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글 5월 3주 주장원 발표
- 작성자 김보영
- 작성일 201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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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ment – 영너꿈
고요하고도 울적한 풍경이 흘러갑니다. ‘숲속’, ‘오두막’, ‘축음기’, ‘LP판’, ‘김광석’은 시간과 장소를 알 수 없게 하는 단서들입니다. 한국이 아니거나 현대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지만, 시적인 풍경은 ‘뭐, 어디든 상관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빠져들게 해요.
장소는 갑자기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드러납니다. 이곳은 호주였고 주인공은 뭔가 꿈을 찾아 온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쩌다 호주까지 오게 되었을까’ 하는 주인공의 심정은 독자의 심정과 거의 일치합니다. 호주는 기대하지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으니까요. 레스토랑의 묘사는 너무 없는 나머지 현실감도 오지 않아요.
쾅 하고 몽상에서 깨어나게 만들면서 현실을 결말에 배치하지만, 그 효과가 별로 없는 소설입니다. 결말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상황을 후반에 밝히는 것은 반전의 목적이 있을 때가 아니라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에요. 독자가 주인공의 상황을 모르고서는 주인공에게 몰입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주인공이 어디에 있는지 처음부터 밝힌 뒤에 주인공의 감정을 마지막에 배치했더라면 그대로 좋은 소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후회 – 늘볕
초반에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네요. ‘신입생들이 잘했는데 오만해서 대회 출전을 막았는데 계획이 실패해버렸고 다시 수습했지만... ’하는 긴 내용이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뭘 잘했고 뭘 봐서 오만했고 어떻게 계획이 실패했는지 보여주지 않아요.
보여주지 않고 말하는 소설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전부 보여줄 수는 없더라도, 그 중 하나는 독자가 체험할 수 있도록 장면을 하나 선택하고, 그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봐 주세요. 신입생의 오만함, 신입생들의 실력 성장, 분노하는 선배들, 퇴부하는 선배들, 그 중 무엇이라도.
주전명단에서 떨어진 내가 ‘녀석’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전반부의 서술을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썼다면 조금 구조가 나았을 것 같습니다.
* 복문을 줄여봐 주세요. 영어와 달리 한국은 서술어가 마지막에 나오기에, 복문을 쓰면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고 / ~며 로 이어지는 문장을 다 나누어 봐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훨씬 읽기 쉬워질 거예요.
* 세상에 글을 내보일 때 자만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자학할 필요도 없어요. 요리사가 식탁에 음식을 내놓으면서 맛없는 음식이라고 하는 건, 그 음식을 먹으려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예의가 아닙니다. 작가가 제 글을 사랑해줘야 남도 당신의 글을 사랑해줘요. ‘잘 써야 사랑하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사랑하는 게 먼저입니다. 우선 사랑해주세요.
슬픔에 대한 보고서 – 난니
슬픈 이야기네요.
실은 그 이상 할 말이 많지 않아요. 슬픈 이야기입니다. 제 감상을 말하자면 “다른 이의 슬픔을 알지 못하는 것이 슬프다”는 결론은 한편으로 맞지만, 그보다 더 슬픈 것은 자신의 슬픔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민정이가 “넌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해”라고 말했을 때 주인공은 슬픔을 느꼈고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슬퍼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네요. 게다가 민정이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잔인한 말을 쉽사리 할 수 있었겠지요.
저도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느꼈던 시절이 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저는 가장 슬펐습니다. 너무 슬픈 나머지 그 슬픔이 나를 죽이지 못하도록 막고 차단하여 자신을 지켰지요. 그때엔 잘 울지도 못했어요. 오히려 행복할 때에 더 잘 울죠.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라, 또 많이 슬픕니다.
주인공은 슬픔을 느끼지 못해도 작가는 느낄 수 있어야 할 거예요. 그리고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할 거예요.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그래주었다면 좀 더 깊은 이야기가 되었을 겁니다.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주인공이 동분서주하며 부질없는 노력을 하는 모습이 또한 애잔하고 슬픕니다.
무제 – 노송휘
짧은 이야기입니다. 몹시 불안정한 주인공이 등장하는군요. 인터넷이 잠깐 안 돼도 뭘 해야 할지 몰라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사람은 요새 은근 흔히 볼 수 있겠습니다만, 집에 책이 존재하는데 - 그럼 어쨌든 보려고 샀을 텐데 - 잠깐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평상시보다는 불안정한 상태라는 느낌을 줍니다. 이유를 알 수 있다면 좋겠군요.
서두의 주인공의 행동은 불편함을 주고 후반에서 주인공이 조금 후회해주면서 안도감을 주는 편입니다만, 아주 깔끔하게 안도감을 주지는 않아요. 소설로서는 기승전결이 약해서, 작가가 장면 하나를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내가 살았던 방 – 정우현
미숙이가 나와 헤어지려 했다가 돌아온 것인가 했다가 그게 아니라는 쪽으로 다시 결론을 내렸다가 다시 그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네요. 처음에는 충격요법이라고 생각했다가, 충격요법이라기에는 헤어진다는 말을 너무 확실하게 해서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가, 자세히 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같이 나누자’는 약속을 지킨 것이라 충격요법이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요.
‘잊어버린 것이 실은 둘 사이의 약속이었다’는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는 이야기인데도 헷갈리는 건 미숙의 방법이 좀 미숙해서(...) 인 듯합니다. 현실에서 이랬다간 진짜 헤어져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너와 연인은 끝이야’ -> ‘이젠 부부가 될 거야.’ 처럼 여지가 있는 말이라도 했다면 좋았을까요? 사실 지금도 생각이 왔다갔다 하네요. 집은 계약했으니 그냥 온 거고 정말 헤어진 걸까요.
그 외에는, 애인과 헤어져 화가 났다가 불안했다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마음이 내내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잘 전해지는 소설입니다.
슬리퍼 – LANIAL
화자를 사람이 아닌 존재로 설정했을 때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어요. 장점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지켜보는’ 관찰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단점은 결국 작가가 사람인 이상, 사람이 아닌 화자를 잘 표현하지 못하기 쉽다는 것이고, 결국 ‘관찰자’를 화자로 선택한 이상 보여줄 수 없는 면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이 미묘한 선을 잘 타기가 은근히 어려워서, 화자를 사물이나 짐승으로 한 소설이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만, 선을 잘 타면서 잘 마무리한 소설입니다.
일단 ‘먼지’라는 극단적인 존재를 설정해버리는 바람에 속성이니 뭐니 생각할 것이 없었어요.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여도 그런가보다 하게 되네요. 그리고 먼지는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합니다. 개입할 수 없는 존재지만 깊이 공감하며 지켜보는 것으로 내내 역할을 하고, 마지막에 적극적으로 도움까지 줘요. 먼지가 오랫동안 한 자리에 있었다는 건 청소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는 뜻이니, 집안이 엉망이라는 인상도 주고요.
작은 욕심을 내 보자면, 먼지를 아무리 의인화한다 해도 먼지로 설정한 이상 먼지로 끝나는 것이 좋아요. 먼지가 생각하거나 보거나 말하거나 들을 수는 있어도, 뇌나 눈이나 귀나 목은 없으리라는 걸 생각하면(소설에는 뇌, 귀, 목, 눈이 다 나와요.), 그 부분은 은근슬쩍 두루뭉술하게 해 주었다면 오히려 더 실감이 났을 거예요.
처음에는 아진이 컴퓨터중독인가 생각했다가 엄마가 예전에 부르던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슬픔과 동시에 작은 감동을 줍니다. 멀리 가지 않고, 볼 수 없는 것을 굳이 다 보여주지 않으면서, 집중을 잘 한 소설입니다.
*
주장원은
슬픔에 대한 보고서 – 난니
슬리퍼 – LANIAL
로 선정합니다.
*
자의건 타의건 일단 글을 쓰면 그 글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며 착각이다. 그런 글을 완성된 산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꼼꼼히 다시 읽고 수정해야만 하는 힘든 연습을 요구하는 초고일 뿐이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 경험 많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지 않고 출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여느 사람들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글쓰기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실수는 세심한 읽기를 통해 수정될 수 있다. 글쓰기 이후의 이 단계는 글쓰기 이전이나 글쓰기 단계처럼 중요하다.
수정을 반복할수록 글은 더 나아진다. 대작은 일필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비판과 수정을 통해 탄생되는 것이다.
http://bonlivre.tistory.com/447
기사 <글쓰기를 방해하는 잘못된 생각 10가지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4가지 조언> 중에서
(좋은 글귀라 써 두었는데 누가 쓴 건지는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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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원래 작년에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그만두게 될 예정이었는데, 제가 여러분 졸업하시는 것도 보고, 글틴캠프도 가고 싶다고 우겨서 좀 더 있었습니다. 부족하나마 작은 문학의 날 행사로 몇 분 뵙고 가서 기쁘네요. 그간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참으로 좋은 글 많이 보았고, 많이 감동받고 마음아파하기도 했고, 미래의 좋은 작가님들 많이 만나 뵈었습니다. 시작할 때도 제가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가르치셨고, 스스로 성장해가셨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습니다. 평을 받는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에 차지 않으실 때도 있으셨을 텐데, 늘 어른스럽게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학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 자신의 길을 가야 하지요. 또한 자신의 답을 믿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답을 존중하며 가야 하지요. 저는 제 생각과 원칙으로 임했지만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새 선생님이 오시면 저와는 또 다른 생각과 원칙으로 평을 하시리라 생각하며, 그것은 또 다른 형태로 여러분의 글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글쓰기는 꼭 작가가 되기 위해서만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에 좋은 일이라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든 계속 글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작은 문학의 날에 했던 저작권 이야기에서 추가 : : 짧은 시간이라 사실 다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말했듯이 아이디어는 저작권을 갖지 않고, 아이디어는 서로 오가는 것이고 서로 닮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아이디어가 비슷하다고 작품을 버리거나, 비슷하다며 비난하는 일은 다른 의미로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중요해서 저작권이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문화를 키우는 데에 필요한 기본 바탕이라서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재생산된다는 것을 믿고, 흔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자신의 진실로 대하며 만들어가세요. 그래서... 아이디어에는 저작권이 없고 표현에는 저작권이 있지만, 사실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요. 그래서 표절을 판단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종종 있어요. 그러므로 그때에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피해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글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밖에,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쓴 작품은 저작권이 없답니다. 이를테면 게임 회사에서 만든 게임 시나리오나 그림은 회사의 것이지요. 강의나 비평을 위한 인용 역시 허용되고, 법전도 저작권이 없지요. 죽은 지 70년 된 사람의 작품은 저작권이 풀리고요. 그래서 신데렐라나 셜록, 홍길동의 콘텐츠를 우리가 이용할 수 있지요. 그 외의 예외들이 있습니다. 저는 진짜 전문가는 아니니, ^^ 제게 들은 것으로 끝내지 마시고 조금 더 알아보세요. 대학에 가신 분들은 청강해볼
- 김보영
- 2016-03-01
2월의 월장원 후보는 프레티나 – 투또우 Live Forever – 투또우 난생의 기원 – 노송휘 내 친구 로빈울새 – 쐐기벌레 입니다. * 내 친구 로빈울새 – 쐐기벌레 프레티나 – 투또우 두 작품이 특히 좋았어요. 제 월장원 평이 없는 것은, 월장원까지만 와도 저로서는 명확한 논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선택하는 작품이 좋다는 것은 늘 확신해요. 하지만 떨어뜨리는 작품이 좋지 않은 건 아니죠. 모든 공모전이 또 그러하지 않은가 합니다. * 프레티나 – 투또우 를 2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축하드립니다.
- 김보영
- 2016-03-01
잠자리 대가리 - 탈퇴 회원 (이름이 바뀐 걸까요, 아니면 탈퇴하신 걸까요.) 글을 많이 안 써보신 분이 아니면 나이가 많이 어린 분 같습니다. 귀엽게 보기에는 무서운 글이네요. 비현실적인 상상을 한다 해도 논리가 없다면 의미를 갖기 어려워요. 일부러 비현실적으로 썼다는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곳에는 많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올라와요. 그것으로 점수를 깎지 않고요. 문장과 전개가 초보자 티가 많이 나서, 하직 뭐라 평가하기에는 이른 단계입니다. 지금 뭘 듣든 잘 귀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전반적인 연습이 많이 필요하니 집에서 많이 써 보세요. 친환경 캠프 - 탈퇴 회원 스마트폰이 없으면 이만한 재난이 일어나는군요. 앞 소설보다는 재미있게 보았어요. 이게 대체 어디까지 가려 그러나, 하면서. 글은 어린데 역시 귀엽게 보기에는 너무 무섭네요. 간혹 요새 어린 분들은 최초의 아이폰이 생겨난 지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는 생각을 해요. 그만큼 스마트폰이 가져온 세상의 변화가 지대하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보면서 지금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공기와 같은 물건일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쓰레기 먹는 카멜레온 – 맞봄 문장이나 전개는 연습이 많이 필요한 편이지만 이야기는 재미있어요. 쓰레기를 먹는 카멜레온이라면 확실히 사람도 먹을 것 같아요. 환경을 보호하려면 그게 제일이겠지요. 인간만 없다면 환경이 살아나는 건 순식간이라고 하지요.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곳은, 방사능으로 가득하기는 해도, 단지 인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고 하지요. 사실 쓰레기를 먹는 생물이라면 있어요. 미생물이라고... 단지 현대문명은 소독으로 그들을 척살하고, 그들의 활동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쓰레기를 내놓지요. 오염물질을 더 빨리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을 만드는 연구와, 미생물에게 더 쉽게 분해되는 물건을 만드는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단지 경제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다보니 그 분야의 투자가 필요에 비해 적지요.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을 먹고 죽어가는 새나 거북의 이야기가 많고도 많지요. 어쩌면 상상하신대로 언젠가는 그들을 먹고 사는 동물도 생겨날지 모르겠어요. 내 친구 로빈울새 – 쐐기벌레 오랜만에 다시 읽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전 소설을 생각하지 않고 이 자체로 다시 읽었어요. 거칠고 산만한 면들이 안정되고, 솟구치는 감정도 다듬어지고,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담담하게 슬픔을 관조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외롭고 슬픈 두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우정을 나눕니다. 로빈의 대화는 짧고도 간단하지만 화자가 위로를 받았으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화자는 마지막 만남에서 로빈의 자살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넘어가버렸고... 그를 돕지 못했다는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의 능력 -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으로 로빈을 구원합니다. 그 구원이 로빈 뿐 아니라 자신의 구원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같은
- 김보영
- 2016-03-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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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글은 '먼지'라는 단어에서부터 시작해서 만들어간 글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아닌 화자를 내세운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 먼지가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사람이 가진 신체기관의 대부분을 가진것은 아무래도 제 표현력 부족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두루뭉실하게, 모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래도 떠오르질 않았어요ㅠ 평소 글 많이 올리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주장원 된게 어리둥절해서 몇번이나 다시 읽어봤어요. 언제나 주시는 조언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 위에 닉네임에 오타가 난것 같습니다. 역시 처음 정할때 한글로 닉네임을 하는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아이쿠, 이런 실례를. 닉네임 수정했습니다. * 그냥 아주 작은 욕심이었어요. 실제로 어려워요. ^^ 예전에 저는 청각이 없는 세계를 배경으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의성어를 하나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했어요. 팔을 묶어놓고 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소리에 관한 관용어가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어요. 오래 퇴고했는데도 소리에 관계된 표현은 계속 나오더군요. 먼지는 구르거나 때를 묻히거나 달라붙거나 풀풀거리거나 벌레를 잡아 못 움직이게 하거나 버석거리거나 부풀거나 할 수 있을 거예요. 눈코입 없이도 생명력을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어차피 먼지가 말도 하는데 뭐 그 정도야 싶어서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어요. 그리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 자체는 문학적 허용으로서 자연스러워보였고요.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잘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