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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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안개가 시작된다
안개가 시작된다 김본 대관령에 간다는 건 여름휴가가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언니와 원규 오빠는 스키 동호회에서 만났다. 겨울이면 두 사람은 스키를 타러 대관령에 갔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여름에도 가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아예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원규 오빠의 회사 일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대체로 7월 마지막 주면 휴가가 시작되었다. 휴가 전주에 원규 오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언니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평창까지는 자기 차로 함께 가자고. 사실상 그건 제안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오빠가 전화하기 전부터 나는 기차표를 예매해둔 상태였다. 슬기가 너 바꿔 달라고 난리다. 슬기는 막 네 살이 된 나의 조카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는 난처하게 웃었다. 진정으로 곤란하다기보다 즐거움에서 비롯된 웃음이었다. 내가 슬기와 통화하는 동안 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슬기를 안아 올려 무릎에 앉힌 채로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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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숙희의 미래
숙희의 미래 김본 속도위반 미래 씨가 이름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을 무렵, 미래 씨의 삶에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자동차를 마련한 것. 다른 하나는 엄마의 몸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 미래 씨의 이름은 미숙이었다. 당시에는 미숙이나 영자 같은 이름이 흔했다. 미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수나 탤런트가 있었더라면 미래 씨도 자신의 이름을 ̄어쩌면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미숙이었던 미래 씨는 가수도 아니었고 탤런트도 아니었고 심지어 예술가나 아나운서도 아니었다. 미래 씨가 태어나기 전 엄마와 아버지는 미숙과 미정과 미자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미래 씨는 셋 다 거기서 거기인데 어째서 고민했을까 궁금했다. 미숙이 아니라 미정이나 미자가 되었다고 해도 똑같이 불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정이나 미자였어도 미래가 되었을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