가?  이거 귀찮됬네. 아버지가 아셨다니 몇 년동안 날 갖고 놀것이 틀림없다.

그때 아버지가 조심스레말한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여기 있을때 까지만 니가 이발소 좀 맡아라."

"에? 그게 무슨 말이래. 내가 왜요?"

나는 당황 스러웠다. 나도 머리에 가위질하는 같은 입장으로서 한번도 아버지 이발소에서 일한적이 없기 떄문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조금 잘나갔던 나인데 시골 이발소 라니. 어처구니없던 말이였다.

"싫어요. 아버지 입원 한 동안만 문 닫으면 되잖아요."

아버지가 옆에인던 목발로 내 정강이를 내려친다.

"왜 때려요!"

"이게 아버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이발소 문닫으면 마을사람 머리는 누가 자르라고. 영원히 문닫는거 보고 싶어? 나는 니가 이발소 맡은거로 결심 했으니 그렇게 알아. 안하면 서울집 보증금 빼버릴꺼. 알았어?"

칫, 참 치사해서 원...

다음날 오래만에 아버지 이발소 앞에 서있다.

[칠득이 이발소]

참 간판 이름 낯 간지럽네. 어렸을때도 그랬지만 지금봐도 부끄러운 간판 이름이다.

"간판 좀 바꾸라닌깐..."

셔터를 열고 들어가니 옛날 그대로 였다. 커다란 거울에 낡은 의자, 여기저기 터진 소파, 리모콘식이 아닌 손으로 돌리는 tv.  오랜 세월동안 바뀐 것이 없다.

대충 청소를 하고나니 이발소가 그리 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서울 고급 미용실에서는 청결이 우선이였지만 이 곳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것 같다. 여기 저기 짫게 잘린 머리카락이 그대로 남아있다. 대충 청소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넘어 오후 한시가 되었다.

"박씨! 계신가?"

오늘 첫 손님이 오신다. 슈퍼 아저씨다. 들어오던 아저씨가 나를 쳐다본다.

"이거 칠득이 아냐? 오래만이다. 아버지는?"

"아버지 지금 병원에 계셔서 제가 지금 잠시 맡았습니다. 머리 자르시게요?"

"그래, 머리가 영 덥수룩해서, 짫게 잘라줘."

아저씨가 의자앞에 털썩 앉았다. 흰 머리 투성이다. 어릴 때 만 해도 숱많고 검은머리를 가지셨던 아저씨는 이제 백발에 머리도 듬성듬성 빠져 계셨다.

"어떻게 잘라 줄까요? 옆 머리를 다듬어서 영화배우 K스타일로 해드릴까요? - K는 중년 연예인이다.-  아님 가수 C스타일로 해드릴까요?"

보자기를 아저씨의 목에 두르며 말했다.

"뭐? K? C? TV에서 나온 그 사람들 말이냐? 뭐하러 그 사람처럼 머리를 깍아? 그냥 짫게해줘"

아저씨는 어떤 스타일을 정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짫게 깍아 달란다. 어떻게 하라는건지...

서울에 있을때도 젊을 수록 깍기가 수월했다. 나이 먹은 아저씨들은 대충 말하니 어떻게할 방도가 없었다.

"뭐해? 안 깍고."

가위만 들고 멀둥멀둥 쳐다보기만 하자 아저씨가 답답했는지 말했다.

"어떻게 깍아달라고 해야 자르죠. 그냥 짫게 라고하면 제가 어떻게 알아 들어요?"

"아이구,답답해라. 그냥 갈란다. 아버지는 잘 자르더 구만. 서울에서 가위질 한다는 놈이 그걸 못깍아. 나 간다. 칠득아. 잘있어라."

내 이발소 첫 손님인 슈퍼 아저씨가 그렇게 나갔다.

'쳇, 아버지는 어떻게 했길래, 말이 안 통해서 어떻게 하겠어.'

그 후 아는 얼굴 몇몇이 다녀갔다. 내가 완전 이발소를 물려 받았는지 알고 고향 사람들이 내 얼굴 한번 보러 왔던것 이였다. 이장님,마을 토박이인 정씨 아저씨, 귀농한 박씨 아저씨 등... 모두들 늙었다. 이장님 경우엔 예전에도 나이가 많으셨지만 지금은 완전 할아버지가 됬다. 모두들 한번 머리 깍아 보라고 했지만 슈퍼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너무 성의 없게 말해 손 쓰지도 못한체 밖으로 나가셨다.

결국 첫 날엔 시골에서 나이가 젊은 층에 속하던 42세 이씨 아저씨만 잘라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굉장히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띈다. 그 사람은 저 멀리부터 알아볼수 있었다. 약간은 지저분한 머리를 가졌던 청년은 이발소 문을 연다.

"혹시, 여기가 서울에서 최고로 뽑히던 미용사가 왔다는 이발소 인가요?"

난 웃으며 말했다.

"서울에서 최고가 아니고요, 세계에서 최고랍니다."

  "당신이 그렇게 잘났습니까?"

그 청년또한 씩 웃으며 말한다.

"딱 봐도 모르겠습니까?"

그러자 그 청년이 나에게로 다가와 해드락을 건다.

" 이 건방진 놈같으니, 입 바른 소리 해주닌깐 기어올르네."

이 녀석의 이름은 정필이로 학창시절 연필이란 별명으로 내 고등학교 시절을 같이보낸 친구이다.

학생때 땡땡이도, 외박도 같이한 사이였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 올라간후 부터 만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 오랫동안 못 본 상태였다.

"얌마, 너 어떻게 지내냐?"

"나야 뭐, 아버지 양계장에서 일하지, 너희 아버지 괜찮으시대냐? 한번 뵈러 갔다와야 하는데."

"아버지는 알다시피 건강하셔서 다음주 쯤 퇴원 할꺼야. 그냥 전화나 드려."

"그럼 그렇게하고. 이따 저녘이나 같이 먹으러 갈까?"

말로는 저녁 먹으러 가자는 거지, 손 모양을 보면 한잔 하러 가자는 몸짓을 보였다.

"여기서 좀 놀다가. 나 혼자 여기 있으려니 심심하다."

우린 이발소에서 서로간의 예기를 주고 받았다. 다른 동창 예기, 동네가 바뀐 예기, 자신이 좋아하는 박씨 아저씨네 딸 예기등 밀렸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창 예기하던중 어떤 아줌마가 찾아왔다. '이발소에 왠 여자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잠시후 귀찮은 일 인걸 알고 짜증이 났다. 그 여자는 40대로 보이는 얼굴로 교회 수녀복을 입고 있었다.

"누구시죠?"

내가 물었다.

"주인 아저씨가 바꼇다는 말이 참 말이네. 아들 이라고 하던데 어쩜 닮지도 않았을까. 키가 훨칠 하네."

수녀복을 입은 아줌마는 내 손을 꼭 쥐며 말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뿌리쳤다.

"저기 무슨 일이시죠? 저 교회 안 믿으니 다니라고는 하지 마세요."

수녀는 잠깐 당황 한것처럼 보였지만 금새 뭔가 생각 난듯 말한다.

"그런거 아니에요. 주인 아저씨가  바뀌어서 그런건데 일요일에 누가 오시나요?"

"일요일이 뭔 날이래요? 가긴 어딜가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일요일? 그냥 주말 아닌가.

"교회요. 여기 사장님이 매주 일요일 마다 교회에서 봉사 하셨거든요. 돈 없는 노인들, 교회 고아들 에게 무료 이발을 해주셨는데 애기 못 들었나요?"

아버지도 참. 그게 뭐가 돈이 된다고 나서기는... 봉사는 여유있는 사람들이 하는거지 아버지처럼 늙고 돈도 없는 사람이 한다니 헛 웃음만 나왔다.

"죄송한데, 아버지는 지금 병원에 계신데 못 갈꺼 같네요."

"그럼 젊은 사장님께서는..."

수녀님의 안색이 조금씩 굳어간다. 내가 거절 하려는 걸 알아차린 것 같다.

"저도 그 날 바빠가지고 못 갈꺼 같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귀찮게 부탁 할까봐 얼른 이발소 문을 열어 거의 밀다는 싶이 배웅을 해주었다. 어떨줄 모르는 수녀님은 느린 걸음으로 걸어갔다. 나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정필이는 아닌가 싶다.

"니 봉사 안할려고? 왜 안하는데? "

약간 분위기가 않좋다.

"뭐 했봤자 나한테 뭔가 돌아오는것도 아니고 노인네들 하고 어린애들 머리깍기 얼마나 힘든줄 아냐? 아버지도 참 마음만 넓어가지고 탈이야. 그 시간에 차라리 가게 청소나 하시지."

내 말을 듣자 정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발끈 하였다.

"얌마, 너 좀 바뀐 것 같다."

"내가 뭘?"

정필이가 표정이 굳어진다. 예전부터 뭔가 단단히 화날때 지었던 그 표정이다. 웬지 골치 아플꺼 같다.

정필이는 평사시 땐 잘 통하는 친구지만, 뭔가아니다 싶을땐 고집불통으로 바뀐다.

"너 옛날엔 버려진 강아지만 봐도 불쌍해 어쩔줄 몰랐잖아. 그렇게 착했던 니가 갑자기 왜 이렇냐?

잠시 가주면 안되?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는셈 치고."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데. 이젠 나도 나이 28살 이야.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움직일 나이가 아니라고.

세상에 불쌍한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 그런 사람들 도와주면 끝도 없는거 몰라? 대충 겉치레로 할바에는 안하는 편이 나아."

내 말을 듣자 정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잠시 조용한 정적이 흐른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살짝 짓누르는 정필이가 외투를 들고 나갈 채비를 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그럼 너한테 실망이다. 괜히 도시물 먹고 오더니 내 친구 칠득이가 달라진것 같다. 나 간다."

내가 반박할 시간을 주지 않은체 정필이가 가게를 나간다. 뭐가 문제인것 인가? 내가 틀린말을 했나? 아니다. 현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 이라면 나와 같을 것이다. 나 하나 챙길시간이 없는데 누굴 보살핀단 말인가?

그날 밤 나는 정필이의 행동 때문에 잠을 설친다. 벌서 창가 밖으로 달이 보이는데 전혀 졸립지 않다. 내가 여기로 와서 한것이 무엇인가? 이곳 사람들은 너무 구시대적 마인드를 가졌다. 동네 주민들도, 정필이도... 자신의 의사가 확고한 도시사람들과 다르게 너무 우유부단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못 하는것 같다. 세상에 눈을 뜬 내하고는 도저히 맞지 않은 곳이였다. 아무리 오래만에 온 고향 이라지만 이렇게 나와 다를 수가. 밤을 새면서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것. 그것이 결론이 였다.

다음날 가게로 가지 않았다. 때 마침 새로운 미용실에서 자리가 나서 오라는 전화가 아침에 왔다. 서울로 올라가기전 아버지에게 찾아갈 것이다. 이곳은 나와 다르다. 내가 있어야 할곳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나를 내세울수 있는 곳으로 떠날것 이라고 말할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뭐라고 하시겠지만 언제까지 아버지 말난 들을것 인가? 나도 내 마음대로 할수 있는 권리가 있다. 버스의 창밖을 보고 생각 하자 금방 도착하였다. 전화로 내가 병원에 들릴거라고 전화 했기에 엄마가 나와 있었다.

"칠득아. 가게는?"

엄마가 물어보자 진지하게 말했다.

" 그 것때문에 아버지하고 말할께 있어서 왔어. 아버지는?"

엄마가 신큰둥한 표정으로 병실을 쳐다보며 말한다.

"손님들이랑 예기 중이야. 아마 오래 거리껄? 손님은 손님이지만 아주 소중한 손님들 이거든"

손님들이 있다길래 기달렸다. 하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용한 복도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잘 느껴지지 않지만 30분 넘게 시간이 흐른것 같다. 나는 한시가 급했다. 점심때 까지 기차를 타야 제 시간때 서울에 도착해 면접을 볼것이다. 내 시간을 잡아 먹는 그 소중한 손님이 궁금해 졌다. 대체 누굴길래 이리 오래 예기를 하지? 이장님인가, 아님 먼 친척인가? 그 손님을 보고 싶어져 아버지가 계신 병실을 살딱 들였다 봤다.

두근 두근.

내 심장이 이렇게 뛰는것 인가. 병실을 들여보자 나는 가슴이 뛰었다. 내 눈으로 본 장면에 나는 눈을 깜밖이지도 않은체 계속 보았다. 아버지에게 왔다던 손님들... 어린 아이들... 어제 왔던 수녀님과 같이 있는 아이들 이였다. 그런 아이들 사이에 아이들처럼 웃으시는 아버지. 아버지가 웃자 같이 웃는 아이들. 아버지가 한 아이의 머리를 쓰담아주자 보이는 아버지의 손. 흉터와 상처로 흉측해진 손. 그런 손으로 쓰담아도 좋다고 웃는 아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행복이란 개념은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그 장면을 한동안 지켜 보았다.

"아버지가 다니시는 고아원 아이들이야. 아침에 단체로 왔더라. 귀엽지? 니 아버지도 못말린다 말야. 저 아이들이 얼마나 좋다고 떠든는지."

엄마가 내 옆으로  다가와 이야기 하였다. 나는 가만히 있을수 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움직여야 겠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할떄가 아니다.

"엄마 나 갈께"

엄마는 아버지를 보고 가라며 말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않고 병원을 나왔다.

나가는 길에 이장님과 슈퍼 아저씨와 마주쳤다. 아마 병문안을 왔나보다.

"칠득아. 어디 가냐?"

슈퍼 아저씨가 물었다.

대답하는 내 말속에는 거짓과 조금한 후회도 없었다.

" 가게 문 열러 갑니다. 아! 지금 아버지 할테 가는거죠? 근데 좀 오래 기달려야 하실 텐데요. 아주 귀여운 손님들이 와 있답니다. 그리고 아저씨, 좀 있다 가게로 오세요 머리 깍아 드릴께요."     

가게로 가는길은 평화로운 시골길이였다.

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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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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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09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어느 순간 몽롱하고 매우 피곤하게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흰 천장이고, 일정한 리듬으로  똑...똑 거리는 기계음 이였다. 난 눈을 뜰 뿐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였고 설사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몸이 굳어있어 움직이기 매우 불편하였다. 그때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회장님. 정신차렸습니까? 괜찮으세요?"   검은 정장에 금테안경을 쓴 한 비서였다. 나는 목을 쥐어 짜는듯한 목소리로 한 비서에게 말하였다.   "그래,한 비서. 여긴 어디지?"   그러자 그는 안경을 추켜세우며 말한다는 것이 내가 이틀 전 간부회의 때 쓰러졌다는 것과 지금 엄청난 피로가 쌓여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다는 것이다. 의사의 말로는 큰 이상은 없으나 몇 칠 동안은 일선에서 떨어져 있으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한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한 비서에게 메모지 한 장을 달라고 했다. 한 비서는 내가 메모장을 쓸 것을 예상했는지 그의 가방에서 손때 묻은 낡은 수첩을 건네주었다. 메모지를 갖고 다니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몸에 익혀두었던 체어맨으로써의 습관 이였다. 우선 만년필로 메모지위에 생각나는 단어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맨 처음으로 메모지위에 쓰인 것은 ‘이사회”라는 단어였다. 그건 바로 이사회의 움직임 때문 이였다. 그 약싹 빠른 늑대들은 이번 계기로 회장직을 갈아치우는 생각을 할 것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 환갑이 갓 지난 늙은이가 아직도 회장직에서 머문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눈에 가시거리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한다.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원할 뿐 이였다. 아마도 늑대들이 토끼를 왕으로 추대할 것이라 생각된다. 무시 못하지만 늙은 사자는 필요 없다는 듯이. 두 번째로는 회사에서 집으로 옮겨 갔다. “김경숙” 나의 아내 이름이다. 지금 내 와이프는? 내 아내는 어디 있지? 한 비서에게 묻자 그녀는 사교모임으로 유럽에 갔다고 한다. 그것도 내가 쓰러지고 나서. 그 늙은 여우가 옆에 없자 조금은 섭섭했다. 아니, 내가 죽으면 좋아하는 그 여우의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오르자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 외에 다른 기업과의 계약 권, 새로 치고 나오는 신흥기업들, 조금한 일에도 죽어라 뛰는 기자들… 여러 단어를 쓴 것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나” 라는 글자가 종이 한 구석을 차지하였다 그 단어를 중심으로 수많은 동그라미와 별표를 그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지금처럼 쓰러진 건 처음 이였다. 아니, 그 동안 버텨왔는지도 몰랐다. 버티고 버텨 마침내 터져버린 풍선처럼 산산조각 되어있는 것 일수도 있다. 그 동안 정말 치혈하게 살았다. 수 많은 경쟁자들을 뿌리치고, 새로 덤벼드는 젊은 기업들을 밟아 찍 소리 못 하게하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대한민국의 중심 기업의 회장직을 군림하게 되었다. 예전의 라이벌들은 모두 어딜 갔는지, 지금은 내 눈

  • 상산
  • 201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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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작품을 쓰시는군요... 부럽습니다.

    • 2009-11-22 00:36:2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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