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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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누가 화분을 도둑맞았나」 외 6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시] 누가 화분을 도둑맞았나 김순옥 그래, 또 나야 하루 종일 나를 열고 들어오는 이가 없어서 모란이 피었던 곳에 옆구리가 생기고 굵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화장대 위에 흩어진 분홍색 파우더처럼 어떤 순서도 없이 둥근 저녁을 만들고 귀만 돌아다니는 고요 속 누구도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으므로 가끔은 식물인지를 모르게 식물처럼 눕기도 했다 떠오른다 떠오른다는 생각으로 식물이 만지는 오른손이 시들까 봐 슬쩍 화분을 밀친 왼손은 옆구리에 쌓인 눈발이 유일한 다정인 양 쓰윽, 당겨 본다 삿포로에 갈까요? 쏟아지는 눈발을 보며 술을 마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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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탱고 한 곡 출까요?」외 6편
김순옥 일요일의 입구를 찾습니다 장밋빛 원피스를 입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지나갑니다 몹시 화려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없어요 인생네컷사진관에 들러 김치 치즈 스마일 꼬불꼬불 노랑 가발을 쓰고 턱밑에 꽃받침을 만듭니다 웃는 그가 거기 있습니다 문득 책상 위에 세워 둔 달력이 생각납니다 어떤 기일은 나를 붙잡고 나의 눈을 감깁니다 일요일을 지워버리면 죽은 날이 없어질까요 오늘은 처음부터 시작입니다 구두 속은 노란 꽃도 빨갛게 피고 빨간 꽃도 빨갛게 피고 꽃이 지면 살고 싶은 대로 살아질까요 어디선가 담배 향이 몰려와 낯선 당신 구두를 신습니다 장밋빛 원피스를 입고 일요일의 출구를 지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지나는 중입니다 밀롱가의 경쾌한 포르테뇨 옆에 도착합니다 탱고에 흰 국화라도 던져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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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오늘의 그래픽노블 이야기 2 - 김금숙이 그리는 한국의 가족, 한국의 역사
중국으로 끌려간 김순옥 어르신의 경우 아버지가 본인을 팔았다고 증언하지 않았던가.”(106-107쪽)라고 의문한다. 할머니가 계속 판에 박힌 말을 반복하는 바람에 인터뷰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들을 실토하는 장면(145-146쪽)(그림 1)이나 할머니가 전하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 걸 궁금해하는 장면(298쪽)에서도 증언자인 할머니와 기록자인 나는 분리된다. 이는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전쟁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할머니의 삶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중으로 보인다. 할머니의 삶을 작가인 내가 다 알거나 재현해 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겸허한 수용이기도 하다. 나는 그저 할머니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그 아픔에 공감할 뿐이다. 이옥선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전체를 대변하지 않으며 위안부의 진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거나 매개하는 존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