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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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금강송을 아름 안고 울다
금강송을 아름 안고 울다 고재종 울진군 소광리의 늠름한 금강송들은 그 곧기가 더 할 수 없이 곧은데요 삭풍한설 치면 칠수록 더욱 엄정해져서 아름드리 어처구니 홀로 이룩하지요 하도나 싸한 향기 따라 그 숲에 들면 너도 몰래 나도 몰래 싸하게 열리는데요 가슴에 켜켜이 쌓인 삭풍한설을 빗질해서는 계곡물에 솔솔 풀어 놓는 때문이지요 그러지 않고서야 솔가지 위의 솔새인들 한 여름이라 해서 어찌 날아와 울겠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 어처구니를 아름 안고 오늘도 몇 번씩이나 울 까닭이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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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스무 살의 바다를 쉰 살에 가다
스무 살의 바다를 쉰 살에 가다 고재종 버려진 시멘트집처럼 혼자인 그가 혼자인 그를 사랑해서 오늘도 바다는 고조곤히 그를 부른다 혼자인 그를 사랑은 하고 바다는 그를 자꾸 부르고 너무 잦은 생의 수태와 뒤이은 사산으로 그는 숭숭 구멍 뚫린 혼자가 되어 바다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처음 만나 눈에 맞은 연인이거나 이제 또 헤어져야 하는 상처들이 한사코 바다로 가는 것도 바다가 부르기 때문 바다는 시도 때도 없이 부르고 조금도 순탄치 않은 시간들과 고립으로 그는 되레 치명적으로 과잉된 혼자인 그를 사랑해서 이제 바다에 아니 갈 리 없다 썩어도 더는 치유할 수 없는 생이 몰려선 살지 못한 생의 죄를 통렬히 묻는 그 거대한 노도 속으로 그가 꿈만치나 자연스럽게 아니 갈 수 없다 두더지처럼 자신을 헤집고 다니다가 시력도 잃은 머리로 뚫은 게 땅끝인 바에야 바다가 부르지 않을 수 없을 터 그가 이룩해 놓은 것이 고독뿐이라면 바다가 있어 가는 그의 사랑은 바다와 함께 더 물을 게 무엇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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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입동무렵」외6편
이력을 저 풀꽃 속에 던져 버렸지 책을 버린 사람도 노동자였을까 문학이라는 폐광산 폐지 줍는 노인의 수레에 슬쩍 던져 놓고 노동에서 몸이 분리된 채 연기로 사라진 것일까 ‘특별 발굴 장시’ 16연 220행의 「막장에서 부는 바람」 1987년 7, 8월 노동자 대투쟁 때 분신자살한 강원탄광 탄부 성완희 씨를 기리기 위해 쓴 이청리 노동자시인 검은 막장, 검은, 먼지, 검은 기침, 검은 각혈을 내뿜으며 빛의 세상을 행해 쏟아 내는 뜨거운 항변 시인의 충혈 된 눈동자가 삼십육여 년 만에 내 손으로 건너왔다 지하 190미터 갱도에서 221시간 만에 구조되어 어젯밤 살아 돌아온 그 광부는 아니시겠지 「채송화는 더위에 지지 않는다」 건축노동자 김용만의 시, <어찌 니 앞에 내 가난을 부끄럽다 하고 /오늘 내 노동을 부끄럽다 하리> 너무 일찍 부끄러움을 알아 지금도 부끄러움밖에 모를 것 같은 구로노동자문학학교 학생 김용만, 서늘한 눈빛의 윤동주를 닮은 듯하다 32살의 농촌 총각 고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