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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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넘고 나니 보이는 것들
정유정, 이정명, 김언수 작가의 작품들은 이전의 한국 문학 작품들과 구분될 정도로 달라요. 저는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82년생 김지영』도 그런 맥락에서 기여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태연 : 제가 가끔 이런 책을 번역하고 싶다고 출판사에 의뢰하면 에디터들도 세대별로 의견이 나뉘어서 출간 여부가 결정되더라고요. 김유태 : 언어라는 장벽만 넘어서면, 국경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애국하려고 문학을 하진 않으니까요. 문학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나의 국적을 의식하고 쓰는 작가들이 얼마나 될까요. 모국어를 사용할 뿐이지 언어를 벗어나면 국적은 희미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에는 국적은 없고 세대만 있다. 같은 국가에서도 오히려 세대마다 공감하는 바에 큰 차이가 있죠. 수요와 공급, 그 사이에서 박혜진 : 각각의 시장이 선호하는 경향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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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이 책 빌려줄까] 위화의『허삼관매혈기』
[이 책 빌려줄까]위화의『허삼관매혈기』 김언수 나는 종종 순전히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 이미 여러 번 읽었던 위화의『허삼관매혈기』를 다시 꺼내 읽는다. 훌륭한 책은 많이 있지만 즐겁고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을 발견하는 것은 희귀하고 고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중국 농촌을 배경을 하고 있는 위화의 『허삼관매혈기』는 에로틱하고, 생기발랄하며, 아름답고, 웃기면서 또한 슬프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하고 건강하다. 늦은 밤 책장을 넘기며 나는 이미 여러 번 울었던 장면에서 다시 울고 이미 여러 번 웃었던 장면에서 책을 잡고 방바닥을 뒹굴며 깔깔깔 큰 소리로 웃는다. 그래서 『허삼관매혈기』를 다시 읽은 밤이면 나는 좋은 단팥죽을 양껏 먹은 것처럼 뜨겁고 달달한 느낌에 빠진 채 편안히 잠에 든다. 허삼관매혈기』는 말 그대로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다. 그리고 자신의 피를 팔아야만 작은 여윳돈이라도 손에 쥘 수 있는 가난한 촌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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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핀란드식 습식 사우나
핀란드식 습식 사우나 김언수 노인은 아주 깡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살과 뼈밖에 안 남은 노인의 몸에서는 정말이지 단 일 그램의 지방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왼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고 수수깡처럼 가는 다리는 그 가벼운 몸조차 지탱하지 못하고 위태하게 휘청거렸다. 그런데 자기 몸도 못 가누는 노인이 지금 한증탕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세상에 저런 몸에서 뭘 빼낼 게 있다고 한증탕에 들어오려고 하는 거지?’ K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은 한증탕의 열 때문에 잔뜩 뜨거워진 유리문을 안간힘 쓰며 열려고 했다. 하지만 유리문은 노인이 열기에는 너무 무거웠고 또 이음새 부분에 녹이 잔뜩 슬어 뻑뻑했다. 노인은 유리문을 완전히 젖히지 못했기 때문에 들어오려고 하면 번번이 문틈에 몸이 끼었다. 유리문에 살이 닿으면 아주 뜨거울 텐데 노인은 별다른 내색도 없이 그 바보 같은 짓을 계속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