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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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파피루아
파피루아 강우근 우리는 선생님의 인솔 아래 스케치북을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팻말이 꽂힌 나무를, 짹짹거리는 작은 참새를,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의 눈앞에는 푸른 나비가 어른거렸다. 일회용 카메라를 드는 사이 다른 세계로 떠난 나비를 스케치북에 되살렸다. 방과 후에는 도서관에서 나비 도감을 펼쳐 보았다. 삼천 종이 넘는 나비를 한 마리씩 넘기는 사이에 책을 읽던 친구들은 떠나가고, 해는 저물어 가고, 공원에서 본 나비를 찾지 못했지만 도서관을 나온 푸른 저녁에 나는 문득 파피루아라고 불러 본 것이다. 그리고 파피루아는 종교가 없는 내가 대성당에서 처음 기도를 올릴 때 떠올랐다. 군복을 입은 전우들은 각자의 소원 속에서 눈을 감았다. 내가 파피루아라고 속으로 말하면 검은 세상에서 푸른 불과 같은 날개를 저으면서 유년의 나비는 오고 있었다. 눈을 뜨면 우리는 각과 열을 맞추면서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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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유성
유성 강우근 수업 시간에 창 바깥만 보는 유성이의 외가에는 염소 목장이 있고 높은 지대에 있어 여름에도 서늘했다. 펄럭이는 셔츠를 입고 목장을 달릴 때면 우리는 언제나 날지 못하는 비행기가 되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염소 떼를 따라 풀이 자라나는 목장은 울퉁불퉁했다. 우리가 건초 더미를 주면 염소들은 몰려오고, 유성은 진흙이 묻은 손으로 하얀 염소의 몸을 어루만졌다. 염소들이 모두 얼룩덜룩해질 때까지 유성은 건초 더미를 먹였다. “하얀 염소는 돌아오는 여름마다 사라져. 눈에 띈다는 건 무서운 일이야.” 점심을 먹는 동안 어른들은 살이 찐 염소, 출산을 앞둔 염소, 죽어가는 염소에 대해 얘기하고 창고에는 건초 더미가 한가득이다. 우리는 목장을 등지고 연을 날렸다. 푸른색의 연은 하늘이 되지 못했다. 내가 잡아끌고 있는 연 하나가 끊어졌을 때 연은 순간의 빛을 내면서 떨어지는 별처럼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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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작은 공포」외 6편
작은 공포 강우근 기차를 타고 내가 살았던 마을로 간다. 한때 마을의 담장을 칠하던 아저씨도 떠난, 부모님도 이제 살지 않는, 열 살 무렵 나와 덩치가 비슷했던 개의 몸이 차가워졌던 기차의 네모난 창은 우리가 지나고 있는 풍경을 상영한다. 단풍이 물든 나무들이 이어지고, 이 논에도 저 논에도 벼를 수확하면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개를 상상할수록 나의 어린 개는 기차의 네모난 창을 향해 끝없이 달려오는데 작은 공포가 되어서 터널은 불현듯 찾아온다. 터널을 지나면서 기차에서 노인은 봉지에 담긴 콩을 집지 못하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에게 한 사람은 지워져 가고, 군인은 지갑 속 사진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기차는 아무것도 지나지 않은 것처럼, 여전히 불이 꺼진 어느 방처럼 무서워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