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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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아디오스 탱고
김을해 마지막으로 승요에게 전화가 온 건 거의 삼 개월 전이다. 근 반년 만에 걸려온 전화였다. 한때 수없이 추상적인 고백을 주고받았던 승요와의 통화는 간단했다. 사실 서로의 고백이란 게 거의 우격다짐이어서 다투는 날이 많았지만, 허황된 행복감에 젖어 서로에게 긴 편지를 쓰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실없이 젊었다. 승요는 누구일까. 새삼스레 생각해보았다. 내가 보기엔 그의 삶엔 두 가지 영역뿐이었다. 가능과 불가능. 그는 자신의 상황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정확하게 나눌 줄 알았다. 자신의 성격, 자신의 가족, 자신의 직장, 자신의 앞날, 이런 게 그에게는 당연히 불가능의 영역에 속했다. 반대로 나에게는 가능의 영역 안으로 끌어와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야 인생을 멋지게 사는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단지 공중목욕탕에 가서 여유 있게 등판을 닦을 수 있는 그의 긴 팔 하나만이 모든 가능성의 척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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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불빛을 보며 걷는다
불빛을 보며 걷는다 김을해 불빛을 보며 걷는다. 모두들 서둘지 말았으면. 안과 밖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하늘, 땅, 그 사이의 공기, 그리고 세상 처음부터 깜박이던 불빛 같은 것들이 먼저다. 인생은 비밀 투성이라고, 어떤 날은 불빛이 말해 주기도 한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 눈에는 저 공기 끄트머리로부터의 바람이 보인다. 한 번이라도 이 기류를 느껴본 사람들 발걸음은 대부분 느리다. 그들 평생의 꿈은 발밑에 숨겨진 태고의 퇴적층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영도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 바람을 보았다는 순간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밤바다를 향해 혼자 걸어 들어가는 기분, 그런 기분이었어요.” 그는 궁금한 것들을 일일이 말할 수 없어 인생이 침울하다고 했다. 도영은 그를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철이 없다고 그를 몰아세웠다. 그를 몰아세운 사람들의 공통점은 갈 데까지 가 보았다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