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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평안하신가요?

  • 작성자 낭만적편집증
  • 작성일 2011-09-07
  • 조회수 864

  남자는 눈을 떴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일곱 시 이십 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셈이다. 시간이 여유로울수록 남자에게는 좋았다.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머리에 피가 쏠리면서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양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가에 붙어있던 눈곱이 떨어졌다. 어지러움이 쉽게 가시질 않아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주었다. 곧 눈앞이 환해졌다. 졸음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남자는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배를 긁적이며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바닥은 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슬리퍼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인 여동생이 아침에 먼저 화장실을 쓰고 갔을 것이다. 남자는 젖은 슬리퍼를 신는 것을 싫어했다. 항상 주의를 주는데도, 여동생은 말을 귓등으로 듣는 것 같았다. 젖은 슬리퍼는 싫었지만 맨발로 물 젖은 화장실 바닥을 밟는 것 보다는 나았다. 발끝을 쭉 펴서 천천히 슬리퍼 안쪽으로 넣었다. 차갑게 식은 물방울이 발등에 닿자 소름이 돋아 올랐다. 다른 한 발도 천천히 남은 한 쪽에 집어넣었다. 약간 작은 사이즈의 슬리퍼가 남자의 발등을 단단하게 압박했다.

  남자의 스포츠 형 머리 스타일은 샴푸가 필요 없었다. 얼굴에 비누칠을 하면서 동시에 머리까지 칠했다. 얼굴과 머리를 씻는 것은 5분도 채 안되어 해결할 수 있었다. 남자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화장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어 거실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일곱 시 사십 분. 면접장소까지 넉넉히 가려면 여덟 시 십 분쯤에는 출발해야 할 것이다. 남자에게는 삼십 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남자는 변기 앞으로 가서 섰다. 하얀 변기커버에 화장실 형광등 불빛이 반사되어 반질거렸다. 천천히 잠옷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변기에 안착시켰다. 차가운 변기에 엉덩이가 닿자 몸이 조금 떨렸다. 가만히 앉아서 숨을 골랐지만 아무런 신호도 느껴지지 않았다. 몇 분이나 흐른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눈이 감겨왔다. 이러면 안 돼! 남자는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손바닥으로 맞은 양 허벅지가 발갛게 부어올랐다. 나오던 똥이 다시 들어갈 만큼 따가웠다. 남자의 눈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신호는 여전히 없었다. 아랫배를 손끝으로 마사지하듯 눌러주었지만, 늘어난 뱃살만 느껴질 뿐이었다. 변기에 오래 앉아 있는 탓인지 대장의 끝이 아려왔다. 오늘도 포기해야 하는 걸까?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변비와 치질이 동시에 발병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남자는 바지를 추슬러 올렸다. 똥을 눈 것도 아닌데 누고 나서 뒤를 안 닦은 것 같은 찝찝함이 느껴졌다.

  거실로 나가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남자가 예상한 시간을 훨씬 넘은 상태였다. 이런! 남자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변비가 생긴 뒤로부터는 TV나 컴퓨터를 하는 시간보다도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갔다. 이러다 인생에서의 시간을 남들보다 두 배는 더 화장실에서 보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여자도 아니고 변비라니! 친구들에게 말할 수도 없는, 쪽팔리는 일이었다.

  변비가 생긴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난 뒤였다. 나만은 쉽사리 구할 것 같았던 직장이 구해지지 않고, 날마다 쓰는 이력서 양식이 손에 익어갈 즘이었다. 28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아침마다 쾌변을 보장하던 남자의 대장이 점차 힘을 잃어갔다. 아침에 누던 것이 저녁으로 바뀌고, 그게 하루씩 미뤄지더니 어느 때는 세어보니 일주일이 넘게 되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치료에 좋다는 것은 다 구해서 사용해 보았으나 증상이 약간만 좋아질 뿐 매번 완치를 보지 못했다. 거울에 비친 삐져나온 코털을 뽑으면서 남자는 똥도 털처럼 이렇게 확 뽑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코털이 뽑히자 코가 시큰해지고, 눈물이 찔끔 차올랐다.

  남자가 입사를 지원한 곳은 꽤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이었다. 다행히 지각은 하지 않았고, 남자는 대기번호 22번을 받았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면접 기회였다. 남자가 이력서를 넣은 회사들은 대부분 전화 한 번 주지 않았다. 이 회사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사실은 조금 궁금했다. 어쩌면 자신의 전공과 회사가 원하던 것이 맞아 떨어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떨어진다면 또 얼마나 많은 이력서를 써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남자는 번호표를 가슴팍에 달고 대기실 복도에 가서 의자에 앉았다. 딱딱한 철제 의자에 엉덩이가 배겼다.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에,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아침에 똥이라도 누지 못했나?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변비에 걸렸다고 생각하니 실소가 새어 나왔다. 옆에 있던 사람이 휙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재빨리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1, 들어오세요. 나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남자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은 빨리 뛰었다. 심장의 진동이 대장까지 전해진 것일까. 19, 들어오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자, 배에서 신호가 왔다. 공습경보의 사이렌처럼 신호는 재빨랐다. 공기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항문 끝으로 무엇인가 고개를 내밀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힘을 주었다. 딱딱하던 철제의자가 더 딱딱하게 느껴졌다. 상황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어나오고 손이 조금씩 떨렸다.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화장실을 가기엔 너무나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20, 들어오세요. 여자의 목소리는 1번부터 20번까지 똑같은 크기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달싹달싹 떨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일주일을 참아온 똥인데, 단 몇 분을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주일치가 축적된 힘은, 강했다. 자연적인 생리현상 앞에 사람의 의지가 이길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남자는 옆에 앉은 21번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21번이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 저기요. 제가 지금 화장실이 급해서 그러는데 그, 그쪽 면접 보실 때 최대한 느, 느리게 좀 말씀해 주세요. 21번의 눈이 동그래졌다. 대답을 들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남자는 최대한 엉덩이에 힘을 주면서 가능한 빠르게 화장실로 달렸다. 21, 들어오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옛 어른들이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하는 까닭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모든 근심과 번뇌가 이 곳에서는 깨끗이 증발되었다. 아니, 배출되었다고 해야 하는 걸까? 남자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변기가 안락의자라도 된 마냥 편안했다. 여유롭게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감고 있는데, 멀리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22, 들어오세요. 남자는 깜짝 놀라서 두루마리 휴지를 확 잡아당겼다. 두루마리 휴지가 훌훌 풀려 내려왔다. 22, 안계시나요? 여자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 지금 갑니다! 남자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22? , 여기 있어요. 여기! 벨트를 추스르고 남자는 변기 물을 내렸다. 지금 갑니다, 가고 있어요! 문을 박차고 나간 남자는 손도 씻지 않고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변기 물내려가는 소리가, 화장실을 가득 메웠다.

낭만적편집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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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적편집증
  • 20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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