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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이해

  • 작성자 데카당
  • 작성일 2024-04-01
  • 조회수 144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는 부럽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왜 날 수 없는지, 왜 바닥에 눌어붙은 곰팡이로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꾸릿한 내 냄새를 맡고 싶지 않았다. 

남이 맡을 내 냄새를 생각하면 머릿가죽이 팽팽하게 당겨와 무언가 빠져나가려는 것인지 묻고 싶어졌다. 

그러나 누구에게? 누구인들 내가 머리에 품은 팔라스가 누구인지 알겠냐고 의심이 든 순간 통증은 사라지는 것이다.


새들이 박차고 날아오른 자리에서 곰팡이는 주변을 갉아먹어야만 하루하루를 견뎌나갈 수 있다. 

주변을 야금야금 긁어가고 아직 긁어가지 못한 것들에는 더러운 침을 흥건히 적셔놓는다. 

곰팡이의 주변에는 곰팡이들 밖에는 없게 되어있다. 

깃털에 매달리는 포자에서 본 광경은 그저 포자 하나의 눈으로 본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지옥에서 빠져나와 연옥을 나아가는 사람의 시선과 같은 것이었으니, 보도블럭에 누워있는 새와 나선을 그리며 다가오는 새하얀 물결은 곰팡이를 잠깐쯤 띄워버리는데 성공했다. 

언젠가, 언젠가 그 날은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 날을 위하여 곰팡이는 최선을 다해 포자를 날리고 깃털을 붙잡으려고 하고 알 껍질 위에 서 있기도 한다.


이제는 알고 있다. 새는 하늘을 날지 않는다. 

새는 하늘에서 배를 깔고 꿈틀대며 기어다닌다. 

매인 하늘과 매인 새는 그러므로 나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이 감응하고, 천인의 감응이 새의 노를 짜내었다. 

노에 붙은 포자가 자라 따개비가 되고 돌아와 하늘에 붙어다니는 게으름뱅이의 이야기를 전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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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카당
  • 2024-04-15
현재를 말하기

미래를 말하는 사람은 현재에 산다 과거를 말하는 사람은 현재에 산다 현재를 말하는 사람은 현재하지 않고 현재에 사는 사람은 언젠가 현재를 중얼거렸다 현재에 앉은 사람은 봉을 잡고 실존을 외쳤다 현재를 걷어찬 사람은 침대에 누워 옹알댔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은 매트에 누워 베개에 이마를 댄 채로 공허한 눈을 검정 바탕에 고정한 채 공허한 말들을 공허하게 두드리고 있다 미래를 말해봤지만 재미가 없다 과거를 말하려 했지만 기억이 없다 현재를 말하기엔 생각이 늦어버렸다 현재를 말하기의 어려움을 아시려나 현재가 무엇인지 아시려나 크기가 없는 유령을 아시려나 현재를 말하는 사람이 없었음을 아시려나 과거에 등을 붙이고 앉아 미래로 햇살을 가리고 현재를 말하기 위해 뻐끔뻐끔 연습해본다 지조.마취.절개.할복.

  • 데카당
  • 2024-04-14
경작지침

밭 가는 사람의 눈에 비치는 세계는 참으로 쉬워서 한숨이 푹푹 나오고야 만다 푹 찌는 더위는 적당히를 모르고 날뛰는 개의 혓바닥을 보는 듯 눈이 아려오고 일렬로 누워서 뻥 뚫린 구름이 울럭울럭 비워내는 장마는 인내심의 본을 들춰낸다 장마가 들춰낸 흙에 섞인 비료며 씨앗이며 잔뿌리며, 아 비료는 쓰지 않았던가 그렇다, 비료는, 음, 아무래도 쓰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여기가 개가 핥은 곳이니 이곳을 기점으로 생산자와 조합원은 쩍 갈라지고 만다 두엄을 보고 노곤해하는 식곤증 보유자와 단말마를 마디별로 내어놓는 이 중에서 그대가 고른 이로만 보아야 밭을 갈 수 있을 것이니, 저기 지나가는 구름, 방금 구멍이 숭 뚫린 저 구름에 대고 신서해보라 거리를 떠도는 개야, 전봇대에 줄줄이 꿴 제비야, 솔나무에 탁란한 참새야, 내 신서를 받아적어 저어기 지나간 무너져가는 구름에게 전해주겠느냐, 도마뱀아 잘린 꼬리를 잘 말아 쾅쾅 두들겨 편 곳에 적어서 날려주겠느냐, 직박구리야 그 입을 조금이라도 다물고 내 신서를 대신 읊어줄 수 있겠느냐, 방해물들아? ;구름을 담보로 삼아 신서하노니, 구름은 이 글을 전달받았든, 이 말을 전해들었든, 이 장면을 직접 들었든, 허물어진 빗방울에 꾹꾹 눌러쓴 대답의 신서를 전해다오 도마뱀의 꼬리를, 직박구리의 목소리를, 참새의 목탄 화장을, 제비의 흙집을 담보로 삼아 신서하노니, 그 대답의 신서에는 한치의 불신도 포함하지 않았으면 하누나 신서가 끝났으니 그대의 의무를 행함에 있어 땅을 믿는 것과 같이 믿어버리도다 신서의 효력을 입증할 구름이 비를 왈칵 쏟아내고 허물어지거나 지나가버린다고 해도 그 유효성을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구름이 쏟아낸 비가 흘러 흘러 도착한 호수, 강, 바다, 물고기를 내가 먹었으며 지나간 구름은 작별과 함께 나에게 모든 권한을 양도했나니, 곧 신서의 보증인은 나다! 이와 같은 신서 보증인의 자동 양도를 그대가 땅을 믿는 것과 같이 믿어버리도다! 이제 땅은 몰래 들여온 양도의 성질에 통달하여 바라지는 수확을 내놓지 않을 것이로되, 이와 같은 변심이 한 순간의 일이니 밭 가는 사람의 세계에서는 줄톱으로 갈아낸 톱밥을 충전재로 쓸 수 있으며 신서는 그 효력이 사그라듦이 없어야 한다 푹푹 나온 한숨은 밭을 갈지 못하는, 선반에 구르는 녹슨 괭이같은 내가 뱉는 광성 녹물을 찍어 신서를 보증할수도, 밭을 갈 수도 없는 이 몸이야 더 녹슬어 무엇하리 탁란한 참새를 튀겨먹고 새끼로 꿴 제비와 개를 팔든 말든 이 나는 무엇을?

  • 데카당
  • 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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