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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의 나무

  • 작성자 데카당
  • 작성일 2024-05-15
  • 조회수 161

달 없는 하늘, 좁은 천이 흐르는 길에 돌이 서있다

천에서 빗겨나가 무릎으로 기어온 돌이 서있다

천이 흘러나오는 까진 무릎 위로 돌이 서있다

땅을 짚은 무릎에 아침놀이 비쳐온다

무릎을 잡고 데굴데굴 굴러 다시 천으로 들어가자

흙탕물로 상처를 씻어내자, 딱지를 뜯어내자

천에 앉은 딱지가 쌓여 투명한 혈장이 방울방울 내린다

천에 부러 내려앉은 자갈은 천이 부럽다

분쇄기에 몸을 던진 자갈은 갈라지는 몸에서 나무를 본다

나무는, 천의 발원지에서, 잘도 뿌리를 내렸더랬다

돌은 달을 가린 나무를 들이박았더랬다

돌의 무릎에서 천이 솟아 쓰러진 둥치 위로 흘러갔더랬다

박살난 돌은 자갈로, 흩어진 자갈은 모래로, 모래는 바닥에

찢어진 십자인대에 조의를 표하는 눈을 모래가 찌른다

찔끔 나온 눈물만큼의 조의가 무릎에 살포시 내려온다

웃다가 웃다가 나온 눈물도 웃는 낯을 가졌다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눈을 하염없이 비벼 벌겋게 만들어야지


그래서, 누구를 위한 조의란 말이야?

나무 둥치를 위한거야, 네 무릎을 위한거야, 모래를 위한거야?

어느 쪽이든 웃겨 죽을 것 같은 꼴에 뭐라고 할지 모르겠네

아니, 뭐, 무릎은 조금 아파 보이긴 하지만, 소독이나 하면 뭐

둥치는 빨리 치웠으면 좋겠다, 길을 언제까지 막을거야

여기 공도 아니야? 담당자 나오라 그래! 이거 언제 치워!

모래도 이게 뭐하자는 거야? 모래라고 써있기는 한데,

언제부터 돌이 깨져서 나온 걸 모래라고 한건데?

웃기려고 했으면 잘했어,

아니라고? 네가 놀리는 입이랑 돌중에 뭐가 더 빠를까?

사고실험 검증하기 전에 그만두는게 좋을걸

그리고 넌 뭐야? 왜 여기서 계속 알짱거려?

헛소리 할거면 저기 천에 다이빙이나 한번 해


광대에게 조리를 요구하는 짓은 끝날줄을 모른다

헛소리와 지성이 투닥대면 비웃음이 이길 수밖에

날아온 돌을 맞고 쓰러진 방해꾼에게는 야유가 쏟아지고

당황한 광대는 주춤주춤 떠나가다 자갈을 조심조심 챙긴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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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동당동당 울리는 파문이 열기에 사그라드는 여름날 하늘에 떠오른 도시와 푹 꺼진 상추 이파리 해가 도시를 좋아하는 것일까, 상추를 가리는 것일까 도시로 내려앉은 해는 거리를 누비며, 시장도 기웃거린다 모종에 얼굴을 들이밀어 한철의 시작을 망치기도 하고 씨앗을 핥아 터뜨려 보기도 하고 해는, 천천히, 조용히, 그리고 뜨겁게, 거리를 쏘다니나니 도시는, 열렬히, 성대하게, 식어가나니 이것이 나의 믿음인데, 하기야 뿌리도 없으니 그저 믿음이다 식어가는 도시는 시끌벅적한 냉기와 함께 내려가면 어떨까 까치가 깃을 치고, 푸른 까치가, 꽁지도, 까닥대며 치고 가로등 노란 불에 땅강아지 헤엄쳐 가는 때 해가 도시에 왔었는지도 헷갈려지는 때 차가운 도시는 달을 짚고 내려오는 것이 좋겠다 떠나버린 해는, 못다먹은 상추를 뒤늦게 떠올리나니 상추는, 뿌리가 깊어, 올연히, 그래도 비굴하게, 허리를 펴나니 해가 떠난 상추의 척수로는 서리가 박인다 상추는 허리가 결려, 누우려 하건만, 꼴에 접히지 않는다 바삭바삭 언 허리는 바그작 바그작 씹는게 어떨까 진딧물이 침을 박을수도 없는 허리는 부수는게 어떨까 길을 되짚어온 해는, 진딧물을 보고는, 상추를 뚝 분지른다 아니, 흐물흐물해진 허리는 다시 접힌다 진딧물은 척수를 찢어 침을 박고, 무당벌레가 날아든다 돌아온 해는, 조금은 식어, 낯빛을 드러내나니 까치는, 푸른 깃을 잃고, 흰 깃에 먹물이 드리우나니 꽁지만 남은 까치는 해에 붙은 진딧물을 잡고 오색오형 선무당이 타는 작두도 삼킨 채 가지 위에서 까닥까닥 잘도 털어내는구나 도시의 회전 교차로에서 해는 잘도 비석을 오른다 비석을 문지르는 해의 뺨도 광이 나고, 낯빛을 뭉갠다 까치도 눈이 부셔 고개를 돌리고, 돌아온 푸른 깃을 비비댄다 해는, 잔걸음으로 달려와, 도시를 말아올리나니 도시는, 아래로도 늘어져, 추하게 흘러내리나니 검은 막에 담겨 자라난 상추 모종과 같이 먼지로 꾹꾹 눌러담은 진딧물과 같이 딱딱하게 굳은 회전 교차로의 순환률과 같이 해는, 허리는 꼿꼿이, 골반은 접어서, 베개 위 앉는다

  • 데카당
  • 2024-05-18
봉우리의 시선

구르고 굴러 도착한 봉에 텅 빈 눈들이 돌과 나무 사이 빼곡히 자랐다 구름 위로 솟은 봉의 빛이 들지 않는 험지에서도 눈들은 잘도 자라난다 여기저기 흘깃대는 눈 탓에 일찍이 등반을 포기한 바람이 끌려왔다 시선에 얼어붙은 바람이 엉금엉금 소나무 위로 도망가니 친구를 잃어버린 자갈이 강판에 갈려 뾰족한 얼굴을 쳐들고 엉엉 우는구나 얼굴을 갈아버린 친구가 끌려가는 줄도 모르고 친구에게 버려져 우는 꼴을 보고 오랜만에 피가 도는 눈들은 누구의 몸에서 떨어졌기에 이러는 것인지 덜덜 떠는 눈들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휙 돌아본 구멍들에 시선을 뺏기고 덜덜 떠는 것은 우는 것에 가까운 것이겠지 피가 발바닥에 모여 아우성치는 심정을 느끼지 못하는 눈들은 시선을 돌리지 않는데, 비쩍 마른 심장의 근섬유들이 비명을 지르며 수축한다 알았다, 저 눈들도 여기에 굴러 도착한 몸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쓰러진 몸, 관성으로 굴러나온 눈들이 태양을 피해 그늘까지 질척댄다 부끄러운 심정이 마를까 두려워 서둘러 도망가지만 이미 빛에 닿았다 후회가 하늘로 솟아 해를 가리고, 텅 비어버린 눈에 빛이 담길 일은 없겠지 아, 아직 후회로 가득 찬 몸이 보인다, 출렁거리는 후회로 피부호흡하는 몸이 어느 한 구석이라도 후회가 꽉 막고 있는데 눈이 있을 부분에 돌이 박혀 있다 빛을 쬐니 돌에서는 연기가 나고, 아까까지 잠들었던 혈관이 헐떡인다 도저히 해내지 못한 일을 하는 돌을 보니 떨어지길 잘 했다고 자축하고 기우는 해를 따라 자리를 옮기려고 하다 꿈틀거리는 눈들의 행군에 휘말렸다 이미 말라버렸는데 무엇을 두려워 하길래 빛을 피하는 것인가 너희들의 후회가 이미 햇빛을 납치했다는 것도 모르고, 저 빛은 누군가 던진 발열전구에서 나온 줄도 모르고 겁에 질려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너희들의 시선은 고삐를 벗겨 날뛰게 두고 조금의 시선도 받지 않으려는지 일정하게 꿈틀대는 행군에 계속해서 휘말리니 바보라도 된 기분이다 돌고, 밀쳐지고, 돌고, 도망가고, 어째서인지 그림자에서 맴돈다 ㆍ돌아라, 돌아라! 버러지들, 도망친 버러지들! 나를 버렸겠다, 나만 여기에? 용서하지 않아, 버러지들, 현명하게도 도망쳤겠다! 나는 때를 놓쳤는데!

  • 데카당
  • 2024-05-04
여러가지 소리

푸르르뤠루뢔루으르으르르왁 프루르르루뭬르오르르무악 풀훽 빨간 책을 펼치자 나오는 회갈색 속표지 온천을 비집고 들어가면 보이는 증기 속독을 배우는 아이의 손목 안경에 응결하는 증기 지탱가능 곡선을 넘는 긴장 헛기침에 돌아나오는 물방울 불지른 책을 들고 나오는 아이 온수 끊긴 온천 잿가루 묻은 손에 들린 새빨간 책 스며나오는 천연가스 벌겋게 물들어 예쁜 손가락 향긋한 냄새 노란 꽃받침 주위 돋은 발간 꽃잎 숨 막힐 듯한 향기 맨들맨들 영롱한 꽃받침 숨을 막는 냄새 소금물에 데쳐 먹자ㅡ 지금 불 놓으면 된다ㅡ

  • 데카당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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