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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생, 혜은이에게

  • 작성자 늘볕
  • 작성일 2015-10-28
  • 조회수 782

혜은아, 잠시나마 연이 닿아 있었던 언니야. 네가 많은 고민을 했을 때에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거기다가 잊고 있어서 다시금 미안해. 너는 나와의 연을 이어나가려고 했건만.

전에 네게 적어 주었던 두서없는 말들이 기억이 나는지. 네가 가출을 했다는 것을 팀장님과 부모님의 통화로 짐작했을 때, 정말 놀랐어. 내가 센터를 띄엄 띄엄 나오는 사이 혼자 지쳐갔구나 싶었어. 나는 너무 오만하고 속 좁은 사람이었기에, 남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는 변명밖에 할 수가 없었지. 그 때 이런 말도 썼었구나,

'사실 우리가 알게 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다. 아는 언니로서라도 이렇게 아는 게 없다는 게 부끄럽다. 나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건만, 역시 나에겐 조금 무리였는지, 하하. 내가 많이 미안하다. 너의 과감한(!) 절친 신청에 확답하지 못한 것도 다 나의 두려움 때문이야.'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지금의 나는 너를 보듬어줄 수 있나.

아직도 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무책임하게도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건 도쿄구울의 카네키를 좋아하고, op인 Unravel을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하고 싶어했고, 센터 속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 뿐이다. 내가 학교를 나왔던 것이 너와 비슷한 이유였음에 너무 조심스럽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지친 마음에는 어떤 말이든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니까. 이렇게 네게 이런저런 말을 털어놓는 나도 이제서야 조금씩 힘이 나는데.

아마 그 때에도 이런 말을 했었나, 네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많은 성인들이 말하듯, 남을 미워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 마음에 생채기만 낼 뿐이라고.

전에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곳도 대안학교였고, 단단하지 못하고 맨날 찡찡대는 나와는 달리 그 분은 굉장히 강인하고 말도 잘 하는 선생님이셨어. 처음으로 날 알아주었다 할 정도로 나의 생각에 대해 잘 이해해 주셔서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느 날, 내가 학교와 연계해서 인턴 일을 일주일 간 하고 있었을 때였지. 인턴도 인턴대로 중요했었지만, 아는 사진작가 선생님께서 북콘서트에 초대하셨었거든. 그 사진작가분도 인턴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이셨고, 무엇보다 사진작가분들 중에 최고로 존경한다 말할 정도로의, 거의 팬이었지 아마. 난 북콘서트에 간다고 사전에 같이 학교를 다니던 언니들과 선생님께 얘기를 했고, 이틀 전부터 인턴으로 일하던 곳에도 빨리 끝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 날 북콘서트에 가려 지하철을 타고 홀로 향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냐고 문자가 왔다. 나는 억울한 마음에 사전에 이미 얘기를 다 해 놓았으며 이미 약속은 되어 있었고 일터에도 양해를 구해놓았다 해도 기억이 없으시더다더라. 나는 굉장히 화가 났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 말싸움을 했다. 북콘서트가 시작하기 전까지 분하고 억울해서 울 것 같은 얼굴로 있었지 아마. 시작 이전에 진정으로 축하를 못 해서 죄송하고, 그러면 또 그게 그 일 때문인 것만 같고.

그 날은 그래도 무난하게 지나갔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지. 선생님께서 어머니께 전화를 직접 드리셨다고. 사전상의도 없이 일터를 이탈했다고 말이지. 게다가 다음 날 출근을 했는데 그곳 담당 선배님들께서 어찌 된 영문이냐고 계속 물어오시더라. 가뜩이나 전 날 문자로 기분이 상해서 정말 크게 화가 났는데 아침에 그런 말로 이연타를 맞으니 없던 정이 더 떨어지더라고. 정말로, 정말로 화가 나서 그 뒤로 그 선생님 얼굴을 절대 보고싶지 않았어. 보기만 해도 주먹이 올라갈 것 같았고 너무 억울해서 눈물콧물 질질 짜다가는 할 말도 못하고 돌아올 것 같아서 학교로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한텐 그저 평범한 선생님도 아니셨고 정말 힘들었을 때에 같이 있어 주시고, 응원해주셨던 선생님이셨기에 배신감이 굉장히 컸다. 그동안 쌓아놓았던 사제간의 모든 것이 우르르 무너지고 나는 그 뒤로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어.

그 뒤로 반년 동안이나 그 선생님을 증오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갔고 미움만 잔뜩 쌓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모든 게 그 때문이었던 듯이 느껴져서, 미워하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지쳐 있었던 거다. 네 상황에 나를 투영해서 봤던 난 굉장히 한심한 사람이지만, 네게 조언이랍시고 말을 할 만큼 널 잘 아는것도 아니지만 그래, 네가 불쌍했다.

오만한 나는 너를 동정했다. 네가 같은 길을 갈까봐 동정했고, 일어난 사건은 나와 그 선생님과의 일보다는 내가 학교에서 겪은 충돌들과 비슷했을 것이지만 네가 남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 나는 무서웠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은 자신에게 더욱 힘든 일이니까.

당시 이런 말도 적었을 것이다. 너는 나같이 뒷담을 까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네가 그 말로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많이 부주의했다는 것을 느낀다. 도덕적 흠결을 떠나서 누구에게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동시에 평안을 준다. 나는, 네가 남을 내 앞에서 욕하는 것을 싫어했으면서 너의 얘기를 들어주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

결국 오만했던 것이다. 네게 뭐든 털어놓아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남의 욕이라면 안 된다니. 나의 도덕을 네게 강요해서 더욱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사람을 미워하면 힘들다. 그러니 '용서'해라, 라니.......

당시 내가 홧김에 자살을 시도했던 것도 네게 영향을 끼쳤을까. 나부터가 살 자신이 없는데도 남에게 힘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나조차 벗어나지 못한 걸 너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나. 나는 함부로 너와 내가 비슷한 상황이라 판단하고, 비슷한 입장에서 주변에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했던 건가.

말이 너무 두서가 없다. 지금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궁금하지만 너의 연락처는 바뀌었고 사람들을 점점 너를 잊는다. 하지만 혜은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꼭 뼈 굵은 놈으로 네게 갈게. 내가 네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저번과 같이 이 말로 말을 끝낸다. 힘든 일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는, 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네게 많이 미안하고, 후회하는. 이번에야말로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픈 지효정 언니가.

 

---

* 혜은이는 저와 같은 학교밖청소년 동생입니다. 녀석이 청소년드림센터를 나오지 않고 연락이 끊긴 지 상당히 되었습니다. 멍청하게도 이후로 잊고 살았는데 전에 그 아이가 가출을 했을 때, 놀란 마음에 카톡으로 휘갈긴 글들이 생각이 나 다시 보고 글을 써 봅니다. 혜은이가 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혜은이의 고민은 상당히 저와 닮아 있었어서, 혜은이를 생각하니 나와도 대화하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굉장히 한심한 놈이었어요.

 

늘볕
늘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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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의 친구

오늘은 만사가 귀찮은 꼬맹이의 친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꼬맹이의 인간관계는 그리 넓지 않다. 늘 얼굴을 맞대고 사는 세 명의 가족. 수백의 페이스북 친구 중 일부만이 서로 연락처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말 그대로 '방구석 폐인'의 삶이다. 단 하나, 녀석이 즐겨 돌아다니는 곳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온라인의 세상이다. 인터넷만 된다면 집 안이던 영 상성이 맞지 않는 바깥이던 접속할 수 있고, 조그맣든지 커다랗든지 가지각색인 기계 안의 훨씬 넓은 세상이 펼쳐진 그런 곳. 앞의 말을 정정한다, 꼬맹이의 인간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다. 그것은 우주와도 같아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끊어질 듯하다가도 이어지는 이상한 세계일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꼬맹이기도 하지만-그 꼬맹이는 바로 나다. 잉여롭게 글을 쓰고 있는, 나. 꼬맹이의 세계는 대부분이 온라인이다. 그곳에 빠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3년, 지금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다.   3년 전으로 돌아가야 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보일 듯 말 듯할 것 같다. 꼬맹이는 읽히던 책이 읽히지 않아 모든 걸 뒤엎은 상태였다. 이제 막 학교를 나왔다. 꼬맹이는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모른다. 꼬맹이의 세계란, 가족뿐이라서 외면당한다는 두려움은 더더욱 컸다. 거지 같은 멘탈은 조각조각 찢겨나갔다. 온라인은 꼬맹이의 도피처였다. 정말 안 좋은 상황에서, 불순한 이유로 더 넓은 세계의 기반을 다졌다. 혼란스러운 미래와 머리를 날려버리고 오직 놀기만을 위해서 존재했던 곳. 그야말로 인터넷 중독의 표본! 꼬맹이는 자신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싫어했다. 지긋지긋한 자기혐오. 생각하지 않으려 다시 도피하다가도 일탈을 마치고 돌아온 정신은 더욱 피폐해졌다. 오프라인으로 돌아가 다른 세계를 접해도 영 불편했다.   꼬맹이는 그 뒤틀린 세상에서 상당히 오래 버텼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었지, 진보란 오지 않았다. 하기야 제 발로 걸어오는 것이 진보인가. 그럼에도 지친 꼬맹이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하는 바람에 기대 있었기에 절망했다. 그리고 이내, 체념에 이르렀다. 꼬맹이는 현재의 꼬맹이를 자신으로 받아들였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그토록 두려워했던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시작했다. 그렇게 내몰려 시작된 체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무수한 생각을 하는 것보다 더욱 쉬웠다.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자신은 살아간다고, 비로소 자신을 사랑한다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꼬맹이가 죽기보다 싫어하는 체념이 꼬맹이에게 그런 경험을 가져올 줄은.   꼬맹이는 자신을 미워하기를 그만두었다. 못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퍽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뒹굴 거리며 저열하다 생각했던 욕망을 감추지 못한 것도, 미성숙함에 울던 일들도 모두. 그리고, ......그래- 온라인에 머무는 꼬맹이까지도. 뒤틀렸던 꼬맹이의 세상도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꼬맹이는 달라졌다.   자신이 싫지

  • 늘볕
  • 2015-12-07
하르방 커피

유치원에 다녀와 숙제를 하고 저녁을 먹기 전의 늦은 낮, 할아버지의 불이 꺼진 방엔 여기저기 담뱃불로 지져진 카펫이 깔려있고, 누워계신 할아버지는 켜져있는 텔레비전은 그대로 놔둔 채 솔솔 오는 낮잠을 거부하지 못하셨다. 마치 시 속의 표현처럼 나른한 공기는 마치 시간이 멈추어 나만이 움직이는 듯 착착하게 만들었다. 할머니가 당신의 댁에 계시지 않을 때며는 소리조차 사라져서 완전한 고요만이 찾아왔다. 나는 무엇을 했었나. 혼자 할 일이 없어 눈을 깜빡이다가 곧 할아버지 머리 맡에 드러누워 주변 사물을 이것저것 한참 관찰했다. 그러다 보면 꼭 곁에 빠지지 않고 다 드신 커피잔은 바둑판 위에 있었다. 하르방 커피. 나는 스리슬쩍 다시 일어나 커피잔을 들여다 보고, 전부 입으로 떨어지지 못해 남아있는 커피를 바라봤다. 또 냄새도 맡았다. 생각하길, 고여 있는 커피와 옆면의 말라붙은 커피 자국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먹다 남겼다 하여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한두 방울이나 될지. 뒤집어서 입을 크게 벌리고 기다리고 있노라면 머그컵 벽면을 따라 느릿느릿 내려오다 똑, 떨어지는 그 맛은 참 중독적이었다. 늦은 오후뿐만이 아니라, 나는 거의 모든 시간을 당신의 댁에서 지냈다. 청화백자 밑 서랍에 들어있는 것은 뭐든 다 알고 있었는데, 동전들도 짤랑짤랑 하며 날 반겼다. 자주 열어보아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죄송스러운데, 왜 그리도 염치가 없었는지. 서랍 덕에 군것질거리는 언제나 넘쳤다. 그래선지 딱히 먹고 싶다고 강렬히 원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대신 서랍 위에 할아버지께서 서성이다 올려다 놓은 하얀 머그컵의 커피는 왠지 꼭 마셔야만 했다. 그나마도 하르방 커피, 그 적은 양으로 참맛을 알 수 있겠나 싶겠지만 오히려 적은 양이라 단 것 좋아하는 나도 잘 마셨을 지도. 몇 방울 남지 않은 커피를 전부 마시려고 혹 방에 혼자 있던 날이면 혼자서 안간힘을 써 보기도 하였다. 그러다 지쳐서 씩씩대는 숨을 고르고 있노라면 커피는 어느 새 전부 말라붙어 아쉬운 마음에 그거라도 핥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와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의 커피잔을 계수대에 올려놓고 놀러 나갔다. 운이 좋은 날엔 할아버지가 마시는 커피를 쳐다보고 있으면, 마실래? 하고 내민 커피를 마셔 볼 수 있었다. 물론 많이 주시지는 않았지만 정말 맛있게도 받아먹었다. 하르방 커피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었나,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져가지고는 나중에는 아껴 먹으려고 조금 놔두었다가 결국엔 까먹고 다 말라붙은 커피를 보면서 울상이 되기도 했다. 하르방 커피는 특별한 뭔가가 있었나 보다. 지금 와서는 커피를 못 먹기도 하고 맛이 없기도 하고 이런 걸 왜 먹나 싶은데 어찌 그리 잘 먹었는지. 나는 이사를 왔고 당신의 댁은 더 멀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했나, 어쩌면 옛날엔 할아버지와 더 친구처럼 지냈을 지도 모르겠는데 할머님만큼 자주 뵙지 못해서 중간의 기억이 누군가 뚝 끊어놓은 마냥 더 빨리 늙어 보이는, 더 나약하고 낯선 당신을 보는 요즈음엔 앉아있는 당신

  • 늘볕
  • 2014-01-29
5.5개월 일기

    나는 지난 근 2년간 소극적이며 책임감 없는 생활을 해 왔으며 그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학원을 많이 빠지고, 숙제도 불성실하고 불규칙적이게 해 갔으며 어리광을 많이 피웠다.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의 교실이 '다같이 놀자'라는 분위기였다면 새로 올라간 중학교 2학년의 교실은 처음부터 파가 갈려져 있었다. 나는 중립이 좋았고 혼자가 편했다. 모든 아이들의 행동을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고, 그걸로 싸우는 것은 불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였던 것은 나의 '생각'. 내 입으로 말하기 참 그렇지만 나는 생각이 참 많았다.  그 '파'들의 신경전을 읽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경전을 벌이는 아이들무리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 기싸움을 읽어내고 대처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머리를 써야 했다. '그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나를 왜 끌어들이려고 하지?' 하면서. 이것은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1학년의 아이들은 처음에 이런 신경전이 있었어도 시간이 지남에 점점 희미해져 가 '다같이 놀자' 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학년은 신경전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1학년 때 잘 먹히던 방법을 쓴 것인데, 나는 어리석었던 것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력이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내 정신력의 끝을 맛보았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수업은 들리지 않고 아이들의 말에 신경을 썼다. 시끄러웠던 우리 교실은 그야말로 '신경전의 떡밥'이 폭포수처럼 흘러 넘쳤고 나는 그것에 신경을 쓰느라 당연히 수업 내용 자체를 듣고, 보고, 이해하고, 느끼는 데에 쓰여야 할 정신력을 나눠 준 것이다. 당연히 암기과목들의 암기력이 떨어지고, 그 과목의 흥미도 줄어든다. 또 흥미가 줄면 집중이 전만큼 될 수가 없다. 내가 나의 상태를 느끼고 자괴감에 빠져, 다시 학교를 나가 수업을 들으면 끔찍할 것이라는 생각에 무서워 학교를 하루 쉬면 못 들은 진도를 맞추느라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중간고사야 그런 일에 아직 견딜만 했으므로 정말 눈 딱 감고 무사히 반 1등으로 끝낼 수 있었지만, 기말고사 시즌이 다가오자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내 머릿속엔 온갖 당황스러움과 공포, 또 나에 대한 분노와 이런 생각에 대한 자책감 등이 섞여서 매일매일 둥둥 떠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편해지려는 마음에 부끄럽지만 엄마의 "학교를 쉬어 보는 건 어때?"라는 단 한마디에 매혹되어 홈스쿨링 안에 손가락 하나를 집어넣었다. 물론 처음엔 그냥 한 달 쉬어보겠냐는 얘기었다. 그러나 한 달 쉬고 난 뒤에 어린아이는 어떠겠는가. 낮시간의 자유라는 잊지못할 맛을  느낀 어린아이는 마음이 흔들렸다. 다시 힘든 곳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편한 곳이 좋아서 어리광을 부렸다. 한달 동안 학교를 쉬는동안 고민이 많은 엄마는 내 어리광을 받아줘야지 심적으로 편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말 직설적으로 말하면 자식이 부모를 이용한거다. 그래, 그 말밖에 쓸

  • 늘볕
  • 201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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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은이가 이 글을 꼭 보았으면 좋겠어요. 꼭이요..

    • 2015-12-16 16:48:1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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