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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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우리가 지나온 길
우리가 지나온 길 김유림 우리가 지나온 길에 대해 묘사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할 수 있다. 물소리가 들렸다고. 그것은 내게만 들렸다고. 물소리는 아니야 아니야 말할 것이다. 말을 할 수 있다면. 흰 저수조를 내가 이미 안다면. 놀라울 일이 아니다. 그러나 햇빛은 그대로였고 나무도 그대로였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대리석 난간과 면하고 있었고 대리석 난간은 나무들을 가두고 있었다. 나무들은 나무들이 만드는 빈 공간을 에워싸고 있다. 그래서 연인이라면 그곳에서 키스를 한다. 내 말에 귀 기울이던 동행자는 놀란다. 그가 생각하기에 나는 이제 마술사다. 그러나 내가 말한 공터는 여기에 있고 공터를 에워싼 나무들도 여기에 있으며 나무들을 비집고 선 거대한 흰 저수조가 여기 있는데. 고개를 들어야 할 차례지만 사람은 결과를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장막을 내려 사람의 입을 부드럽게 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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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완이 생각에는 주술이 이렇다
완이 생각에는 주술이 이렇다 김유림 언덕에서 내려와 언덕에서 천천히 언덕에서 빠르게 언덕에서 내려온다. 우리는 언덕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는 사람들 강아지풀이 흔들리는걸. 강아지풀이 흔들리는 걸 미워하는 사람들. 흔들리는 걸 사랑하는 사람들……. 유림은 쓰고 있는 책은 어떻게 되어 가냐고 묻는다. 유림의 동행자는 대답이 없지만 표정은 풍부하다. 유림의 동행자의 동행자는 애꿎은 잡초를 뽑고 있다. 그러나 잡초는 잘 뽑히지 않고 단지 뜯긴다. 사람들은 올라가거나 내려가다 말고 계단과 그늘에 멈춰 서서 한강을 바라본다. 동행자와 동행자는 비밀스러운 눈빛을 주고받는데 유림은 거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바람에 바람이 날리고 나무는 나무에 날린다. 잎사귀는 잎사귀를 때리고 바람은 바람을 때린다.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을……. 혹은 유림은 혼자 걷고 있다. 해가 내리쬐는 여름날이다. 유림의 동행자였던 사람이 혼자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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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비정상 사회, 역사가 쓴 시대의 시놉시스
비정상 사회, 역사가 쓴 시대의 시놉시스 김설원 「팔월극장」 김유림 1. 불가능한 연출 정상과 비정상 사회를 구분하긴 사실상 어렵다. 기준을 찾는다면 역사일 것이다. 역사란 과거이며, 과거는 현재 시점으로 소환될 때 의미가 있다.1) 역사에 내재한 의미는 비정상과 정상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에 검증이 필요하다. 헤겔은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 집적된 현상을 추론하고 검증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 ‘절대정신’에 이르기를 주문한다.2) 절대정신은 역사 변증법을 거쳐 ‘앎에 이르는 자기 인식’이다. 자기 인식은 ‘자유의지’와 동일한 의미로 억압을 벗어날 때 실현된다.3) 문학을 포함한 예술, 철학 등 인문학이 역사를 검증하려는 노력도 자유의지, 주체적인 인간의 실존을 강화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김현 평론가는 ‘문학이 억압하지 않지만,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4)라고, 적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