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 작성자 스파클링
- 작성일 201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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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를 뺐다. 빼야할지 말아야할지 몇 주는 고민했는데, 정착 발치는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뒤라 그런지 치과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개는 부모와 함께 온 어린아이나 친구와 수다를 떨며 기다리는 여자들이었다. 나는 홀로 앉아 화분 꽃 이파리만 만지작거렸다. 장소미 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최소 2주는 있어야 나을 거예요. 간호사는 주의사항 몇 가지를 쓴 종이와 거즈, 처방전을 건네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돈을 지불하고 치과를 나섰다.
발치 부위에 찾아오는 얼얼한 아픔보다도 두통이 더 견디기 힘겨웠다. 치과에서 내내 풍기던 인조적인 꽃냄새와 히터 바람 때문인 듯 했다. 이마를 짚으면서 유리문을 밀었다. 완전히 열기도 전에 들이치는 찬바람에 몸이 떨렸다. 교복 마이 단추를 목까지 채워도 냉기는 그대로였다. 아빠에게 연락이라도 해볼까. 연락을 안 한 지 벌써 몇 주는 지난 것 같았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어차피 일이 바쁠 것이고 지금 상태로는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몸을 움츠린 채 재게 걸었다.
집 안은 어둡고, 적적했다. 텅 빈 현관에 신발을 벗고 몸을 들였다. 스위치를 누르니 그나마 환한 느낌이 감돌았다. 네 평정도 되는 방 안이 퀴퀴한 냄새로 진동했다. 숨을 참으면서 방 안을 둘러보는데 구석에 컵라면 국물이 쏟아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제 저녁으로 먹었던 육개장이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한 후 자취 생활 3년 간 물리도록 먹었는데 어젯밤은 이상하게 라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면만 대충 먹고 구석에 놓았던 것이 그만 쏟아졌나보다. 할머니 집에서 쌀을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여간 먼 거리가 아니라 쌀을 가져오기도 마땅치 않았다. 국물을 닦아내고 빈 용기를 버릴 힘이 나지 않았지만 혹여나 주인 집 아줌마가 본다면 또 한 소리를 퍼부을 것이다. 마른 걸레를 가져와 국물을 닦고 화장실 앞에 걸레를 던졌다.
정리를 마치고 난 뒤 휴대폰을 꺼냈다. 차가워진 휴대폰을 한참이나 쥐고 있다가 겨우 폴더를 열었다. 반 아이들 누구에게도 조퇴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문자나 전화 한 통도 와있지 않았다. 훤한 배경화면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대로 배터리를 분리시키고 휴대폰을 이불 위로 집어던진 뒤, 곧바로 컴퓨터 전원을 켰다.
전원을 켜는 동안엔 집 안이 섬뜩할 정도로 고요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바탕화면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서서히 통증이 찾아왔다. 처음 발치 하고 났을 땐 조금 얼얼한 정도였는데, 집에 오면서부터는 잇몸이 시큰하고 입을 다무는 것조차 어려웠다. 두 손으로 볼을 감싸면서 한 가지 생각만 했다. 2주만 참자, 2주만 참자. 2주만 지나면 느릿하게나마 고통이 사그라질 것이다. 바탕화면이 완전히 뜨고 인터넷을 클릭한 뒤 주소창에 싸이월드 주소를 입력했다.
로그인을 하고 미니홈피를 열었다. 투데이는 0이었고, 토탈은 100도 채 되지 않았다. 개설한 지 3년이 지나도 토탈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싸이월드에 접속한 목적은 따로 있기 때문에 그저 지나쳤다. 즐겨찾기에 추가해 둔 반 아이들의 미니홈피를 하나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내 앞자리에 앉은 남희의 미니홈피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음악이 흐르는 홈피가 분홍색으로 믈들어 있었다. 사진첩을 클릭한 뒤 반 아이들의 사진을 훑어보았다. 브이를 그리고 있는 아이들과 졸업여행에서의 단체 사진, 음식점에서 찍은 사진, 한 아이의 집에서 다같이 모여 찍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그 사진 중 나는 없었다. 사진 귀퉁이에 잘못 찍힌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학기 초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부러 못들은 척을 하기도 했고,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일도 없었다. 그런 일이 계속되면서 아이들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34 페이지까지 올라온 사진들을 모두 보고 인터넷 창을 닫았다.
컴퓨터 전원을 끄자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텔레비전이라도 켜 놓을까 생각했지만 이미 고장 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자리에 멍하게 앉아 있는데 가방 속에 넣어둔 사랑니가 떠올랐다. 사랑니를 발치한 후 의사에게 부탁해 가져온 것이었다. 책가방을 내 쪽으로 끌어온 뒤 위생 휴지로 감싼 사랑니를 꺼냈다. 피가 고인 사랑니 하나가 놓여있었다. 뿌리가 뾰족해서 손끝에 닿으면 쓰릴 것 같았다. 이게 정말 내 입속에 박혀 있던 것일까, 하고 의문이 들만큼 기괴한 모양이었다. 휴지의 귀퉁이로 사랑니에 묻은 피를 닦아냈지만 잘 닦이지 않았다. 나는 휴지를 뭉개 쥐었다. 뾰족한 느낌이 손안에 전해졌다. 주먹을 꼭 쥐고 창문을 열자 찬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작게 조각난 창문 너머로 휴지를 집어던졌다. 휴지는 멀리가지 못하고 떨어졌다. 창문 앞에 서서 길가에 떨어진 사랑니를 계속 바라보았다. 입속에 알싸하게 번지던 고통이 차츰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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