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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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그런 면들의 세계
그런 면들의 세계 김다연 지는 해의 이른 아침, 움직이기엔 빛의 양이 부족하다. 턱없이 부족하다. 습하다. 안개의 직전이다. 주파수가 맞지 않은 의식의 끝물이다. 그러나 그건 기분일 뿐이라고, 아무도 쓰지 않는 말들의 정령들이 뭐라 속삭이는 것만 같지. 핌 없이 이울어. 우리란 너머를 넘어가라고, 너머의 너머로 가라고, 서로를 지치게 하던 지표였을지도. 그런 면으로 보면 그런 면으로만 보이는, 그런 면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말귀가 어두워진 두 발의 눈빛은 괭하다. 늘 그렇지. 이렇게라도 살아가려고 이렇게밖에 살지 못했지. 숨 쉬기 위해 숨만 쉬기 위해 무엇에도 목숨을 걸지 않아서 아직 살아 있는 거라면 그냥 내뱉고 말을 따라가. 모든 걸 말에게 맡겨. 그 말이 사라진다면 그 말과 사라지게. 말의 불을 밝혀. 어떻게든 모이는 희망에 희망을 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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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모름의 작은 해마로는
모름의 작은 해마로는 김다연 모름은 찾아갈 수 없어 거기 없다. 제 위치에 없다. 우울 속에서만 살아가는 모름의 작은 해마로는, 모든 얼굴과 사물의 이름이 낯설다. 거리를 두고 있다. 관심은 관심 밖에 있다. 슬픔을 겪을 때마다 해마는 세부를 덜어 낸다. 최근부터 지워 간다. 견뎌 낸 것이 아니라 축난 거지. 자신을 갈아 넣기만 해서 무엇도 남아나지 않은 거고. 바다에 가지 않고 바다를 본다. 손은 손의 기억으로 면을 채우려고 한다. 멈추지 않는 글자들의 행렬 속에서 어조로만 느껴지던 것. 뭔지 모를 느낌으로 뭉뚱그려지던 것. 그러나 다음 장은 파도로 온다. 머리가 부서진다. 머리에서 벗어난 해마가 바다 깊숙이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을 평면에서 펼쳐 보면 나는, 무엇도 태어나지 않는 유일한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