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아무렴 어때요
아무렴 어때요 기원석 그렇게 말한 뒤에도 맴도는 것들, 이를테면 언제쯤 열어 봐도 좋을지 몇 밤이나 자야 좋을지 몇 마디를 떠올려야 좋을지 얼마나 삼켜야 좋을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기억들은 어쩌다 떠올려도 좋을지 이렇게나 조용해도 좋을지 얼마나 자주 비워야 좋을지 무엇을 알려야 좋을지 누구를 만나면 좋을지 얼마나 그리워해도 좋을지 언제까지 손을 흔들면 좋을지 몇 번이나 기워 붙여도 좋을지 몇 번이나 씹어 삼켜도 좋을지 잔을 얼마나 채우면 좋을지 언제쯤 문을 닫아도 좋을지 무슨 말을 적어 두면 좋을지 얼마나 흐르면 좋을지 얼마나 멈추면 좋을지 언제쯤 울지 않아도 웃지 않아도 좋을지 누가 읽어도 좋을지 언제 읽어도 좋을지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 멀리 가도 좋을지 얼마나 멀리 가야 좋을지 얼마나 빠르게 가면 좋을지 얼마나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주인
주인 기원석 네가 먼저 나갔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네가 나간 자리에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빨간 목줄을 채운 감정이었다. 그것은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네가 두고 간 감정을 데리고 나왔다. 너를 찾아 나는 무작정 뛰었다. 꼬리를 흔들며 감정도 따라 뛰었다. 감정은 어느새 나보다 앞서 나갔다. 감정이 목줄을 팽팽할 정도로 당겼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내달리다 길을 잃어버렸다. 감정은 지치지도 않았다. 나는 감정을 따라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 감정을 따라 정글짐으로 들어가고, 감정을 따라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감정을 따라 철조망을 넘어 폐건물로 들어가고, 감정을 따라, 푸른 감나무를 따라, 나는 잦아진 숲길로, 산새들을 따라, 엽총 소리를 따라, 감정을 따라 들어가고, 미궁 같은 계절을 따라, 낙엽이 쌓인 개울물을 따라, 나는, 죄를 따라, 빨간 목줄을 따라 들어가던, 나는 점점 멀어져 가는 감정을 이따금, 뒤돌아보며 모든 곳으로부터 되돌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