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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이

  • 작성자 임세헌
  • 작성일 2024-10-01
  • 조회수 277

 머리가 아파서 

 머리를 자른다


 머리는 구른다

 탁자 밑을 구른다

 책장 옆을 구른다

 거실유리에 부딪힌다


 이제 최고의 상태야

 몸이 없는 머리는 말한다 


 나는 미친걸까

 라는 몸의 말

 핏방울이 보글보글 오르며 말한다

 그래도 괜찮아 매끈하잖아

 머리가 말한다


 엄마!

 문이 열리고 

 학교에서 딸이 돌아온다


 머리 없이 

 다정하게

 딸을 안


 지금 뭐하는 거야


 머리가 탱탱볼처럼

 통통 튀어온다

 너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머리는 몸이 들고 있는 종이를 뺏는다

 학원광고와 기부광고와 빚독촉을


 머리는 몸을 가둔다

 방에 가둔다

 십년간 가둔다


 십 년 후 몸이 문을 열고 나오자

 딸이 있었다

 손바닥만한 종이에 빽빽이 적힌 글자를

 외우고 있었다

 

 몸은 딸을 안아주었다

 그런데 딸은 몸이 없었다


 꺼져 방해돼

 머리의 말에

 몸은 안방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몸이 있었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몸과 몸은 오래 보글보글 거렸다

 안방에서 몸과 몸은

 서로 포옹했다


 머리의 세계 속에서

 보글보글

 핏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임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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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세헌
  •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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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세헌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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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세헌
  • 202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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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오

    안녕하세요, 김선오입니다. 임세헌 님의 <머리 없이> 잘 읽었습니다. 박력 있게 이야기를 전복시키며 치고 나가는 힘이 느껴지는 수작이었어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장식적으로 오용하지 않되 잠재된 의미를 계속해서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끌고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딸'과 '엄마', '머리'와 '몸'이라는 대상이 계속해서 서로 교란되고 위치를 교환하며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언어적 유희를 능란하게 해내고 있다는 점이 특히 좋습니다. 마지막 문장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변환하여 장면의 지속성을 높이는 테크닉 역시 훌륭했어요. 이번 시는 크게 흠잡을 곳이 없네요. 띄어쓰기 정도만 신경쓰면 좋겠습니다.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와 같은 이수명 시인의 초기 시집에서 신체를 다루는 방식과 언어적 리듬을 중점적으로 읽어본다면 도움이 될 거예요.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

    • 2024-11-11 20:50:02
    김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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