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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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비평 근래의 사건들에 대하여월장원 선정
(멘토님은 끝부분 부터 보십쇼) 최근들어 벌어진 일련의 사건(분리해서 이해될 것도 아니지만 2개의 비슷한 현상이 간격을 두고 일어났으므로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은 글티너들에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당장 뒹글귕굴은 이 사안에 대해 다양한 접근이 제시되고 있고, 개중에는 다소 공격적인 것도, 또 그 반대의 성격을 띄는 것들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정치적으로 실존하는 문제들과 비교될 수 있다는 점이다(그중 다수를 필자가 직접 제시한 바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여러 현존하는, 그리고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고자 짧은 글을 남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파고들어보자. 2025년 6월 12일과 20일, 하루 최대 3-4개의 글이 올라오던 수필게시판에 10-20개 정도의 글이 올라왔다. 대체로 1000자 이하의 짦은 글이었으며 주제가 비슷했기 떄문에 조직적으로 올렸으리라 짐작이 되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정중 일부가 소속 학교를 명시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추적한 결과 글틴을 교육과정중에서 활용했다는 것을 찾을 수 있었기 떄문이었다. 몇몇 글티너들은 분개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항의의사를 표했다. 글티너들이 이를 불쾌하게 여긴 수많은 이유중 하나는 (화자님의 논지를 인용하자면) 글틴을 학생들에게 강제했다는 것이었고, 이 외에도 멘토님에 대한 부담이나, 월장원에 대한 저평가등 중요한 이유들은 더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사건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글틴에는 분명히 글틴의 홍보 차원에서 이 사건이 비단 부정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고도 주장한다. 문학의 보급 차원에서 이는 어쩌면 문학이 더 대중화되고 있고, 또 이를 통해 더 대중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멘토님에 대한 부담이나 문예위에서 멘토 인력을 확충하면 될 일이다. 역사적으로 가능했었음은 여러 군데에서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서 한가지 짧게 짚을 점은, 문학가로서 평범한 한 인간에게 문학에 참여하는 것을 권하기란 꽤나 난감한 문제라는 것이다. 문학은 잉여적 노동이고, 항상 그래왔으며, 또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소모적인 동시에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진부한 공격이긴 하지만 필자는 예술의 본질이 아마추어리즘에 있다는 데에서 한치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 이에 대해선 후에 다루도록 하고, 문학을 권함에 있어 문학적 창작이 대중화 되는 것에 대하여서도 그것이 마냥 좋기만 한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좋은 문학은 문학가의 수가 아니라 문학가의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이해에 인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더이상 글틴이 ‘우리’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생각해보자. 이번 건은 큰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다른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타났음에도 그에 대해 분석할만한 다른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개인적 수준의 단순
작성일 2025-07-29 작성자 기능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6상세보기 -
소설 뒷면월장원 선정
삼촌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몹시 슬퍼하셨다. 그해 여름 방학은 시름에 잠긴 아버지를 따라 삼촌의 집으로 향했다. 유족은 떠난 가족의 흔적을 모아 오는 막중한 임무를 띤다고, 칙칙한 옷을 입히던 가정부 아주머니가 그랬다. 그렇게 매년 떠나는 해외여행은 삼촌의 물건을 정리하는 침울한 유품 원정으로 대체되었다. 그곳까지는 차 안에서 질릴 때까지 졸고도 더 있어야 하는 먼 길이었다. 이전에 나를 데리고 방문한 적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정작 삼촌네를 찾아가게 된 날 나는 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는 옆태가 이미 독한 슬픔으로 젖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울어 버리겠다 싶은 불안감이 차를 모는 내내 공기를 꽉꽉 눌렀다. 삼촌은 과묵한 남자였다. 행동은 조용하고, 딱딱했고, 기분은 읽히는 법이 없었다. 만사 관심을 두지 않는 무심한 인상이었다. 감정이 굳은 근육으로부터 자유로운지도 의문이었다. 닫힌 채로 메말라 있는 삼촌의 입은 그런 궁금증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눈. 삼촌이 죽은 지금 괜히 무안해지는 감상이지만, 어둠으로 뒤덮인 그 눈에 스치는 순간마다 살갗을 걷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간의 눈이라면 자연히 서리는 정기가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묘한 인간의 표본이라 해도 좋았다. 아버지에게는 그런 삼촌이 참 존경스러운 형이었던 듯했다. 정확히는 이복형이지만, 둘의 관계에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버지에게 있어 관계의 출발선에 지나지 않았다. 삼촌도 나름 아버지를 아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 대의 복잡한 가정 형편 속에서도 여태 친분을 유지한 사이였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가끔 아버지가 삼촌의 미소를 옅게나마 자아내는 신비를 목격했다. 삼촌은 웃고 있어도 어딘가 쓸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떨어져 지내느라 삼촌이 형 노릇을 할 시간이 적었다고는 해도, 아버지에게는 따뜻한 인상을 남긴 일화들이 있을 터였다. 단지 그건 삼촌에 대해 내가 느낄 몫이 아닐 뿐이었다. 그날 오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삼촌의 집에 발을 디뎠다. 도착한 교외의 주택은 정갈하지만 단조로웠다. 주변의 생명이라고는 이파리를 죄다 잃은 비리비리한 나무가 다였고, 정면으로는 일직선 도로가 조용히 펼쳐져 있었다. 스쳐 지나가면서나 보고 말 지루한 풍경, 하얀 몸을 하고 옅은 햇살을 담담하게 받아내는 삼촌의 집은 세상으로부터 은신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위치 선정이 묘한 삼촌다웠다. 실내로 거침없이 들어서는 아버지를 나는 조심스레 뒤따랐다. 현관문 너머 일자로 곧게 뻗은 복도 끝에는 맨들맨들한 계단이 보였다. 마른 공기가 온 집안에 감돌고 있었다. 정말이지 생활감이 증발한 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계획이 있으셨던 아버지는 거실로 직행했고, 뒷모습을 끔벅끔벅 바라보던 나는 무심코 2층으로 올라갔다. 분업 정신이라도 발동한 걸까. 목적지는 삼촌의 서재였다. 삼촌이 읽은 책이나 사용한 만년필이 있으면 챙기고 싶었다. 서재 안쪽 벽은 창문이 넓게 나 있었고, 계단보다도 맨들맨들한 책상이
작성일 2025-06-30 작성자 지존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313상세보기 -
시 콜리플라워 부케월장원 선정
검은 원피스를 입고교회 맨 끝에서넌 콜리플라워를 쥐고 있다사촌 동생 웃고큰 고모는 인상을 찌푸리고왜 쟨 하얀 부로크리 들고서안심 스테키 없이 샐러드나 썰어먹으라고케일 양배추 브로콜리 콜라비 그리고 콜리플라워너 방식대로 자라온 뿌리는깊고 단단하다이제 뿌리를 뽑아부케를 높이 들어 던질 순간약지에 커플링 대신 오랫동안 굳은살 배긴 하객에게다음 신부 다음다음 하객
작성일 2025-06-27 작성자 윤선후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09상세보기 -
수필 《옥상 난간에 앉았던 날》월장원 선정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죽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게 언제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가 무너지는 소리만 들렸다. 숨 쉬는 게 괴롭고, 사람들 속에서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더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도 몰랐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내가 지금, 옥상 난간에 앉아 있다는 걸. 밤공기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딱 한 발만 내디디면 이 고통도, 내 존재도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발을 떼지 못했다. 겁이 나서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나를 진심으로 안아줄 누군가가 딱 한 사람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 작은 희망 하나가 내 몸을 붙잡았다.나는 결국 난간에서 내려왔다.그날 이후로 완벽하게 괜찮아진 건 아니다.여전히 불쑥불쑥 텅 빈 마음에 갇히고, 사소한 말에 울컥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넘긴 내가 가끔은 참 기특하다. 살아 있는 게 용기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선택이었다는 것도.죽기엔 너무 무서웠고, 살기엔 너무 벅찼던 삶.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그냥 살기로 했다. 어쩌면 그건 가장 나다운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한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조심스러웠고, 무서웠다. 그날 밤 옥상에 있었던 일, 내가 얼마나 끝을 생각했는지를 말하는 건 마치 마음을 찢어 내어 주는 일 같았다.하지만 그 친구는 조용히,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살아줘서 고마워.”나는 그 말을 듣고 울었다. 그 한 문장이 내가 살아낸 모든 시간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았다. 살아 있다는 걸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토록 큰 위로일 줄 몰랐다.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지금은 너무 힘들어도, 나중에는 정말 괜찮아질 거예요.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시간은 아주 조금씩 당신이 살아갈 이유를 데려다줄 거예요.당신이 얼마나 버텼는지 나는 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여기서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살아줘서 고마워요. 정말, 진심으로.
작성일 2025-06-26 작성자 박하윤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55상세보기 -
시 Sky Glow*월장원 선정
사탕의 겉면을 핥고 있으면달콤하고약간 씁쓸한 인공 오렌지 향감미료가 찬 물풍선만한 세계우리가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주황색으로 물들었지 별이라고 말해야만 별이 되는 별빛하늘이 너무 밝아 열대야의 어둠에 뺨을 대고 잠들면 오렌지 별빛이 쏟아졌어 그건 마치사탕을 오랫동안 녹여 먹으려는 것처럼살면서 한 번도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에 사탕을 두고 씹어본 적 없는 것처럼왼쪽 눈은 꼭 감고 두 손은 동그랗게 쥐고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고 자 쏘세요!그네를 타고 있으면 하늘이 영화 속 장면을 일시정지한 것처럼 다른 세계에 빠진 것처럼 또는 이대로 극장 밖으로 튕겨져 나갈 것처럼사탕을 깨물면이가 깨질 것 같아서...미안해아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니까 다 현실 같았지여름에는 인공위성에게도 별자리를 붙여줬어이름표를 하나씩 대어주니 보기가 좋았어구멍이 생긴 사탕이 입천장에 붙었어손바닥에 뱉어 두니 투명하고 작은 설탕 덩어리가 왠지 안쓰러웠어여름이 조금씩 작아질 때별이라고 부르자 정말로 밝아지는 꿈을 꿨다*인공 조명으로 인해 밤하늘이 밝아지는 현상
작성일 2025-06-18 작성자 방백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44상세보기 -
시 어떤 부지런함의 양태월장원 선정
어떤 부지런함의 양태 나뭇잎은 인적 드문 산에서 떨어졌습니다 유수는 흐르고 돌 사이를 지나서 아팠나요 찢어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순간 가라앉았습니다 맑은 물이었습니다 그늘이 지켜보고 있군요 이제는 찾기가 요원한 잎의 다른 조각도 운명을 같이 합니다 부지런히 부지런히 사랑을 하고 “차가워!” 물장구치고 친밀한 발들에는 방향이 없네요 서성이고 헥헥대고 수박을 스쳐가는 물살도 있었습니다 그런 피서의 풍경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아무튼 좋아요 구름 한 점이 바람처럼 부는군요 어떤 초록의 뒤를 지나는 중입니다 눈이 부셔서 더는 쳐다보기가 힘들어요
작성일 2025-06-12 작성자 사인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04상세보기 -
시 먼 곳으로 여행하기월장원 선정
열 여덟의 여름에 발이 더러워졌다 모래와 흙이 놀이터에서 끝나지 않고 신발 속에서 몸이 터지며 따라온다 친구들이, 한 줄로 서서 움직인다 기차놀이를 하고 있다 우리의 출발지는 가까운 곳이고 놀고 있는 놀이터고 우리의 정착지는 먼 곳이고 뿌연 창문 사이 보이는 지하터널이고 언젠가부터 모래가 비에 젖어, 어린 나처럼 내 발에 붙어 다닌다 기차 출발하기 전에 몸을 움직여야 잡히지 않는데 {몸이 일어나야, 욕먹지 않는데} 문 사이를 통과하기 전까지 내 물음을 모래에 기입 한다 신발에 묻은 모래를 몸으로 짓누른다 먼 곳으로 향하는 열차가 곧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정거장 하나를 지나고 먼 곳에서 출발한 열차가 가까운 곳을 향해 가까워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전철을 향해 다가간다 발을 문틈에 넣어 문에 물을 묻힌다 탈선으로 향한다 발을 문틈에 넣지 말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문이 닫히고 더러워진 발이 무릎까지 퍼진다 또 넘어졌다 열여덟의 여름에는 장마가 심했고 어린 내가, 물에 젖어 있고 빨리 잡혀, 멈췄다 탈선했다 나와 친구들은 탈선하는 여행을 했다처음 가는 곳으로 더러워진 것을 떠나며 모래 위를 돌며 기차놀이를 한다 모두 한 줄 위에서 먼 곳으로 떠나고 그 자리에서 탈선하고 어린 모습을 밟으며 즐긴다 나를 달아난다 어린 나를 놀이터에 버리고 나는 탈선한 뒤 기차로 먼 곳으로 향한다 어린 나는 놀이터에서 터널로 이동하고 내가 탄 기차는 어두운, 정거장을 지나고 끝 칸에서 앞칸을 향해 나아간다
작성일 2025-05-30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95상세보기 -
수필 여름 에어컨 아래서월장원 선정
따사로운 햇볕은 들어오시되, 후끈한 여름 공기는 환영하지 않아요. 창을 닫고 커튼을 엽니다. 선풍기로는 부족할 테니 간만에 에어컨을 틀어볼까요. 이제 산뜻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겠어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온몸이 나른해져요. 주말이라서 그럴까요. 여름이라서 그렇다고요? 이유가 있기는 한 걸까요. 돌이켜보면 어느 계절이건 이불 속에 파묻히고 싶은 날들이 있어요. 오늘은 채광이 참 좋네요. 하늘이 맑아요. 이렇게 좋은 날, 언제나처럼 공원을 산책할 엄두는 나지 않습니다. 가을이었다면 나갔을 텐데. 어림도 없는 상황을 가정하며 의자에 앉아봅니다. 닫힌 창틈으로도 음악 소리가 새어 나와요. 항상 같은 노래, 보이지 않는 분수마저 그려집니다. 흩날리는 물방울을 맞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사뭇 그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요. 나라면 쉽게 나아가지 못할 자리에서 누군가는 미소를 띠네요. 여름이 선사하는 해방감. 그 웃음이 부러워요. 온도와 습도를 확인한 후에도 목적 없이 SNS에 접속해 봅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모두가 같은 나날이에요. 속으로 몇몇 친구의 안부를 물어보다가 무의미한 걱정인 걸 알고는 핸드폰을 덮습니다. 이토록 자연이 밝은 날, 반짝이는 화면은 어울리지 않아요. 자연스레 책장으로 향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만의 세계입니다. 대부분 소설이에요. 작은 책장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잠들어 있을까요. 그곳에 내가 있을까요. 무심코 책을 꺼내어 작가의 말을 읽습니다. 이야기는 허구여도 그들의 말에는 꾸밈이 없어요. 모두가 진심을 다하고 있어요. 가볍게 읽기 좋은 책 하나를 들춰봅니다. 작가의 말이 길어서 좋아요. 아껴두었다가 소설을 마치고 천천히 곱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재작년 겨울에 읽었던 책이에요. 소설의 배경은 봄입니다. 어째서 아무것도 들어맞지 않을까요. 상관하지 않습니다. 침대로 향해요. 베개를 둘 쌓아 올리고 살포시 이불을 덮습니다. 에어컨을 거쳐 간 이불이 맨살에 닿는 느낌이 좋아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촉입니다. 괜히 두 다리의 모양을 자꾸만 바꿔봅니다. 다리를 반쯤 접고 책장을 넘깁니다. 연두색 속지가 마음에 들어요. 마치 봄인 것만 같은 여름입니다. 짧은 소설은 금방 읽어요.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오후의 햇살이 조금은 약해집니다. 작가의 말이 쓰인 시점은 9월입니다. 아무것도 들어맞지 않지만,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간 듯합니다. 봄과 가을 사이에 잠든 여름을 깨워봅니다. 꿈만 같아요. P.S. 제가 좋아하는 여름날을 그려보았습니다. 반쯤 허구라는 소리에요. 2025. 05. 25
작성일 2025-05-25 작성자 아기호랑이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98상세보기 -
시 미래의 얼굴월장원 선정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미래의 물 빠진 청바지와 다 헤진 가죽 장화와 물방울무늬 머리핀에 대해서. 미래가 가지고 있는 여러 색의 모자와 미래의 힘 있는 춤에 대해서. 나는 미래가 걸어갈 때 미래의 등 뒤에서 장마 직전의 흙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미래가 우산을 들고 맑게 갠 하늘이 든 웅덩이를 때릴 때 물방울에서 빠져나오는 어제 저녁의 먹구름 냄새도 맡을 수 있다. 그럴 때 책상과 의자는 습기를 먹어 흐물거리고 겁먹은 우리 양말 속 애벌레가 어디로 갔는지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나는 척추를 마디마디 말아 천천히 미래의 몸을 안으면서 미래를 통해 우리 학교 바깥의 산을 볼 수 있다.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은 유리벽이 낮선 동물을 비춘다. 미래가 산으로 걸어들어갈 때 나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통통 퉁퉁 빵빵 자동차 경적 야산으로 향하는 우리의 스텝을 막아선다 그러면 나는 소리를 가볍게 툭 차버려야지. 미래야. 미래가 방글방글 웃으면서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다 헤진 가죽 장화를 신은 채 탭댄스하는 영국 신사처럼 우산을 빙글빙글 휘두른다 나는 미끄러운 이면도로에 미래와 나의 둥근 모습을 조금씩 흘려두고 탁타다다닥 탁다라닥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미래의 투명한 유리몸처럼 깨지기 쉽게 달려간다.
작성일 2025-05-23 작성자 방백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05상세보기 -
소설 부재와 잔재월장원 선정
* 그녀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 모르는 사람을 보면 울어버리고는 한다. 그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녀는 오랜 시간 목 놓아 아빠를 불렀다. 그녀의 인생이 영화였다면 내가 너의 아빠라는 어떤 영화의 명대사가 그들에게는 일상일 것이다. 그녀가 조금 컸을 때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병원에 데려갔다. 그녀는 엄마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두 손 사이에는 무엇도 흘러나갈 틈이 없었다. 그날 오전에는 비가 왔고 그녀는 빨간 장화를 신었다. * 나는 아직 그날을 기억한다. 모르는 남자가 왼쪽에 있는 방에서 나왔다. 그 남자는 아침밥을 먹을 때도 나의 왼쪽에 앉아서 내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흰밥 위에 스팸을 올려줬으니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엄마는 방에서 나와 나를 보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신발장에서 빨간 장화를 꺼내주었다. 그동안에도 남자는 나의 왼쪽에 서 있었다. -엄마, 우리 어디가?-우리 딸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지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러 갈 거야. 바람이 세게 불어서 엄마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렇게 믿었다.병원은 실내라서 그랬는지,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특별히 발견된 이상은 없고…. 한마디로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 나는 건강한데 왜 울어? 엄마의 손에는 보라색 편지지가 있었고, 점점 구겨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나도 같이 울었다. 나는 아무것도 믿을 게 없어서 옆에 있는 남자를 보면서 울었다. -아저씨, 엄마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는 울지 않았고, -아저씨, 우리 엄마는 내가 건강한 게 싫은가 봐요. 나는 더 크게 울었다. 벌써 그 일도 10년 가까이 지났을 터이다. 내년이 지나면 10년인가, 오래된 기억은 꺼내볼수록 닳아서 나는 햇수를 세지 못했다. * 아주 오래전,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여름이 오면 그가 누워있는 곳을 찾아가 묻곤 한다. 우리가 약속한 영원은 언제 오느냐고.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당신이 먼저 오면 좋겠다고 말이다. 자주 꺼내보는 것은 닳는다. 그가 나에게 청혼할 때 주었던 보라색 편지도 닳았다. 학창 시절을 보내며 나는 그 흔한 연애 한 번 못 해봤다. 나에게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너무 많았고, 사랑은 다 거짓말 같을 뿐이었다. 친구들을 보며 알았다. 웃고, 울고, 붙잡아도 그들의 손에 남는 것은 없었고, 다 사라졌다. 설렘도, 기쁨도, 슬픔도, 상처까지도. 그런 게 사랑이라면 너무 과대평가 받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신은 나에게 벌을 내리셨다. 그와 나는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우리는 매주 신비로운 현상들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터무니없는 가설을 세우고 터무니없는 실험을 했다. 대학생들이 하기에는 유치해 보였지만, 그중 진심으로 임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하루는 그가 죽은 자의 혼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열변을 토하며 그의 가설을
작성일 2025-05-15 작성자 하늘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384상세보기 -
시 여름 연명월장원 선정
큰 벽이 있었어어느샌가부터큰 벽이 있기 전을 회상하는 것은 어렵다 큰 벽의 표면에는 몇 겹의 먼지가 쌓여 있었다 자화상이 서툰 솜씨로 음각되어 있었다 오래된 명언이 쓰여 있었다 과거는 실로 중요하지 않다지만과거를 지우는 사람이 없었기에깨진 계란들과 돌, 약간의 피는 어느새 되져 있었다 지나친 시간만큼 단단하도록그럼에도 큰 벽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코 부식되지 않았다헛건반질에 조금은 닳았을 모서리는 예외로 두자큰 벽의 부동심에 대해아는 사람은 적었지 모두는 이웃과 싸우느라 바빴고.큰 벽이 있기 전에 나무들이 있었다고 한다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나무들이 있었지 나무들은 서로에게무슨 말을 나누어 주었을까작게 보면 폭도이고 멀리 보면 폭포일 물방울들처럼운율로 대화를 나누었을까운율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 역시 적었지 우리는 모두 여러 방향으로 뛰느라 바빴다그럼에도 결국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오는 성질귀소본능?어쩌면 나무들의 소리는 애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회고는 너무 늦은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무들은 서로를 완전히 옥죄어 둥지를 이루었고 한날한시에 사라져 버렸다지 어느샌가 멈춰버린 빗방울처럼.세상 모든 나무는 죽어버린지 오래이지만세상은 계속 돈다 돈다나는 방문을 활짝 열었다묘비명을 새겼다 뿌리를 내렸다어느 여름날의 오래된 이야기, 어쩌면 오랜 꿈,깨진 계란들은 어느새 적란운으로 만개해 있었다,
작성일 2025-05-14 작성자 강완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5상세보기 -
시 UFO가 안 보이세요? - 등굣길 3월장원 선정
안양역 1번 출구로 나오면 횡단보도 없는 회전 교차로 한가운데 불시착한 UFO 하나가 박혀 있다 버스와 택시가 의식을 치르듯 그 주변을 돌고 의식에는 항상 제물이 필요하지 사람들은 홀린 듯 버스 정류장에 다가와 툭 고개를 떨어트린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반대쪽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없는 거야 나중에 친구와 같이 왔을 때서야 지하상가를 통해 건너야 한다는 걸 알았어 지방에는 지하상가가 별로 없거든 저 UFO의 주인은 어디 있는 걸까 그 주변 잡초가 항상 정리되어 있던데 크리스마스에 트리까지 세우는 걸 보면 벌써 이곳에 적응했나 봐 난 아직 인천행과 서동탄행이 헷갈리는데 며칠 전에도 관악역 방면에 서있던 걸 친구들이 끌고 와 데려다줬어 한 아이가 UFO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게 뭐냐고 묻고 있다 옆에 있는 엄마는 그저 조형물이라고 한다 아이는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표정으로 UFO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허, 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UFO의 주인인 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다 하나 같이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그것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 저게 조형물이라면 달달 외워야 했던 지하철의 노선도 그 복잡함도 가짜여야 할 거야파릇파릇한 이파리가 UFO 주변에 자라나는 여름 나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작성일 2025-04-30 작성자 카페라떼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3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