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
- 작성자 신작
- 작성일 201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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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조금 이상한 아저씨가 살았다. 아저씨는 우리 집 옆 골목 귀퉁이에 1년 전쯤 이사를 왔는데 가족이라곤 무서운할머니가 다인 거 같았다. 얼굴에 있는 곰보 때문인지 가만히 있어도 무서운 할머니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부담스럽게 인사를 받고 싶어 하는 다른 할머니들과 달리 인사에는 별로관심 없다는 태도가 신기했달까.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보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아저씨는그런 할머니를 도와주지도, 다른 일을 하지도 않는 거 같았다. 뭐, 나도 엄마를 도와주진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일을 도와주면 일이 더 많아진다던 엄마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 아저씨는 어른이니까 나랑 달라야 했다. 아저씨가 유일하게 하는 건 처음 들어보는노래를 부르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거였는데 마을 어른들도 익숙해진 탓인지 빈둥거리는 아저씨를 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 신나서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건지 궁금할 정도로 신나 보이지 않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아저씨 팔자가 상팔자라는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다고 동네 꼬마들한테 놀림 당하는 것까진 부럽지 않았다.바보라고 놀려도 한 번 씩 웃고 마는 행동 때문에 꼬마들은 마주칠 때마다 이상한 아저씨를 놀려댔다. 우리엄마가 봤으면 ‘넌 저런 못된 짓 하면 안 된다’라고 했을 테지만 솔직히나도 아저씨를 바보라고 놀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일그러지는 거 같기도 하고 활짝 웃는 거 같기도 한 웃음은퍽 재미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아저씨가 아무데서나오줌을 싸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린 내가 다 부끄러웠다. 그래도 오줌 싸는 모습만은어른 같았다. 나도 모르게 아저씨의 어른 같은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눈이 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당황스러운마음에 자전거를 타고 달렸는데 아저씨는 창피하지도 않은지 볼 일을 보다가도 씽긋 웃는 여유까지 있었다.
그런 아저씨가 사라졌다. 어디로 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다만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떠났을 거라고 나는추측할 뿐이었다. 어디 가서 낯선 사람들한테 맞고 있는 건 아닐까, 이상한아저씨가 없어지니까 마을이 허전한 거 같기도 하고 꼬마들은 놀릴 대상이 없어 심심한 거 같았다.
“순심 할머니네 아들이 지선이를 겁탈하려고 했다는 게 사실이야?”
“어쩜, 그렇대요. 지선이네삼촌이 그 놈 밑에 깔려서 울고 있는 지선이를 보고 계속 두들겨 팼다 나봐요. 경찰에 신고하려던 걸 그나마지선이가 별로 다치지도 않았고 순심 할머니를 봐서 좋게 넘어가려나 봐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다니까! 그놈이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휘젓고 다닐 때도 얼마나 찝찝하던지. 저러다 무슨 일내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어휴, 그래도 지선이한테 별일 없어서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순심 할머니 앞에서는 입 조심해야겠어요. 다 큰 아들이 장애인이라는것만 해도 마음 아픈데 자기 아들이 그런 일까지 저질렀다고 생각해봐요. 나 같으면 쓰러졌을 거야”
엄마와 동민 아줌마의 목소리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러 나가려던 난 그 자리에서 멈칫하고 말았다. 엄마와동네 아줌마들의 말을 빌리자면 아저씨가 나보다 우리 동네 지선이를 덮치려다가 지선이 삼촌에게 된통 얻어맞았다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줌마는 정훈이 형이 지선이를 끌고 가려고 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당연한 말일지도 몰랐다. 다시금 마음이 복잡해져 왔다.
며칠 전 그 날은 동네 어른들이 다 함께 관광차를타고 설악산에 놀러 가서 마을에 어른들이 별로 없었다. 난 그날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탔는데 슬슬 심심해질때쯤 익숙한 뒤태를 발견했다. 이상한 아저씨였다. 애써 반가운 마음을누르고 ‘어,바보다’라며 입을떼려는 순간, 어디서 익숙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꺅!!!!!!!!!!!!!!”
지선이 목소리였다. 나보다한 살 어린 지선이는 얼굴이 예뻐서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았는데 내가 먼저 지선이를 찾기도 전에 아저씨는 용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놀라움. 그건 놀라움이었다. 이상한 아저씨가저렇게 날쌔고 빠를 줄이야. 놀라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멍해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쫓아 갔을 땐 정훈이 형이 지선이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아저씨를 그 위로 가볍게 넘어뜨린 뒤였다. 지선이는 놀란 상태에서 갑자기 아저씨까지 자신의 위로 넘어지니까 놀라서 더 크게 우는 거 같았다. 정훈이 형이 지선이를 끌고 가려던 상황이란 걸 대충 알게 된 나는 정훈이 형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형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주둥이 함부로 놀렸다간 어떻게 될지는 알고 있겠지? 오늘 니가 본 건 없었던 거다. 그냥 저 병신새끼가 지선이를 덮치려던 걸 니가본 거야. 알아 들어?”
지훈이 형은 중학생이었는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등치가 크고 힘이 세서 형한테 한 번 찍히면 맞는 건 물론이거니와 학교에서 왕따가 되는 것 또한 시간 문제였다. 이사실을 어른들한테 말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고개는 저절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괜히 따라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내 눈 앞으로 정훈이 형이주먹을 위협적으로 몇 번 휘두르더니 빠르게 사라져갔다. 계속 울고 있는 지선이와 엉거주춤한 자세로 지선이위에서 멍 때리고 있는 아저씨를 보다가 갑자기 화가 솟구쳤다. 지가 나서면 뭐라도 바뀔 줄 알고 무작정 뛰어왔겠지. 결국 정훈이 형 발에 걸려 넘어진 거고. 아, 결과적으로바뀌긴 바꼈네. 내가 많이 곤란해졌다는 거. 어쩌면 정훈이 형 말대로아저씨는 정말 병신일지도 몰랐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귀찮은 일이 생길지 몰랐으므로 울고 있는 지선이와아저씨를 한 번 더 쳐다보곤 몸을 돌려버렸다. 나도 모르는 일이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이 무겁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에서 멀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조금씩 멀어질수록 내 안의 나비가 잠잠해지는 걸 느꼈다. 얼핏 지선이 삼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았지만 난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넌 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야. 넌 참 잘했어.
“근데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사라지긴 왜 사라졌나몰라”
“차라리 잘됐어요. 순심 할머니한테는 죄송한 말이지만 딱까놓고 말해서 마을에 그런 사람이 돌아다니니까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
“하긴”
항상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라고 말했던 엄마가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보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놓곤 정작 엄마는 지키지 않은 것이었다. 묘한 반발심이 일었다. 엄마한테 화가 났다. 일부러현관문을 쾅 닫았다. 깜짝 놀라는 엄마와 아줌마를 뒤로 한 채 대문 옆에 세워둔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조용해 진 것을 느끼며 대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바지와 팬티를 내렸다.
“한서야!!!!!!!”
쉬이이이. 엄마와비명소리와 아줌마의 경악 어린 소리를 들으며 시원하게 오줌을 쌌다. 대문이 연 순간 나도 모르게 오줌이 마려웠다. 참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오줌을 쌌다는 부끄러움보다는시원한 만족감이 먼저였다. 왜 맨날 아저씨가 아무데서나 오줌을 싸는지 알 거 같기도 했다. 아저씨, 병신이라는 말 취소해줄게. 좀대단한 거였어.
대문 너머 돌 바닥을 적시는 오줌을 보며 내 안의나비가 팔딱팔딱 뛰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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