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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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친구까지 삼십 센티
“김희진, 뭐 해? 그깟 플라스틱 쪼가리가 뭐 중요하다고. 빨리 가자. 선착순 오십 명이랬잖아.” 새로 연 분식집 이야기였다. 분식집에서는 오늘 하루만 떡볶이 한 접시 가격에 두 접시를 준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주리는 아침에 자기 생일 파티 때 초대했던 친구들을 불러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주리 생일 파티에 끼지 못한 아이였다. 그런데도 주리는 나를 특별히 떡볶이 모임에 데리고 가 주겠다며 인심을 썼다. “넌 발이 빠르잖아. 네가 달려가면 일단 떡볶이 두 접시는 우리 거지. 잘 부탁해.”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설레던지. 주리는 우리 5학년 3반 여자아이들 중에 제일 인기가 많다. 뭐든지 잘했고 뛰어난 말솜씨로 아이들을 휘어잡았다.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문어왕이 제대로 서 있는지 거듭 확인하고서 창문을 닫았다. “미안해, 주리야. 다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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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거슬림
작가소개 / 김희진(소설가) 1976년 광주에서 태어나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혀」가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욕조』,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 『옷의 시간들』, 『양파의 습관』이 있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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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붉은색을 먹다
붉은색을 먹다 김희진 여자는 오늘도 붉은색을 먹었다. 여자가 붉은색을 먹기 시작한 건, 몇 주 전 일요일 아침부터였다. 그날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무더웠고, 결코 특별한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아니, 그렇고 그런 일상의 연속이었고, 토요일 밤에 이어 으레 찾아오는 일요일 아침일 뿐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양미간을 찡그린 채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잠이 덜 깬 눈으로 창 밖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때 여자의 눈으로 들어온 건 양쪽으로 묶여 있던 붉은색 꽃무늬 커튼이었다. 여자는 매일같이 봐오던 커튼 색깔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느껴졌다. 익숙한 대상이 한순간 기묘하게 보일 때가 있듯이, 여자에겐 그때 그 순간이 그랬다. 뒤이어 여자의 입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건 난데없이 튀어나온 말만큼이나 난데없는 궁금증이었다. “근데 저 커튼은 왜 붉은색이지?