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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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가족
가족 이규리 지난 밤 비에 물이 불었나 보고 오라 하니 아이는 나무의 키를 보고 왔다 물에 비친 나무의 키가 더 커졌다고 수척한 물 위에 왜 나무의 키가 더 커 보이는지 그 아이 비오는 날 마당에 나가 화분에 물을 준다 우산 쓰고 물을 준다 아이의 말을 알아들은 화분의 꽃들은 그것이 약속이란 걸 안다 비가 왔으니 물이 불었을 거라는 건 어른의 말 비가 와도 화분에 물 줘야 하는 건 아이의 약속 그 아이 통통 뛰어다니며 현관문이나 창문을 죄다 연다 비가 자꾸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고 바깥에 젖고 있는 풍경들 자꾸 안으로만 들고픈데 안에 들고 나면 더 이상 그리움 아니니 젖는 마음은 밖에 두어야 하나 자라도 어른이 아닌 어른과 어려도 좀처럼 아이가 아닌 아이가 한 집에 산다 꽃 피고 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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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유령 가족
알고 보면 유령 가족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사람들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가족을 두고 유령 가족을 들먹이기도 했다. 몇십 년, 몇백 년 전에 죽은 조상을 내세워 자신의 집안을 과시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물색없는 짓인가 싶지만, 실제로 조상이 스펙이 되기도 했던 시절에 나는 청춘을 살라 공부만 했다. 그러나 매번 그들에게 지고 말았다. 남편은 요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사업적인 판단을 너무 쉽게 한다고 말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요셉이 고아라는 사실을 남편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말들이 거슬렸다. 결혼과 이혼을 일 년 안에 끝낸 요셉은 성격이 급하긴 했다. 요셉이 만들어 낸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된 요셉의 아내가 요셉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요셉은 무릎 꿇고 빌지 않았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요셉의 아내가 소송을 취하하고 협의 이혼을 선택한 것은 그동안 요셉이 너무 잘해 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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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뼈다귀 가족
지금도 뼈다귀 가족은 꽤 흡족한 얼굴로 연신 흠흠, 모두가 마음에 든다는 일종의 신호를 서로에게 보내고 있다. 도대체 심사 기준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역시 사람들의 취향이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가격이 싸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긴 하지만 이모가 그런 물건들을 계속 받는 이유를 처음엔 알 수 없었다. ‘역시 이상한 가족이야.’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뼈다귀 가족이 돌아가자 은영이는 물건을 정리하며 혼자서 다시 중계를 시작한다. “네, 아빠 선수와 두 아들 선수는 오늘도 흡족한 얼굴로 당당하게….” 나는 뼈다귀 가족이 사간 머그컵 빈자리를 채우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영, 선수들도 다 퇴장했는데 도망간 알바 대타 광고나 다시 붙이시지?” “사장님이 알바 구했다고 전화했잖아요. 모레부터 온대요. 아, 그때 언니 없었나?” “뭐? 언제…? 프린트 괜히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