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 작성자 서늘해
- 작성일 201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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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음악? 어쨌든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라는 음악을 모티브로 써봤습니다. 오랜만에 올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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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저 큰 탑 같은 건 뭐예요?"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괘종시계라고 한단다. 너는 아직 시계가 뭔지 모르겠지만, 저건 평생 내 친구란다."
"시계도 사람이에요?"
"꼭 사람이라고 해서 친구가 되는 건 아니야. 우리 손자가 같고 노는 장난감도 친구고, 살고 있는 이 집도 같은 친구란다. 세상의 모든 것이 친구지."
나는 환하게 웃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 친구라니! 내가 유치원에서 놀림을 받아도 내 편을 들어줄 것이다. 분명 유치원 건물은 나를 놀리는 애들을 혼내줄 것이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애들이 나에게 장난삼아 때리면 땅은 그 애들이 서있지 못하게 흔들어댈 것이다. 나는 그 사실로도 정말로 기뻤다.
"저 시계는 내가 태어났을 때 만들어진 시계야. 시계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내 아버지가 내가 태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만드셨지. 아마 태어나자마자 만져본 게 부모님 다음으로 저 시계일 거야. 저 시계는 내가 결혼 했을 당시 신부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을 때 종을 쳐주었단다. 내가 아내와 싸워서 많이 기분이 상했을 때도 종을 쳐주었지."
"그럼 저 시계도 많이 늙었겠네요?"
"물론이지."
나는 마루에 놓여 있는 추를 흔들며 작은 바늘이 계속 돌아가고 있는 큰 괘종시계를 보았다.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서 덩달아 웃는 듯 똑딱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제일 큰 바늘이 10을 가리키자 댕, 댕, 댕 거렸다.
"시계도 네가 좋다는 구나."
"정말요?"
"저렇게 말하고 있지 않니. 댕, 댕, 댕 하면서."
나에게 친구가 더 생겼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댕, 댕, 댕 거리면서 나를 맞아줄 것이다. 친구와 놀다가 헤어질 때면 정말 아쉬웠는데 언제나 집에서 같이 놀 수 있는 친구. 나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나는 자면서도 기분이 좋아서 히죽히죽 거렸다. 도중에 언니가 나에게 시끄럽다고 베개를 던졌지만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내일 가서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아니야. 우리 집 괘종시계는 내 친구야."
나는 애들한테 빡빡 우겼다. 그래도 장난기가 심한 애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콧방귀만 뀌었다.
"바보 같은 소리. 시계는 그저 시간을 알려줄 뿐이라고!"
"아냐, 아냐. 시계는 정말 내 친구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뒤로 휙 돌아섰다. 정말 시계는 내 친구라고……. 내 소중한 친구야.
3월이 지나서 나는 유치원을 졸업했고 근처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알고 지내던 애들은 모두 공립 초등학교가 있는 데로 이사가 버리거나 유학을 가서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아는 애들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생판 모르는 남이었다. 많이 낯설었다. 과연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지만, 나는 집에 친구가 있다.
나는 첫 날부터 그럭저럭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부잣집 애들부터 우리 집보다 좀 더 가난한 집 애들까지. 나를 개인적인 이유로 적대시하는 애도 있었다. 자기는 교회인데 나는 성당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 소개 때 선생님께서는 서로의 종교를 알아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면서 이름, 생일, 종교와 그 외에 하고 싶은 말로 소개를 하라고 지시했었다. 나는 성당에 다닌다고 했다. 학교가 끝나서 교회를 다니는 애가 다를 붙잡아다가 나에게 말했다.
"너희 성당은 우리 교회의 이단이야. 우리 엄마가 그랬어. 너는 이제 내 원수야."
나는 이단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어쨌든 이 애와는 친하게 지낼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첫 날부터 원수를 만들다니. 나는 꽤나 충격을 많이 받았다. 할아버지는 첫 날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나는 집으로 가면 꼭 시계 앞에 앉아서 학교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처음으로 학교 간 심정이 어떤지, 애들은 어땠는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시계에게 말해주었다. 그럴 때면, 시계는 유난히 똑딱거리는 소리를 크게 냈다. 나는 뭐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난처해하고 있을 때면, 할아버지는 내 옆에 서서 시계가 하는 말을 그대로 말해주셨다.
"많이 즐거웠겠고 또 많이 기분이 상했겠구나. 하지만,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야. 원래 첫 날은 서먹서먹한 법이거든."
나는 그런 시계의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시계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구나, 그럼 내일부터 잘하면 되겠지. 마지막으로 내가 교회 다니는 애한테 뭐라 한 소리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계는 크게 똑딱거렸고 할아버지는 그걸 말해주셨다.
"사람 사귀는 거에 종교는 필요 없어. 그리고 성당이나 교회나 믿는 분은 하느님이야. 그러니까 서로 싸우면 안 돼."
나는 그 애에게 시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나는 말끝에 '시계가 그랬어.'라고 덧붙였다. 교회 다니는 애는 하찮다는 듯이 웃으면서 나의 머리를 한 대 쳤다.
"믿는 분이 같다고? 너는 하느님이랑 하나님이랑 같다고 말하는 거야? 웃기고 있네. 그리고 시계가 그랬어요? 얼씨구. 시계가 사람이냐? 어?"
"정말로 시계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그 애는 나의 머리를 한 대 더 때렸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보다 못한 친구들이 달려와서 그 애한테 해코지했다. 나는 그 애와 친해질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사사건건 교회 다니는 애와 부딪혔다. 교회 다니는 애는 다 말고도 많았는데 그 애들은 나와 친구였다. 종교는 상관없다고 하면서. 그 애를 설득하려는 다른 친구들은 많았지만 그 애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말끝마다 '시계가 그랬어.'라는 말을 덧붙여서 그 애의 심기를 더 돋웠다. 날로 싸우는 일이 많아졌고 어느 날은 내가 그 애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그렇게 되다 보니 선생님께 혼도 났고 부모님이 불려 가신 적도 있었다.
나는 애들과 대화할 때면 가끔 시계가 해주었던 말을 그대로 해주면서 '시계가 그랬어.'라고 했다. 처음 애들은 내가 하는 말이 장난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많아지자 친구들은 나를 점점 '좀 이상한 애'라고 취급했다. 살짝 머리가 안 좋다는 둥, 어렸을 때 머리를 다쳤다는 둥, 겪어보지도 못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선생님은 나의 어깨를 꽉 붙잡고 말했다.
"자꾸 시계, 시계 하니까 친구들이 점점 너를 무시하고 있어. 시계가 말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니?"
"아니에요. 정말 시계는 저에게 말해주었어요!"
"혹시 부모님이라든가, 네 자매가 대신 말해주지 않던?"
"할아버지께서 대신 말해주세요."
"…….그건 시계가 말하는 걸 할아버지가 대신 말해주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네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말하는 거란다."
"말도 안 돼요! 할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어요!"
"사실이란다. 네가 자꾸 그렇게 시계 타령을 한다면 언젠간 친구들은 너를 장애인 취급을 할 거야."
선생님은 나를 돌려보내셨다. 나는 어렴풋이 선생님이 푸념을 늘어놓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할아버지 참 대단하시네.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생을 상대로 어떻게 그렇게……."
나는 그 이후로 시계 앞에서 이야기하는 일상이 사라졌다. 더 이상 시계를 내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친구가 아니었다. 시계는 물건이고 나는 사람이다. 사람과 물건이 친구가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신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와 대화하지 않았고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 시계는 변함없이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유난히 큰 소리로 똑딱거렸지만 그건 그저 내 기분 탓임을 알게 됐다. 내가 신경도 쓰지 않을 때는 똑딱거리는 소리는 그냥 그대로였다. 결국 이 시계 때문에 내가 장애인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어딘가 좀 모자란 애로…….
내가 시계라는 말을 하지 않자 애들은 '저 애가 그냥 좀 고집스럽게 장난을 쳐본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모자란 애 취급 받지 않고 나날이 친해져 갔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학교에 돌아와서 시계에게 말했던 시간은 놀거나 숙제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시계가 해주었던 말을 자기 전에 곱씹어 되새기는 시간은 가방을 점검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함을 느꼈다. 그 교회 다니는 애의 대한 불평 등을 갑자기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다고 교실 한 가운데에서 그럴 수도 없었다. 교회 다니는 애는 점점 더 심하게 나를 괴롭혔고, 전에는 점심 급식 시간 때 식사 전 기도를 한답시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저 애에게는 맛없는 점심이 될 수 있게 해주소서! 아멘."
그때의 나는 그 애의 식판을 던져버렸다. 무척 화가 났다. 나는 그 애와 싸웠고 종교의 대한 욕도 얻어먹고, 선생님께 혼났다. 이 억울함을 하소연할 때가 없었다. 부모님께 털어 놓으면 분명 해코지를 할 테고 할아버지는 이제 거들떠보기도 싫다. 나는 그런 답답한 마음을 계속 앉고 갔다.
그렇게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을 종업하고 2학년으로 올라갈 때에 할아버지께서는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나는 몰랐다. 내가 학교에 있었지만, 그런 연락은 없었다. 나는 친구와 웃고 떠들었고 교회 다니는 애를 째려보기만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갔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어디 나갔나보다 하고 마루 소파에 앉아 쉬었다. 시계가 바로 내 정면에 있었다. 나는 바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렇게 잠이 올만 하자 갑자기 시계가 울렸다. 댕, 댕, 댕 소리를 냈다. 원래 한 번 울릴 때는 열두 번을 울리는데 다섯 번이 울릴 때 쯤 갑자기 멈췄다. 나는 이상해서 시계에 가까이 다가갔다. 보니 추는 멈춰있었고 시침, 분침, 초침 모두 정지해 있었다. 시각은 3시였다. 사실 지금은 종이 울릴 시각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고장 났다고 생각하고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또 잠이 올만 할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와 아빠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 현관 쪽으로 뽀르르 달려갔다. 엄마와 아빠는 계속 울기만 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말하기가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속 서있었다. 갑자기 감정이 복 받쳐 올라왔다.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할아버지와 별로 말을 나누지 않았다. 오늘 학교를 갈 때도 할아버지는 즐겁게 웃으시면서 잘 갔다 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그냥 나가버렸다. 엄마는 할아버지께서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병원에 실려 갔었다고 말했다. 나는 몰랐다. 내가 학교에 있었지만, 그런 연락은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아파하고 계실 때에 친구와 웃고 떠들고만 있었다.
나는 방으로 달려갔다.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멍한 상태였다. 머릿속은 텅 비어있었지만 왠지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음 날에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할아버지의 몸은 관에 담겨 파인 땅에 들어갔다. 신부님은 성수를 관 위에 성수를 뿌렸다. 사람들이 괘종시계 하나를 무겁게 들고 왔다. 우리 집에 있던 괘종시계였다. 저게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신부님은 바늘로 뭐라 중얼거리면서 시계에 십자가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시계를 관 옆에 놓였다. 신부님은 다시 성수를 뿌리고 십자가 하나를 놓으셨다. 사람들이 삽을 들고 관과 시계 위에 모래를 덮었다. 할아버지는 시계와 함께 묻히셨다. 친척 모두가 소리 내어 울었다. 성당 어른들도 우셨다. 신부님은 그저 성호를 그으셨다. 나는 울음도 터뜨리지 않고 묵묵히 할아버지가 묻힌 자리를 보고 있었다.
내가 어느새 6학년 졸업이 다가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이미 잊혔고 할아버지가 옆에 안 계시는 생활도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나는 변함없이 1학년 때부터 사귀었던 친구와 친하게 진했다. 교회를 다니는 애와는 대체 무슨 악연인지 지금까지 쭉 같은 반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전보다는 부딪히는 일은 적었지만, 어깨를 부딪치면 서로 욕을 해댔고 얼굴이 마주치면 그저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께서 종례 때에 말씀하셨다.
"졸업식은 전 학년이 모두 졸업식 노래를 불러야 되요. 모두 뭘 부를 지 정합시다. 교장 선생님께서 맨날 졸업식 때에 부르는 상투적인 노래는 별로라고 해서 여러분이 직접 정해서 하셔야 됩니다."
왜 졸업식 노래를 우리가 불러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노래 부르는 건 즐거우니 상관은 없다. 간단한 학급 회의가 이루어졌고 꽤나 많은 노래가 후보에 올랐다. 애들은 가사가 외우기 쉽고 부르기도 쉬운 노래를 선택했다.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저 제목을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내일 가사를 뽑아서 나눠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컴퓨터를 켜 그 노래를 찾아보았다. 나는 가사를 보자마자 숨이 막혔고 할 말을 잃었다.
졸업식 날. 졸업식은 종업식과 함께 강당에서 이루어졌다. 6학년 전체는 강당 무대 위로 올라가서 노래를 부를 준비를 했다. 곧 반주가 울려 퍼졌고 모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시계는 아주 커서 마루에 세워 놓았어요.
할아버지께서 태어난 아침에 처음 우리 집에 왔지요.
시계는 언제나 우리 할아버지의 소중한 보물이었지요.
할아버진 자랑을 하셨죠. 친구라고요.
그러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부터
시계는 고장 나 멈추고 말았죠. 다시는 가지 않았지요.
시계는 언제나 우리 할아버지의 소중한 보물이었지요.
할아버진 자랑을 하셨죠. 친구라고요.
구십년 동안 언제나 똑딱똑딱.
수를 재고 있었죠. 똑딱똑딱.
시계는 멈추고 말았죠, 울리지 않죠.
할아버지의 기쁨과 슬픔을 시계는 함께 나누었죠.
할아버지께서 결혼을 하실 때 시계는 축하를 했대요.
어여쁜 신부와 집에 들어왔을 때 스물 네 번 종을 울렸죠.
시계는 멈추고 말았죠. 울리지 않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시계는 다시 울렸어요.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로 그 시간을 알렸어요.
보고 싶어라 우리 할아버지 언제나 다정한 그 모습.
시계는 멈추고 말았죠. 울리지 않죠.
구십년 동안 언제나 똑딱똑딱.
수를 재고 있었죠. 똑딱똑딱.
시계는 멈추고 말았죠. 울리지 않죠.
나는 부르는 동안 보여주지 못할 모습을 보여주었다. 울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졸업 때문에 운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할아버지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고 그때 울지 못한 것이 지금 와서 터진 것이다.
애들은 처음에 이 노래를 좀 슬픈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멜로디도 그렇고 가사도 많이 우울한 느낌이다. 할아버지는 죽고 시계는 멈추고. 즉, 친구가 서로 똑같이 죽었다. 정말 감동적인 드라마다. 하지만, 별로 슬픈 노래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심과 동시에 시계는 고장 났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시계는 같이 묻혔다. 할아버지는 시계를 끌어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 외로움을 느낄 필요 없었다. 어느 한 쪽이 외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마 하늘에서 구름 위의 의자에 앉아서 책상다리를 하고 시계와 대화 하고 있을 것이다.
참, 웃겨. 시계는 사람이 아니라니까. 나 자신도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할아버지의 돌아가심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다소 충격적인 대답을 했다.
"너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각이……, 아마 오후 3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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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늘해
- 2014-12-02
듣고 있어요? 내가 대답을 재촉하자 그는 솔직하게도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매스를 연필 돌리듯이 놀리면서 한심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얗게 새버린 피부만큼이나 표정도 질려있었다. 나는 시신의 목 언저리를 매스로 그었다. 살갗이 깨끗하게 잘리면서 그 속을 드러냈다. 매스에 마른 피가 묻긴 했지만 피가 콸콸 흐른다거나 하진 않았다. 아, 경동맥을 건드려버렸다. 목 수술을 하면서 하다가 경동맥을 건드는 순간 환자의 생명은 끝이었다. 젠장. 나는 목에 칼집이 난 시체들이 쌓여있을 냉동고를 보면서 손을 부르르 떨었다. 뭐야, 결국 그만 하는 건가?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정말로 당신 차례입니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가차 없군. 그게 제가 할 일이니까요. 나는 매스를 헝겊으로 슥 닦아 소독기에 넣었고 시술 장갑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리고 의사 가운을 벗은 다음 바로 교실을 나갔다. 그가 어디 가냐고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저 사람은 유난히 말이 많았다. 강의가 끝나면 바로 교실에 가서 해부 실습을 하고, 가로등이 환할 때 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시신냉동고 때문에 싸늘한 교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알 수 없는 포근함과 해방감에 젖어들곤 했다. 쌓아놓으면 족히 책장 위로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시신을 해부해봤다. 자르고, 꿰매고, 절단하고, 이어붙이고, 핏줄을 건드려보고, 장기를 꺼내보고, 절개해보고, 약품을 넣어보기도 하고. 아마 학교에서 나만큼 사람의 몸에 대해서 잘 아는 이도 드물 터였다. 그 많은 시신들과 해부의 자유는 학교가 나에게 투자한 것이었다. 학교는 시신을 처리할 능력이 없는 가족의 초상집에 가서 의료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주고 시신을 샀다. 그러니 시신들은 더 이상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물론 그 반대도. 가족은 죽은 이에게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런 걸 상기하면서 매스를 움직이다보면 마치 차에 치여 죽은 비둘기를 보는 듯한 심정이 들었다. 그럴 때면 이미 죽은 사람에게 연민이란 게 필요 있을까, 하는 합리화로 마음을 다독였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어두운 얼굴의 아버지와, 어두운 어머니가 나를 반겼다. 그림자 드리운 누나도 뒤늦게 방에서 나와 어서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소파로 가서 텔레비전을 보았고 어머니는 서류를 정리하고, 누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내 방으로 가서 얼굴을 살펴봤다. 내 얼굴에도 어둠이 서려있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나. 씨익 입 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책상에 놓인 가족사진도 살폈다. 언제나 그랬듯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어두웠다. 부모님은 내 얼굴에 만큼은 그림자가 드리우질 않기를 바랐는데. 나는 책상에 앉아 해부학 교과서를 꺼내서 폈다. 그는 기록에 따르면 향년 43세이고, 술에 만취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차에 치였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함몰된 두개골, 완전히 으스러진 왼쪽 팔, 뼈가 심하게 접질려 살갗을 뚫고나온 오른다리가 그때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경찰 조
- 서늘해
- 2013-04-05
계단을 올라갔다. 가끔 관광객이 왔다가 이 계단의 끝이 막다른 길이란 걸 알고 돌아갈 때 빼고는 인적이 없는 계단이었다. 가로등조차 없어 길은 무척 어두웠다. 곧 두 개의 문이 나타났다. 하나는 파란 대문이었고 하나는 빨간 대문이었는데 파란 대문 쪽이 내가 사는 집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양복을 벗어 던지고 바로 이불에 몸을 던졌다. 오늘은 야근해서 그런지 많이 피곤했다. 이불에 누워있자니 조금씩 잠이 오려고 했다. 퇴근해서 돌아올 때면 두 개의 문이 내 앞에 떡 하니 서있었다. 물론 한쪽은 내 집 대문이지만 한쪽은 잘 몰랐다. 여기서 혼자 5년을 살았는데도 이웃집 사람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이웃집에서 가끔 새어나오는 웃음이나 신음으로 보아 부부가 사는 듯했다. 그런데 종종 빨간 대문이 이웃집이 아니라 빈집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웃음과 신음은 뒷집이나 아랫집 어딘가에서 새어나오는 것, 아니면 환청이거나. 별로 신경 쓰고 싶진 않았다. 빈집이든 이웃집이든 무슨 상관인가. 나 혼자 살기도 버거운데. 슬슬 잠에 빠지려고 하는데 빨간 대문은 빈집이 아니라 이웃집이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꺅, 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잠이 확 깼다. 꺅꺅거리는 비명이 계속 들렸다. 나는 집 밖으로 나갔다. 빨간 대문 너머로 비명과 함께 월급이라느니, 자식새끼라느니 하는 욕들이 터져 나왔다. 작은 타격음도 함께. 나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날씨가 덥지만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틀었다. 건너편에서 들리는 비명이 약간은 작아졌다. 나는 그대로 이불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어딜 가나 흔히 있는 부부싸움이다. 부부가 된 이상 저런 싸움은 존재하고 가끔이지만 욕과 함께 손이 나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괜한 오지랖 떨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심하다 싶으면 내가 아니더라도 뒷집이나 저쪽 아랫집에서 신고할 터이니 말이다. 아침 6시 출근시각. 집에서 나와 문을 닫고 잠갔다. 휴대폰 거울로 넥타이 상태를 점검하고 가방을 열어 깜박한 게 없는지 확인했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빨간 대문이 열리면서 셔츠를 걸친 젊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잠시 나와 여자는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사는데 5년 동안 마주치지 못했다니. 여자도 내 집이 빈집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려는데 여자는 볼에 난 상처를 애써 감추면서 총총걸음으로 먼저 계단을 내려 가버렸다. 아, 빨간 대문 집에는 젊은 남녀가 사는 구나. 새삼 깨달았다.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봤다. 아차, 늦겠다. 나는 계단을 두 칸 씩 뛰면서 내려갔다. 오늘도 빨간 대문 너머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그 정도가 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나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사놓은 주황색 스펀지 귀마개를 꾹꾹 누른 뒤, 귀에 꽂았다. 스펀지가 펴지면서 귀를 막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 그
- 서늘해
- 201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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