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 작성자 이형규
- 작성일 2024-09-04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154
우산 없이 길거리에 던져진 어느 날
그 순수를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걷는다
걷다보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가 있고
아이의 까진 무릎이 물웅덩이에 비춘다
물웅덩이 위로는 달팽이가 흐른다
흐르는 것은 배경이다.
배경도 흐른다
달팽이를 배경으로
나는 자주 넘어진다
달팽이를 밟고 넘어진다
일곱번은 넘어지고 여덟번은 울었다
그렇게 나는 울었다
추천 콘텐츠
아이가 반짝이는 돌멩이를 만지는 동안 아이가 돌멩이를 맞는 동안 순간 아이의 눈이 보이지 않은 것과 천사의 목소리를 들은 것그날 날아든 돌멩이는 돌로 만든게 아니었잖아너가 내 가방에 넣어둔 우유는너가 넣은 걸까그날 가방에 들어있던 것들은 대부분 눅눅해져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공책이라거나 마음이라거나 어린시절 사랑했던 사랑은 이거 전부 다시 넣어두자 창 밖에서는 천사가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천사의 소리는 블루 나의 유년 시절은 깨진 유리컵에 비치는 작은 빛 줄기 처럼 비정상적이게 찬란하고 뒤틀린 것이어서 나의 사랑을 전부 가방에 넣어 두었습니다 너가 던진 돌은 너가 던진걸까?
- 이형규
- 2024-08-09
미국에서 온 편지를 열어 확인해 보았다 빼곡히 글자로 채워진 그 편지는 먼 거리를 건너오며 무언가 잃어버렸을 것이고 나는 글자들을 빠짐 없이 읽어내려 온힘을 다했다 잃어버린 것들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편지에 담겨있던 마음이라던가 고민이라던가 마땅히 담겨있어야 할 것들을 흘려 주워 담지 못하고 편지는 내게로 왔다 시작은 안부 인사로 가령 '잘 계신가요'와 같은 동시에 흩날리는 무색무취의 무언가 부재는 존재의 근거라고 했던가 그러니 너는 내 안에서 실존한다 발신자를 잃어버린 편지는 내가 가지고 있다
- 이형규
- 2024-07-23
언어는 세계라고 합니다쉽게 써버리면 그 마음이 몽땅 사라질 것 같아서오늘도 내 마음을 꽁꽁 싸매고 풀어놓기를 거부합니다당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너무 많이 변해버렸거든요자기를 돌보지 않는 버릇은 사라지지 않는군요 그런데 조금은 뻔뻔해졌습니다죄책감을 덜어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감사하기를 덜하게 되었습니다아아 나는 영원히 나일줄 알았는데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것만 같습니다생각하기를 멈췄습니다피곤하기 때문에사랑하기를 멈췄습니다피곤했기 때문에고마워하기를 멈췄습니다마음을 쓰고 싶지 않아서저는 이렇게 변해갑니다내가 싫어했던 어른의 모습을 점점 닮아갑니다내가 가장 싫어하던 사람의 말투를 닮고생각하는 법을 잊었습니다.사랑하는 법을 잊었습니다.고마워하는 법을 잊었습니다.잠깐 뒤를 돌아보니 너무 많은 게 변해 있습니다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건 너무 아픈 일입니다저의 밤은 조금 씁쓸한 맛이 납니다
- 이형규
- 2024-07-13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