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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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우리의 ‘살아있음’에 대하여
마지막 수록작, 「역사」의 화자는 그의 '살아 있음'을 용인하지 않는 이에 의해 침묵의 강에 빠져 있다. 강요된 침묵이 숨통을 막아 올 때에 노래가 울려 퍼진다. 햐아-햐아-헤롬- 우레 같은 노랫소리가 하늘과 강물을 두들기며 섞어놓는다. 노래. 우리의 노래다.8) 8) 위의 책 「역사」, 351쪽. 침묵의 어둠 속에서 그의 무수한 존재들이 부르는 노래, 저의 '살아 있음'을 일깨우는 선율이다. 어둠 속에서 가만한 떨림을 전하는 존재. 세상의 언어가 기입되기 이전의 시간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존재가 거기 있다. 작가소개 / 박신영 2019년 《세계일보》 문학비평 신춘문예 당선.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수료. 《문장웹진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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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추리 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추리 동호회에 가입해서 정모에 나간 적도 있었다. 2008년쯤이었는데, 당시 필자는 싸이월드에 기반을 둔 추리 동호회와 네이버에 기반을 둔 추리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했었다. 싸이월드에 기반을 둔 추리 동호회의 경우 진중한 분위기에 기존 멤버 간의 관계가 화기애애했던 반면 네이버에 기반을 둔 추리 동호회의 경우 (초)발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가 정모를 갔던 것은 싸이월드에 기반을 둔 추리 동호회였는데 친목 느낌이 강하게 들어 한 번 나가고 이후로는 카페 활동만 드문드문 했다. 네이버에 기반을 둔 추리 동호회의 경우 정모에 참여해 보고 싶긴 했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모 장소에 가기 위해서는 거리 곳곳에 숨겨져 있는 암호를 풀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과 시내에서 그렇게 만난다는 게 당시의 필자로서는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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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중편연재] 외계인 ③
그 사진동호회의 이름이 ‘트루 픽처스(true pictures)’였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내가 회원으로 가입했을 때는 술탄이 초대 회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여행서적을 세 권이나 출간한 여행 사진작가였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 붐을 타고 동호회가 무섭게 활성화되고 가입회원이 늘어나자 동호회 공동 창립 멤버이자 친구였던 야마와 술탄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한 가지, 사진의 순수성을 놓고 견해가 엇갈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야마는 몇몇 사진공모전에서 입상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라 ‘트루 픽처스’라는 동호회의 이름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언성을 높였다. 진정한 사진의 세계란 여기저기 여행이나 다니며 찍은 사진에 허접한 글을 입혀 책을 출간하는 아마추어리즘과는 분명하게 차별되어야 한다는 야마의 노골적 선동으로 동호회의 파국은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