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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센터 필드트립

  • 작성자 터부의 벽
  • 작성일 2013-02-28
  • 조회수 619

기숙사선생님들이 7시에 깨울 줄 알고 안심하고 잠에 들었다. 그런데 웬걸, 일어나니 7시 반? 아, 오늘은 토요일. 주말이니 30분 늦게 깨워주지. 게다가 루시드 드림을 해준다는 어플을 깔고 잤기에 몸은 엄청나게 이완되어있는 상태(물론 실패했다). 나는 스피커가 틀어주는 에픽하이의 map the soul을 5분가량 들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학교 체육시간에 요가를 한 후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왼쪽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흐느적거린 다음, 좀 더 몸을 움직인다. 기숙사 카드를 점호하는 곳에 찍으면서도, 식당으로 가서 가는 동안 먹을 브라우니와 우유를 가져오면서도 나는 루시드 드림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뛰거나 시계를 보거나했다. 그래봤자 현실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은 꿈같은 날이 펼쳐질 현실이니까.

 

나는 '하이포그라피아'다. <벨 자>를 쓴 실비아 플라스가 만든 용어인데, 글을 놓고 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글을 써왔다. 중학생때는 정말 많은 일기를 썼다. 그리고 버렸다. 내용이 너무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후에 누군가 읽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후회하고 있다. 자신의 기록을 버린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열심히 글을 쓰고 모았다. 그렇게 써 모은 글이 지금은 단편소설 8편 정도다. 독후감이나 짧은 글은 얼마나 될지 세지도 못한다. 가는 길에 문득 생각나 쓴 토막글도 많다. 덕분에 상도 몇 개 탔다. 장관상도 타보고 교내논문대회에서 <한국현대문학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소외양상 -시대별 사건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우수상도 받았다. 사실 그런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쓰고 싶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우리학교는 발표와 토론이 잦다. 하지만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말을 잘 하는 아이들 속에서 표현력이 심한 내가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글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동안 겪었던 실패와 낙선이 훨씬 더 많다. 그렇게 ‘찔러보고’느낀 것이라면, 정말로 쓰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의 결과물에게서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1월에 미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소설가와 함께 하는 창작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저번 2학기에는 남산도서관에서 글쓰기 교실을 했었다. 솔직히 적어보자면 지금 하고 있는 교실이 나는 더 마음에 든다. 프로그램이 좀 더 튼실하고 여러 소설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댈 수 있겠다. 그리고 교실의 세 번째 시간인 19일은 필드트립을 하는 날이었다. 강원도 원주의 박경리 문학공원과 토지문화관으로! 중학생 때부터 여러 대외활동을 하며 느낀 건데, 뭐든지 ‘정부’가 함께 해야 통이 커진다. 갑자기 ‘세계문제’라는 수업에서 배운(그렇다. 이런 세계나 국제같은 단어가 붙은 과목들이 우리학교에 수두룩하다. 게다가 이 세계문제라는 수업은 내가 수능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선택한 과목이다. 결과는? 세계는 문제덩어리이다. 그리고 이 과목 자체가 문제다! 농담입니다, 여러분.) NGO의 문제가 떠올랐다. 정부의 지원금 때문에 시민단체는 감히 정부에게 반기를 나서지 못한다, 결국 시민단체의 목적을 일부 상실한다……. 가끔씩 이렇게 무언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즐거운 순간에도 나쁜 소식을 떠올리는 ‘비관적인 사고를 가진’ 나에게는 예상외로 ‘긍정적인’ 답변이 나온다. ‘알기라도 한다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될 거니까.’ 하여튼 이 얘기를 더 하자면 말이 길어지니 그만하고 다시 필드트립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8시 40분까지 도착해야 하고 9시에 차를 타기로 되어있었는데 몇 분 늦었다. 미지센터에 연락을 하려고 해도 안 받고 해서 연진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하필 폰을 두고 갔다는 것이 아닌가. 재미있는 건 그렇게 전화에 실패한 직후 연진이를 가는 길에 만났다는 것이다. 첫 시간에 같은 조가 된 세 친구가 있다. 우리는 다음 두 번째 시간에 가장 빨리 온 네 명이 되었고 그날도 함께 다녔다. 9시가 되어서도 안 온 사람들이 있어서 30분 늦게 버스는 출발했다. 덕분에 버스는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고 나는 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제작년 미국 으로 갔던 해외문화학습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버스를 타는 내내 서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선생님께서 우리들보고 같은 학교에서 왔냐고 했을 정도이다. 정치, 과학, 연애, 입시에 이르기까지 ‘여자애들이 모이면 할 만한 이야기 1년치’를 압축해서 하니 박경리 문학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가끔씩 읽으라며 강조하시는 책이 있다. <토지>의 경우 중학교 1학년 국어선생님이셨는데 청소년용으로라도 꼭 읽으라고 하셨는데 안 읽었다. 이번에 문화관을 둘러보며 아쉬움이 컸다. 정말 대단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수능 끝나고 나서 꼭 읽어야겠다. <토지>를 가장 최근에 들어본 게 언젠가 생각했더니, 서점에서 완본이 나왔다고 했을 때였다. 그동안 여러 출판사를 다니며 상한 곳도 많았는데 완본으로 다시 만들었단다. 다행인 일이다.

박경리 선생님을 존경하게 된 것은 당연한 사건이다. 26년간 쓴 21권이라...... 토지뿐만 아니라 동화 등 여러 작품을 써내려가셨다. 정말 글에 온 인생을 쏟아 바친 분이시다. 박경리 선생님은 한국문학계에서는 거장으로 떠받드는 분이지만 실제 개인사를 들어보면 불행한 순간도 많았다. 남편과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했으니까.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한과 수심이 있겠는가.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타인이, 혹은 개인이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든, 그 인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건 내 인생이니까.

어제 박경리 문학공원을 검색하며 꽤 마음이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늦게 도착한 바람에 생가에 들르지도 못하고 박경리문학의 집만을 관람할 수 있어 아쉬웠다. 방명록의 한마디에 ‘청소년소설의 갑이 되겠다’라고 써놓고 왔다. 왜 꼭 ‘갑’이냐면, 청소년들이 지금 쓰고 있는 말이니까. 나라는 작가를 떠올렸을 때 ‘갑’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토지문화관에 갔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꽃향기! 분명 겨울인데! 내 예민한 코가 드디어 신경감각을 포기한 건가, 아니면 시골의 공기가 꽃내음이 나는 것 만큼 좋은 건가 싶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평생을 서울에서 자라난 탓인지 시골이 어색하기만 하다. 버스를 탄 부담이 커서 점심을 나름 조금 담는다 생각했는데 담고 나니 한 그릇을 채웠다. 급식의 마법이란. 점심은 정말 맛있었다! 학교 급식은 ‘급식판 위의 한스델리’라는 느낌이 강해서 자극적이고 기름진 고기가 많은데다 채소가 맛없게 나오는데, 그날 먹은 점심은 정말 좋은 재료에 채소도 정말 맛있었다. 평소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이었다. 어쨌건 다 먹었다.

 

남은 쉬는 시간 친구들과 휴게실에 가서 탁구도 치고 책 구경도 했다. 휴게실 책꽂이에는 말로만 듣던 문예지들이 정돈하다 만 듯 가득 쌓여있었다. 신기했다. 정말 세상에는 수많은 소설들이 등장한다. 다들 반짝반짝 빛나니 저 곳에 있을 텐데.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데 나는 기어코 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시간에 딱 맞춰 교실에 들어오니 벌써 박경리 선생님의 첫 발표 단편소설 <계산>을 읽고 있었다. 말하면서 읽기를 순번대로 했다. 밝으신 김경례 선생님께서 나에게 잘 읽는다고 칭찬해주셨다. 김경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 소녀감성의 선생님께서 그동안 어떤 고난을 겪으면서도 저렇게 밝게 웃으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여기 와서까지도...... 솔직히 좀 둘러보기나 그런 걸 바랬다. 글이야 서울에서도 충분히 쓰니까. 물론 나는 글 쓸 때 장소에 별 구애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아이디어 구상 노트, 꿈 노트 등을 꺼내 뒤적거리며 200자 원고지 12장을 성실히 채워나갔다. 미지센터의 선생님께서 보시곤 깜짝 놀라셨다. 열심히 쓰고 나갈 시간. 선생님께서 나갈 때 한 명씩 악수를 하자고 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더니 선생님께서 나중에 또 보자고 말씀하셨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멀미가 더 심해져 그냥 노래들으며 잠이나 잤다. 친구들과 버스에 내리고 지하철을 타는 사이에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혜화역에 홀로 남겨졌다.

대학로의 밤이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고 노점상과 타로가게는 도로를 밝히고 있었다. 멀미가 지속된 상태로 학교에 돌아갈 순 없었다. 나는 성당에 갔다.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마치 신자인양 행동했다. 미사에 직접 참여한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 다음 주택가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 성균관 대학교의 정문으로 들어가 법학대학교 옥상에 올라갔다. 서울의 야경이 더없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잠시 그렇게 바라보던 나는 학교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절친한 친구와 우연히도 만났고(그 친구는 모의국회캠프에 갔다 왔다) 그날 밤 그 친구는 내 글을 봐줬다. 그리고 타방이라는 불법을 성실히 이행하며 함께 잠들었다.

 

사실, 남산에서나 미지에서나 처음에 딱 가면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이다. 나는 저 애들과 달랐다. 나는 어딜 가든 주눅 들지 않았고 두려움도 없었다. 물론 우리학교에 와서 더 특이해진 것이 있긴 하지만, 그냥 일반학교 갔으면 그 애들에게 맞추어서 겉으로는 잘 살았겠지만 얼마나 외로웠을지 짐작이 갔다. 남산도서관에서는 우리학교 친구들이 우연히도 많이 추첨되어 함께 다녀서 다른 학교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미지센터에서 친구들, 그리고 작가선생님들을 만나며 그 외로움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이번 미지센터 활동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이라면 ‘사람’일 것이다.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터부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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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부의 벽
  •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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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업로드 크기가 요정도밖에 되지 않네요. 크게도 못하고.... 그런데 '미디어 추가'를 누르니, 그 전에 글틴서 올린 사진들이 다 보이더군요. 허허 기묘한 경험이었슴다)   [참, 혹시 게시판에 걸맞지 않은 글인가요? 글에 맞는 게시판을 알려주신다면, 그곳에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ㅎㅎ]   수능 전에 부모님께서 글틴에 편지와 선물이 왔다는 소식을 듣긴 했으나 (듣고 엄청 설렜었어요 ^.^!!!!) 수능 후에야 선물을 확인했어요!! (사실 수능 전날에도 실컷 자고 실컷 놀았지만..ㅋㅋㅋ) 그리고 이제야 글을 올리네요 으구구 게으름뱅이ㅠㅠ   우선 이계윤선생님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다른 글티너분들 '쌤 저는요?? 흥칫뿡'이라 하실 수도 있으실텐데ㅜㅜ 저도 편지를 읽고 나서야 의외의(!) 선물꾸러미를 받은 이유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 이유는 안알랴줌^*^ 책 <릴케의 로댕>!! ↖⊙▽⊙↗  예술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 들어가서 교양수업 등을 들을 생각이었는데 정말 기대되요!! 이제 주말마다 집에 가는데, 집에서 틈틈히 읽겠습니다! ㅎㅎ 지금은 그냥 쑥 훑어보기만 했는데... 이럴수가.... .....'릴케'가 유명한 독일 시인이란 것도 알았고, 시도 읽어본 적 몇 번 있는데 릴케가 남자인줄은 몰랐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바보멍텅구리.... 릴케가 바보였거든요.. 아니 뭔소리야... 릴케 시가 여성스러워서... 껄껄 오오 망고 티백!! 개인적으로 차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무지 기대되네요!! 하나는 기숙사로, 하나는 가족들 먹으라고 집에 두고왔습니다. 그리고 핫팩!! 추위를 (정말 심하게) 잘타는 제게 큰 도움이 될!!! 붙이는 거 두개와, 흔드는 거 하나가 있네요. 흔드는 것 역시 가족들 쓰라고 집으로!! 그리고 베이비로션ㅇㅁㅇ... 인줄 알았는데, 바디로션이더라구요!! 딱 바디로션이 떨어졌는데, 겨울동안 잘쓰겠습니당!!! ㅎㅎ 그리고 사쿠라 지우개가 있습니다. 써본 적 없는데 딱 봐도 정말 잘 지워질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냥 잊고 지나치실 수도 있으셨는데 이렇게 신경써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감동! 잘 쓸게요!! 글틴캠프도 벌써부터 기대되요!ㅋㅋㅋㅋ (뭔가 이 내용을 길게 쓰고싶은데, 더 쓰이지가 않네요..;;)   지금은 교실이에요!  저는 책상에 앉아 스탠딩 책상을 놋북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반 애들은 지금 경영학과 정치외교학이라는 전공을 실전에 적용하는 게임을 하고있습니다. 이름하여 부르마불!!!ㅋㅋㅋㅋ 갑자기 이 내용으로 기사 형식의 시가 쓰고싶어졌어요. 써서 바로 글틴에 올려야징! 낄낄

  • 터부의 벽
  • 2013-11-10
면접 후기

C대학교 철학과(입학사정관제) 면접후기 터부의 벽   ※ 주의사항 : 이 글을 읽을 때 쓸데없는 말은 그냥 흘려 읽고 중요한 건 밑줄 치며 읽는 능동적인 독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다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꽤 쓸모 있는 혹은 없는 얘기가 둘 다 많습니다.   우선 이번 면접에 대해 말하자면, 작년 선배의 후기와는 달리 면접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했다는 것입니다. 면접관분들께서도 제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시거나 저에게 물어본 질문(~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 맞았다는 말을 해주시는 등 호의적이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저희 과..가 아니라 제가 지원한 과(C대 철학과 교수님들께서 인격적으로 좋으셔서 (진짠데))의 경우에만 그럴 수 있고, 다른 과의 경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질문은 크게 ~ 전형의 다섯 가지 중 부족한 면모를 커버할 기회를 주시는 것과, 생기부와 자소서에 있는 내용을 랜덤으로 질문하시는 것이 주였습니다. 즉 아래 대화를 참조하여 다섯 가지를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친구 말 들어보니, 그 친구는 너무 쉬워서 당황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려워야 더 좋은건데’라 불평하더군요. 친구야 그래도 너는 다섯 가지 부족한 거 안 말한 게 얼마니? 인가?)   저는 면접후기뿐만 아니라, 면접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도 여러분들이 알 필요가 있다 판단, 여기에 쓰겠습니다. 면접 준비를 하다보면 힘들 때도 많고 그렇지만 이 글을 읽고 후배분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원래 말을 잘 못했고 준비 시간이 단 이틀밖에 없었지만, 선생님들께서 지도해주신 이틀간 정말 많이 늘어 정말정말 많이 감사했습니다. 단기적인 결과는 단지 피드백일 뿐입니다.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건 국제고 3년이면 익숙하시죠? ㅋㅋ 여러분들이 정말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고, 자기 욕심이 아닌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거라면 결국 어떤 대학교던 당신을 채갈 거란 말입니다. 솔직히 3년간 우리가 한 게 얼만데, 다른 학생들과 아예 스타트라인이 다르지 않습니까? 안 채가면 자기네들이 손해죠... 여러분들이 ‘한 게 없다’고 회고하는 건, 여러분들이 그 일들을 충분히 잘 견뎌냈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쨌건 국제고 나와서 과탑 못하면 병1신소리 듣는다(실제로 어떤 선배께 들은 말입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대학가서 열심히 합시다.(결론이 왜이래?)   저의 경우 고려대는 12일(토요일)에, C대와 한양대는 16일에 1차합격자를 발표했습니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고려대의 불합소식을 보자마자 두통이 올 정도였고, 상당히 오래가 주말 전체를 버리다시피 했습니다. 한양대는 내신을 그닥 안본다고 해서 좀 기대했는데, 인문 전체로 뽑는 게 복병이었던지 탈락을 보고 (그 전보단 덜하지만)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대학 다 떨면서 확인했기에 충격이 왔던 거 같습니다. 어차피 결과는 이미 며칠 전에 나왔으니까 그냥 촐싹 떨지 말고

  • 터부의 벽
  •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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