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olor glasses
- 작성자 문학황제
- 작성일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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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olor glasses.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색안경을 끼고 누군가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한때 내가 좋아했던 여학생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이를 득득 갈며 그녀를 싫어하게 되었다.
사람은 변덕을 부릴 수 있는 동물이라지만 나도 좋아했던 사람을 순식간에 싫어하게 된 경험을 겪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안경을 쓰면, 한결 보이는데 편해지는 것처럼 내가 색안경을 쓰고 그녀를 보니 보이지 않던 단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색안경을 쓰면서 그녀를 보고 있는 중이다.
내가 그녀와 벽을 쌓게 된 계기는 3학년이 되는 올해에 같은 반이 되면서부터 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나도 그게 확실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어쩌면 지금 색안경을 끼고 있는 내가 적절치 못한 말을 내뱉고 있을지도 모른다.
2학년 때부터 3학년 초반까지는 그녀가 내 마음 속에, 머릿속에 남아있으면서 내 심장을 뛰게 했었다. 2학년 때는 복도에서 매일 그녀를 보는 게 즐거웠고 3학년 때는 그녀의 모습이 미화되는 안경을 쓴 것처럼 그녀의 말과 행동들이 내 귀에 거슬리기보다 전신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짜릿한 전율을 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를 나 혼자서 좋아하고 있어도 하루가 너무나도 행복하게 지나갔던 것 같다. 특히, 그녀가 내 짝이 되었던 순간에 마음속에 ‘우와!’라는 환호를 외쳤고 내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한 어떤 말 때문에 점점 나와 그녀의 거리가 멀어졌던 복선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그녀는 내가 열심히 공부했던 수학이 망친 게 기뻤는지 몰라도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것도 내 앞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사소하지만 또 그렇게 거창하지 않는 일 때문에 그녀를 좋아했던 마음들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그녀에게 기분이 나빠도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못한 게 아니라 금방 잊혀진 게 이유였다. 나는 나쁜 기억은 최대한 오래 마음속에 묻어두는 것보다 빨리 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히 잊혀진 기억이 아니었다. 사람은 억울한 기억은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게 나한테도 적용되는 말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때는 그녀가 나에게 급식을 받은 후에 부족하다면서 내가 받은 반찬을 달라고 했을 때였다. 그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부탁했고 웃는 낯에 침을 뱉기가 곤란하여 그냥 주고 말았다.
“너, 바보니? 왜 그걸 A한테 주는 거야?”
내가 그녀에게 반찬을 준 모습을 보았던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자존심이 상하게 되면서 그녀 때문에 사소하지만 상처받았던 일들, 기분 나빴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묵혀두었던, 그녀와 나 사이에 거리를 멀게 만든, 덩어리 같은 것들이 내 전신을 강하게 때렸던 것 같다. 주먹으로 어딘가를 얻어맞은 듯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통증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의 샤프 중 일부분을 망가뜨리게 되었다. 물론 필기를 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지만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이거 새로 사줘라.”
나도 미안한 마음에 학교가 끝난 이후 새로운 샤프를 사서 그녀에게 다음날 갖다 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을 뜻밖이었다.
“이거 진짜로 사 온 거야? 그럴 줄은 몰랐어.”
그렇게 태연하게 말하면서 샤프를 가져갔고 나는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내가 샤프를 부러뜨린 것이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래서 부러진 샤프는 내가 가져가고 새 샤프는 그녀가 가져가기로 했다.
며칠 후, 그녀는 내가 사준 샤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부러진 샤프와 바꾸자는 제안을 해왔다.
“아니, 샤프를 사달라고 해서 사줬는데 이제 와서 딴소리야.” 나는 나름대로 따져가면서 그녀에게 샤프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대신 과자 줄게. 그거 주면 안 될까?”
그 말을 하기 전에도 부러진 샤프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다.
어느 날 그녀가 과자를 가져온 것을 보고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그녀가 몰래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걸 꺼내서 애들과 나눠 먹는 거였다. 나는 처음에 그 과자가 내 과자가 아닌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과자, 약속한 과자가 맞는데....”
나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은 억울하고 분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가 얄미운 존재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나에게 색안경이 씌워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안경은 수시로 그녀의 단점과 그녀가 했던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과 행동을 세밀하게 보이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녀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그녀에게 말하기보다 나와 똑같이 그녀를 싫어하는 애들과 뒷담을 통해 풀기 시작했다.
뒷담은 때론 통쾌하기도 하지만 나와 그녀의 거리를 멀게 만드는, 나와 그녀 사이에 커다란 벽을 만드는 원인이 되는 존재였다. 지금도 색안경 때문에 계속 그녀의 단점들이 수시로 보인다. 그리고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그녀를 지금까지도 몰래 뒷담을 통해 풀면서 그녀를 싫어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가끔 색안경을 낀 내가 두려울 때가 많다. 누군가의 단점을 계속 보게 되는 것은 썩 좋지 않을뿐더러 누군가와의 거리와 벽을 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자칫 잘못된 짐작을 할까봐 두렵다. 그리고 내가 3학년 초반 즈음에 겪었던 오해도 누군가에게 씌어진 색안경이 한몫했을 것이다. 언젠가 색안경이 벗겨지겠지만, 색안경을 낀 나는 여간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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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황제
- 201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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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황제
- 201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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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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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학생 한 대 쥐어박고 싶네요. 미워요.
아 무슨 생활글에 다 공감간다고 해... 저도 참 인생 빡세게 살긴 살았나 봅니다. -_-;
흐으아... 어쨌거나 그 여자애랑 멀어진 건 잘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_- 진심으로요. 제가 여자여도요. 뭐 저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기에 (@@!) 공감갔구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